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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한 번 뿐인 인생, 이겨보고 싶다 '맵고 뜨겁게'

실제로 50kg 감량하며 촬영…중국 내 복싱·헬스 붐 일으킨 화제의 작품

2024.08.08(Thu) 14:35:14

[비즈한국] 어떤 작품을 보면서 주인공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최근 내가 동질감을 느낀 이는 SNS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영화 ‘맵고 뜨겁게(원제: 热辣滚烫, 영어제목: YOLO)’의 주인공 두러잉(자링). 집에만 틀어박혀 음식의 잔재들이 흩어져 있는 소파에 드러누운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순간 ‘어, 난가?’ 싶은 동질감이 느껴지며 호기심이 일었다. 아마 이런 동질감 느낀 사람, 나만은 아닐 걸?

 

서른두 살의 두러잉은 대학 졸업 후 잠깐 취업한 시기도 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의 집에 얹혀 사는 백수. 방송국에서 일하는 친척동생이 구직 프로그램에 참여를 권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이혼하고 역시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은 물론, 부모님은 프로그램 참가를 강하게 권유하며 두러잉과 마찰을 빚는데, 설상가상 자신의 애인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바람을 피워 몰래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청천벽력의 소식까지 접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엉겁결에 독립하게 된 두러잉은 꼬치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우연히 가게 근처 복싱 피트니스 클럽 코치인 하오쿤(레이자인)과 얽히게 된다.

 

인생에 자포자기하고 그저 먹고 자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두러잉. 오늘도 소파나 침대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몇 시간째 쇼츠를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뜨끔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오랜 시간 백수로 자립하지 못한 여자, 거기에 예쁘지도 않고 뚱뚱하기까지 한 여자가 자존감이 높을 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피트니스 클럽 회원권을 팔아야 하는 제법 호남형의 복싱 코치의 존재는 두근거릴 거고. 그러나 외모가 다는 아니다. 두러잉이 하오쿤에게 강하게 매료된 건 그가 자신에겐 없는 꿈과 열정이 있는 남자로 보였기 때문. “사람들에겐 응당 꿈이 필요하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하죠”,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뭔가에 최선을 다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지 않겠는가.

 

엉겁결에 독립했다 우연히 얽히게 된 복싱 코치 하오쿤. 두러잉과 하오쿤이 함께하며 빚는 코미디가 곳곳에 포진해 있어 소소한 웃음을 안긴다.

 

복싱 피트니스를 시작하며 하오쿤을 사랑하게 되는 두러잉은 천성 그대로 순수하게 하오쿤에게 헌신하기 시작한다. 피트니스 클럽 대표로 출전하는 복싱 경기에서 부조리한 심판으로 떨어진 하오쿤을 북돋우고자 모종의 방법으로 복싱 경기 출전 자격을 따내고, 체중 감량을 앞둔 하오쿤을 위해 건강식을 만들고, 그를 대신해 피트니스 클럽 전단을 돌리며 사랑을 키워 나간다. 아니, 키워 나간다고 믿었다.

 

하오쿤은 적당히 지질하고, 적당히 비겁한 보통의 사람이다. 입으로는 권투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복싱 피트니스 클럽 영업엔 자신의 체질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회원권을 판매할 목적으로 두러잉에게 데이트를 제안할 만큼 이성적인 감정은 없음에도, 막상 순수하게 다가오는 두러잉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는 남자. 결국 하오쿤은 그토록 꿈꾸던 복싱 경기에서 3만 위안을 받는 조건으로 상대 선수에게 지기로 한다. “돈 버는 게 삶의 전부냐고요.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서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게 인생 아닌가?”라고 부르짖던 하오쿤의 말이 허망하게 들리면서도, 막상 또 그의 입장이 된다면 꿈만 쫓을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하는 보통 사람인 그는 그렇게 두러잉의 순정을 밟고 떠난다.
 

복싱에 대한 열정을 보이며 두러잉에게 신선한 감정을 안겼던 하오쿤. 그러나 그는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과 타협하며 꿈을 외면하고 떠나간다. 그러나 누가 하오쿤을 뭐라할 수 있을까.

 

‘맵고 뜨겁게’는 두러잉과 하오쿤의 로맨틱 코미디로 가는가 싶다가 하오쿤이 떠나고, 두러잉이 친척동생의 구직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악마의 편집으로 희생당하고 난 뒤, 절망을 딛고 권투에 매진하는 두러잉의 모습을 비추며 본격 성장 영화로 나아간다. “이겨본 적 있습니까? 단 한 번이라도!”라는 전단지의 슬로건을 마음에 새긴 두러잉은 하오쿤과의 관계를 위해 시늉만 했던 권투에 진심을 다해 매진한다. 이유는 심플하다. 그냥 한 번쯤 이겨보고 싶어서. 권투에 매진하면서 권투의 매력도 깨닫는다. “권투는 참 재밌어요. 경기하면서는 서로를 세게 때리고, 마지막엔 둘이 안잖아요.”

 

한 번쯤 이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복싱에 매진하는 두러잉. 매일매일 구슬땀 흘리며 뛰고, 구르고, 펀치볼을 향해 날랜 주먹을 날리는 일련의 시간들이 여과없이 영화에 담기며 진정성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면 일종의 계기로 삶의 의지를 느끼고 앞으로 나아가는 보통의 성장 영화와 다를 바 없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화제를 모은 건 두러잉의 이 성장 과정을 ‘진짜’로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맵고 뜨겁게’는 하오쿤이 떠나고 두러잉이 본격적으로 권투를 하는 때부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 온갖 운동과 체력 훈련을 통해 권투 선수 적격 판정을 받는 과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말인즉슨, 두러잉을 연기한 자링(주연뿐 아니라 감독도 맡았다)이 원래 체중에서 20kg 정도를 찌워 뚱뚱한 두러잉을 연기한 뒤 수 개월에 걸친 운동과 식단으로 50kg을 빼며 권투 선수 두러잉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낱낱이 카메라에 담았다는 소리다. 특수분장이나 CG효과 없이 생짜로!

 

주연 겸 감독을 맡아 무려 50kg을 감량하는 모습을 보여준 자링. 온몸에 선명하게 새겨진 근육이 그가 흘린 땀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두러잉이 ‘록키’의 시그니처 OST와 힙합 곡에 맞춰 러닝을 하고, ‘쇠질’을 하고, 잽과 훅을 날리는 모습을 길게 담아내는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절로 뜨거운 감정이 치솟는다. 뚱뚱했던 두러잉처럼 인생을 자포자기한 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나 하오쿤처럼 입으로는 꿈을 이야기하면서도 항상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들, ‘살면서 싸울 것이 많은데 굳이 나 자신과도 싸워야 해?’라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람들 모두 두러잉의 땀과 변화하는 모습 앞에 절로 입을 다물어지게 될 것. 진짜의 힘이 이렇게나 세다.

 

경기 중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지만 경기가 끝나면 서로를 안으며 끝나는 권투. 경기 역시 자링이 직접 뛰며 진한 감동을 안긴다.

 

2024년 중국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 넷플릭스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며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맵고 뜨겁게’. 원작은 일본영화 ‘백엔의 사랑’인데, 이 또한 넷플릭스에 있으니 비교해 봐도 좋겠다. 2024년도 벌써 8월이다. 올해도 다 끝났다고 자조하며 연초의 목표 따윈 까맣게 잊은 상황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 번쯤 이겨보고 싶다는 기분이 물씬 들 것이다. 운동을 주저하고 있던 사람에게도 추천. 중국 내에서도 영화 흥행 이후 복싱 클럽과 헬스장 붐이 일었다고 한다. 유치하고 소소하지만 피식피식 웃게 되는 중국식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경기 승부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미 이긴 두러잉. 경기가 끝나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하오쿤과 함께하지 않고 홀로 뛰어나가는 모습에서도 여운이 남는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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