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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동방신기 사태'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표준계약서 제정 이후에도 불공정계약 다툼 여전…부속합의서에 독소조항 담아 규제 우회

2024.08.08(Thu) 15:09:13

[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돌 산업은 2009년 전환점을 맞는다. 일명 ‘동방신기 사태’가 K팝 산업의 판도를 뒤집었다. 13년이라는 전속 계약 기간, 과도한 위약금, 앨범을 50만 장 이상 판매하지 못하면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수익분배 조항. ​당시 동방신기 멤버들이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와 맺은 계약은 ‘노예계약’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동방신기 분쟁과 고 장자연 사건이 함께 불거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연기자와 가수 등 대중문화예술인을 위한 ‘표준전속계약서’를 만들었다. 아이돌 전속 계약 기간 기준이 ‘7년’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연습생에 들어간 비용은 데뷔 전에 청구하지 못하고, 정산 자료를 제공하는 것도 그제서야 ‘상식’이 됐다. 표준계약서는 이후 몇 차례 개정됐다. 2019년에는 아이돌 연습생 표준계약서와 미성년자 아이돌과 연습생에 대한 부속합의서도 만들어졌다. 

 

지난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수와 배우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했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그러나 ‘노예계약’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21년 이달의 소녀 멤버였던 ‘츄’는 불공정 정산 계약과 관련해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심에서 승소했다. 중소기획사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 엑소 유닛 첸백시(첸·백현·​시우민)는 ‘노예계약’을 주장하면서 ​SM엔터테인먼트와 법적공방을 벌이고 있다. 

 

표준계약서 제정 후 15년이 지난 지금, 아이돌은 어떤 내용으로 계약하고 있을까? 표준계약서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 그에 앞서, 지금의 표준계약서는 정말 공정할까?


#표준계약서 자체가 ‘불공정’

 

아이돌과 연습생 계약은 굉장히 특수하다. 표준계약서는 연습생과 아티스트가 ‘용역’을 제공한다고 명시하면서도 이들의 노동자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연습생은 연습기간에 들어간 비용을 데뷔 후 갚아야 한다. 데뷔 후에도 소속사가 투입한 각종 비용을 ‘선 공제’한 후 순수익을 아티스트와 배분한다. 기존 법률 문법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다.  

 

아이돌 그룹 더 이스트라이트와 TRCNG​는 전속계약 기간에 소속사 임직원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해 아동 학대 논란까지 불거진 바 있다.​ 이들의 소송을 대리했던 정지석 변호사(법무법인 남강)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표준계약서’ 자체가 문제라고 말한다. ​

 

정 변호사는 “아이돌 계약은 기획사가 자금을 제공하고, 아티스트나 연습생은 용역이나 노무를 제공하는 일종의 동업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소속사가 정산금 배분 전에 투자금을 먼저 회수한다는 거다. 투자금을 빼면 그건 더 이상 동업이 아니다. 투자금을 다 회수했으면 동업 관계에서 빠져야지. 그런데 기획사들은 투자금을 다 회수하고 나서 남는 거 가지고 분배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불공정한 구조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표준계약서부터 법적인 접근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아이돌 계약, 실제로는? 

 

 

문제는 ‘기울어진’ 표준계약서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표준계약서는 형식에 불과​하고 ‘부속합의서’가 실질적인 계약서라고 ​입을 모은다. 앞서 정지석 변호사 역시 “기획사들이 대부분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만, 특약이나 부속계약서에 독소조항을 넣는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수많은 아이돌이 불공정 계약으로 법적 분쟁을 겪는 이유다. 

 

비즈한국은 최근 2년 이내 선고된 아이돌과 연습생의 ‘계약 관련’ 분쟁 사례를 살펴봤다. ​지난 2023년 8월 18일 선고된 손해배상 판결문 일부. ​

 

소속사에 자신의 위치를 보고하게 하는 행위는 이미 지난 2009년 공정위가 ‘사생활 침해’라고 규정했지만, 여전히 ‘부속합의서’에 버젓이 등장한다. 이는 지난 2023년 8월 18일 선고된 손해배상 판결에서 드러났다. 지난 2016년 A 소속사 대표는 5인조 그룹 멤버 B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면서 부속합의서도 작성했다. 여기에는 ‘원고와의 연락이 24시간 이상 두절될 시 본 계약은 해지될 수 있으며, 또한 계약 위반 시 제1조의 내용에 관한 비용을 손해배상 하는 것으로 한다’고 명시됐다.  

 

이후 2022년, A 대표는 B가 2017년에 연락이 두절된 적이 있었다며 1억 2162만 2900원를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5년이 지난 데다 연락이 두절됐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법원은 ​소를 기각했다. 

 

2023년 9월 21일 선고된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민사소송에서 드러난 부속합의서 내용.

2023년 9월 21일 선고된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민사소송에서 드러난 부속합의서 내용.

 

연예활동 이외의 경제활동을 하려면 기획사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항은 2009년 공정위에서 삭제했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C 소속사는 지난 2018년 걸그룹 멤버 D 씨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면서 부속합의서를 작성했다. 이때 소속사는 사생활 보장 예외 항목에 헤어스타일링, 눈썹 문신을 포함한 시술과 성형, 여행, 수익활동 등을 포함했다.

 

지난 2023년 5월 18일 선고된 손해배상 판결문 일부.

지난 2023년 5월 18일 선고된 손해배상 판결문에 적힌 부속합의서 내용. 학교폭력 등의 기록을 소속사에 자세히 알리도록 규정했다.


최근 아이돌의 ‘학교폭력’ 논란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과거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도 ‘부속합의서’에 등장했다. 지난 2021년 E​ 소속사는 연습생 F 씨와 전속계약 체결을 논의하면서 부속합의서에 ‘자신에게 학교폭력, 범죄 사실, 전과 기록 등 사회통념상 가치기준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과거의 행적, 언행, 기타 기록 등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세한 내용을 소속사에 알려야 한다’고 명시했다. F​ 씨의 부모는 이 조항과 수익 배분 조항의 수정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F​ 씨 측이 전속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하자, E​ 소속사는 F​ 씨에 3173만 4865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를 냈다. 

 

이 외에도 소속사 대표가 프로필 사진 촬영을 빌미로 미성년자 연습생의 신체 노출 사진을 찍거나 노출을 강요해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도 여럿 있다. 

 

아이돌 분쟁 사건을 맡았던 노종언 변호사는 드러나지 않은 아이돌의 인권 유린 사건이 더 많다고 말한다. 사진=박정훈 기자

아이돌 분쟁 사건을 맡았던 노종언 변호사는 드러나지 않은 아이돌의 인권 유린 사건이 더 많다고 말한다. 사진=박정훈 기자

 

아이돌 그룹 오메가엑스의 상습 폭행 사건을 대리한 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존재)는 “인권 유린과 정산금 누락 사건이 굉장히 많다. 특히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학대와 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 연예인은 소송을 하면 의혹의 진위와 상관없이 이미지 훼손으로 사실상 활동을 못 하게 된다. 정산금 소송 역시 승소하더라도 자금을 빼돌리는 경우가 있어 피해 복구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K팝 산업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최근 급성장하면서 부작용이 늘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관계 없는 기업들까지 우후죽순 투자를 하면서 대규모 사기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결국 이런 피해들은 회사에 소속된 아티스트에게 귀결된다. 그러면서 대형 소속사의 아이돌 시장 독식은 오히려 커졌다.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해결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다음 편에는 아이돌 정산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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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

사진·영상=박정훈 기자

onepar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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