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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텔링] 방산 연구개발 예산 '싹뚝' 되어도, 기업이 먼저 쉬쉬하는 까닭

엔진 소재, 스텔스 기술실증기 등 개발 중단 위기… 내년 예산 복구 기대하며 침묵 일관

2024.08.08(Thu) 11:22:28

[비즈한국] 사람이 타인을 때리는 폭력 사건은 없어야한다. 현대 문명국가에서 억울하게 맞은 사람은 아픔을 호소하며 폭력의 가해자에게 사과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권력을 가진 악인들이 많아, 피해자들이 고통 받고 신음하면서도 제대로 피해를 호소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은 바로 피해자가 피해 받지 않았다고 부정하거나, 맞을 만해서 맞았으니 가해자를 비판만 할 수 없다며 말리는 것이다. 

 

K방산은 최근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여러 중요한 개발 사업들이 중단되고 있다. 특히 인코넬 718 소재의 국산화와 스텔스 무인기 개발이 타격을 받았다. 사진은 터키의 ANKA3 무인기. 사진=TAI 출처​

 

K방산이 최근 몇 년간 엄청난 성공을 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방위산업이 돈이 안 된다는 판단으로 다른 사업의 이권을 미끼로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을 거론하며 억지로 대기업들을 참여시킨 적도 있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현재 ‘진격의 K방산’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잘 나가는 K방위산업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문제가 있어 끙끙거리면서도 감히 눈치를 보고 불만을 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어난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국방 연구개발 사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래서 여러 중요한 개발사업들이 이제서야 중단된 사실이 하나 둘 씩 드러나고 있다. 하반기가 되어서야 관련 보도가 나오는 이유는 ‘올해 예산은 원상복구를 바란다’라는 을의 소심한 하소연 때문이다. 

 

언급되는 것조차 걱정이 많아 조심스럽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다루기 위해 불가피하게 몇 가지 업체 사례만 언급하자. 우선 터보팬 항공 엔진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 인코넬 718(Inconel 718)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초내열합금이다. 제트엔진의 경우 엔진이 더 높은 열을 견딜수록 추력도 강해지고 연비도 올라가는데, 이 소재를 사용해야 제트엔진이 1500도 이상 화염을 견딜 수 있어 고효율 엔진 제작에 필수적인 기술이다. 이 연구예산이 85억 원에서 60%가 삭감됐다. 예산 삭감으로 인해 국산화 개발 시기가 2026년부터 몇 년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아예 예산이 끊겨서 중단된 사례도 있다. 한 방위산업체는 영세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 이상 스텔스 기술에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바로 ‘다목적 스텔스 무인기’로 보이는 전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북한의 방공 미사일 공격을 피해 적진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성능의 스텔스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여러 과제를 수행했다. 적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기술이라는 게 워낙 어렵기 때문에, 한 번에 스텔스 비행기를 만들지 못하고 2010년에는 작은 축소 비행기를 띄우고, 2016년에는 구조 시험을 위해서 실물 크기의 비행기 구조를 만들어서 기능을 검증해 왔다. 이제 광대역 저피탐 무인비행기 기체구조 연구를 수행 중으로 곧 대한민국은 광대역 스텔스 비행기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할 것 전망이다.

 

문제는 이런 스텔스 기술을 적용한 모형이나 모크업 연구는 진행되지만 정작 기술을 적용할 다목적 스텔스기의 개발 예산이 잠시 중단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스텔스 연구를 진행 중이던 방위산업체는 향후 국가 전략무기로서 광대역 스텔스 무인기를 무인정찰기, 혹은 무인공격기로 개발 및 양산이 될 것을 기대하고 더 어려운 기술에 도전했는데,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이런 광대역 스텔스기에 대한 개발이 곤란해진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고 필자의 이런 비판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인코넬 국산화의 경우에는 한화 정도의 대기업이 수십억 원 때문에 포기할 리가 없으며 두산이 항공 엔진 시장에 진출한 만큼 이제 제트엔진 관련 정부 과제를 모두 다시 입찰해, 한화와 두산이 경쟁을 통해 연구과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주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국가 핵심 기술의 국산화를 기업이 나서는 것을 단순히 이윤을 보고 들어오는 기업은 없다. 미래 비전을 보고 국가가 추진해 주는 것을 믿고 도전하는 것에 가깝다. 참여하는 기업이 정부가 한순간의 결정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면 누가 믿고 정부의 국가과제에 도전하겠는가? 정부 R&D 과제 예산이 별안간 삭감되는 것은 돈과 신뢰도 모두 문제다. 단순히 모자란 돈을 기업이 부담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스텔스 무인기 개발이다. 관련자들의 취재를 종합해 보면 현재 개발 중인 스텔스 기술은 개발 중인 무인 편대기에 적용할 것이라 문제가 없다는데, 무인 편대기(loyal wingman)는 유인 전투기가 하기 위험한 임무에 대신 투입하는 ‘일꾼’의 역할을 하는 비행기다. 저렴한 가격으로 경제성을 확보해야 해서 스텔스 능력, 특히 광대역 스텔스 능력 적용이 어렵다. 전투기와 무인 편대기가 같이 다녀야 하므로 기동성이 필요해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또한 다목적 스텔스 무인기의 경우 미국의 RQ-180과 같은 전략무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군은 현재 425 정찰위성, 초소형 SAR(영상레이더) 위성 등 차세대 위성을 배치 중이다. 공군은 글로벌 호크, RQ-105K 중고도무인기(MUAV) 등을 활용하지만, 위성은 방문 주기가 정해져 있어 기만이 쉽고, 무인기는 적 대공미사일에 취약하므로 북한 영공에 침입해서 정밀한 정찰을 할 수 없다. 이런 프로젝트가 국방 R&D 예산 부족으로 중단된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심각한 것이다.

 

K-방산으로 대한민국 방산기업의 곳간이 여느 때보다 풍족한 것은 맞다. 매출액이 높고 수주 소식이 많으니 방산기업들이 번 돈으로 알아서 무기를 개발하고,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성급한 의견들이 들려온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로 아직도 국가 연구기관이 핵심 지식재산권(IP)을 가진 무기들이 해외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국가 연구기관의 결정이 앞으로의 미래 무기 방향성을 결정한다. 업체 주도 연구개발을 부르짖는 현실과 달리, 업체가 핵심 무기체계를 책임지면 업체끼리 억지로 경쟁을 붙이거나 핵심 부품에 대한 권한을 요청한다. 

 

업체에 대한 믿음과 방위산업에 대한 육성 의지, 무엇보다 과학기술을 통해 미래전에서 적보다 우위를 달성해야 한다는 국방과학의 대원칙을 정부가 명심하고, 다시는 지난해와 같은 ‘R&D 예산 삭감’사태가 재발하면 안 된다. 들려오는 말로는 그나마 올해는 사정이 나아진다지만 각 기업은 예산의 확보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진짜 국방과학과 방위산업을 육성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의심을 푸는 책임 역시 정부에 있다. 훨훨 순항 중인 K-방산의 날개를 정부가 꺾으면, 역사가 이를 기억할 것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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