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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실패한 돌려막기'는 형사처벌의 대상일까?

변제 의사나 능력이 처음부터 없었음을 입증하기 쉽지 않아…플랫폼 미정산 사태 커지며 전세사기 논의 엮일지 주목

2024.08.07(Wed) 11:06:42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5월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처리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돈을 갚지 못하거나 투자를 잘못하면 형사처벌을 받을까? 형사처벌을 받는다면 어떠한 범죄가 성립될까? 필자가 학부 시절부터 갖고 있던 의문이다.

 

보이스피싱과 같이 기망행위가 명백하다면 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돈을 갚지 못하거나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는 민사책임의 사유일 뿐 형사책임을 야기하지 않기 때문인데, 일반인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지점인 듯하다. 상담하다 보면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변제를 회피하거나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데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느냐”라는 문의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법리적으로 보면, 처음부터 돈을 갚을 생각이 없었거나 갚을 능력이 없었다면 기망의 고의가 인정돼 사기죄가 성립된다. 그러나 변제 의사나 능력이 처음부터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 사건에서 사기죄로 기소되는 경우는 많지 않고, 형사사건에서는 십중팔구 피의자나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게 된다.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한지, 아니면 형사처벌의 대상인 사기죄에 해당하는지 치열하게 논의했던 최신 사례가 바로 ‘전세사기’다.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gap)이 적은 집을 고른 후, 주택 매입과 동시에 전세 세입자를 구하는 이른바 ‘갭투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쉽게 볼 수 있는 투자 방식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이사 열 번 하면 집이 하나 생긴다’는 말이 있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고파는 행위를 계속하면 집이 한 채 생긴다는 말인데, 레버리지(차입 투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남의 돈을 가지고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는 걸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갭투자로 집을 샀다”고 하면 투자를 잘했다고 칭찬할 일이지, 임차인의 돈을 함부로 썼다고 비난하지 않는 분위기다. 부동산 가격이 끊임없이 오르는 우리나라의 실정과 임차인의 돈으로 주택을 구매했던 과거의 관행을 감안해 갭투자를 자연스러운 투자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레버리지를 너무 많이 끌어와 갭투자에 실패한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본인이 투자를 잘못해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한데, 더 나아가 임차인과의 관계에서 사기죄가 될 여지가 있을까?

 

주택 가격이 인상될 것이라 예상해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고, 임대차 보증금도 받았다. 대출 상환기간과 임대차 기간이 남았으니 그 돈으로 다른 주택을 샀고, 이러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거나, 너무 많은 액수의 대출을 받거나 임대차 보증금을 받은 경우 채무가 주택의 실제 가치를 초과하게 되는데, 이를 ‘깡통주택’이라고 한다. 깡통주택은 과거에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임대차보호법은 소액 임차인에 대해서는 최우선 변제권을 인정하고, 주택을 인도 받아 거주하면서 전입신고를 마친 경우에는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인정한다. 이처럼 임차인 보호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은 임차인이 깡통주택에 들어갔다가 임대차 보증금을 날리는 사례가 과거부터 많았음을 보여준다.

 

임차인이 깡통주택에 들어가 임대차 보증금을 날린 경우, 과거에는 민사책임으로만 보고 형사처벌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다. 필자가 10여 년 전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근무할 당시 수행했던 민사사건 중 상당수가 임대차 보증금 반환청구 소송 및 이와 관련한 집행 사건이었는데, 그 당시엔 깡통주택을 만든 임대인을 사기로 형사고소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업무 처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동 1층에 마련된 전·월세 종합지원센터에서 시민에게 무료 법률 상담과 전세사기 피해 지원 등을 제공한다. 사진=임준선 기자

 

최근 전세사기라고 부르는 사건은 깡통주택과 다를 바 없다(문서를 위조하거나,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으려 허무인·노숙자를 임대인으로 세워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보증금을 편취하는 등의 명백한 사기는 논외로 한다). 

 

검찰은 보도자료에 전세사기 사건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이를 살펴보면 규모가 커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일어나는 ‘돌려막기를 통한 갭투자’와 다르지 않다.

 

-A는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반환 대책 없이 보증금 일부를 빌라 신축 등의 사업자금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전세금을 돌려막다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전세금 반환 요청을 더 이상 응하지 못하고 세입자들로부터 집단고소를 받아 본건에 이르게 됐음.

 

피의자, 피고인은 합법적인 갭투자로 단지 사업에 실패했을 뿐 임차인을 기망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러한 사안에서 대전지방법원 2023고단1976 등 판결은 아래와 같이 ‘정상적인 갭투자’와 ‘갭투자를 이용한 전세사기’를 구분하면서 후자의 경우 사기죄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 전세사기 범행은 정상적인 ‘부동산 갭(gap, 차액) 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보통 부동산 갭투자는 전세 세입자가 이미 존재하거나 매매 잔금 전에 전세 세입자를 구하는 것을 전제로 주택을 매수하면서 매매대금 중 일부는 전세보증금으로 대체하거나 충당하고 나머지, 즉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에 해당하는 금액만으로 주택을 매수하는 것이다. 이는 부동산 매매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하락해 전세보증금 합계액보다 낮아질 경우 소유자(임대인)의 자력이 부족하다면 전세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반환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반면 부동산 갭투자를 이용한 전세사기는 이와 달리 부동산 갭투자 방식으로 부동산을 매수하지만 정상적으로 주택 가격의 상승을 기다리지 않고 처음부터 전세보증금의 합계액을 주택 가격보다 높게 만들어 전세보증금 전액을 편취하는 것이다. 

 

전세사기가 사회 초년생 등에게 미치는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처벌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갭투자에 성공하면 과실은 임대인이 모두 수취하면서, 갭투자에 실패하면 손해와 리스크를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다만 법리적으로는 ‘합법적인 갭투자’와 ‘사기죄가 성립하는 전세사기’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아, 전세사기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는 죄형법정주의와 대립각이 설 수밖에 없다.

 

본 칼럼에서 전세사기에 대한 법리,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살펴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근 벌어진 온라인 플랫폼의 정산 지연·미지급 사태의 본질이 ‘돌려막기를 통한 갭투자’라는 전세사기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 정산 지연 사태에 관한 법적 논의가 전개되면 기존의 전세사기에 관한 논의도 다시 인용될 것으로 예상해 본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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