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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호킹도 틀렸다? 다시 오리무중에 빠진 암흑 물질의 정체

'원시 블랙홀'일 가능성 확인하기 위해 20년 관측 데이터 연구했지만…

2024.08.05(Mon) 18:17:55

[비즈한국] 우주 질량의 대부분, 무려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암흑 물질. 일반적인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의 몸, 행성, 별보다 훨씬 더 많다. 사실 우주는 밝게 빛나는 별의 세계가 아니라 암흑 물질의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난감하게도 우주의 주류를 차지하는 이 암흑 물질의 정체는 정작 아무도 모른다. 

 

암흑 물질은 빛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망원경으로 우주를 봐도 소용이 없다. 빛을 감지하는 고전적인 관측으로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오직 단 하나, 자신의 질량만큼 중력을 과시할 뿐이다. 그래서 암흑 물질이라는 유령의 존재는 그들이 남긴 중력의 흔적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다. 

 

빛나지 않지만 오직 강한 중력만 과시한다는 암흑 물질의 성질을 생각하다보면 문득 떠오르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 너무 중력이 강해서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시공간에 구멍을 뚫는 존재, 블랙홀이다. 꽤 많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우주의 부족한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암흑 물질이라는 미스터리의 정체가 사실은 우주 공간 어둠 속에 숨어 있는 크고 작은 블랙홀일 수도 있다고 추측해왔다. 

 

초기 우주에서 지금까지 암흑 물질 구조의 형성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사진=Ralf Kaehler/SLAC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우리에게 익숙한 블랙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태양 질량의 수십 배 정도로 무거운 별이 진화를 마치고 붕괴하면서 남기는 항성 질량 블랙홀, 그리고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태양 질량의 수백만에서 수십억 배 수준의 아주 거대한 초거대질량 블랙홀이다. 

 

하지만 우주에는 좀 더 특별한 블랙홀도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빅뱅 직후, 우주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탄생한 원시 블랙홀이다. 원시 블랙홀은 태양 하나보다 훨씬 질량이 가벼울 수 있다. 지구 하나 질량, 심지어 겨우 소행성 하나 정도만큼 질량이 훨씬 가벼울 수도 있다. 비록 개개의 질량은 훨씬 가벼울지라도 아주 많은 수의 원시 블랙홀이 우주 공간, 우리 은하 주변 헤일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떠돌고 있다면 지금까지 설명할 수 없었던 우리 은하의 지나치게 무거운 질량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알고 보니, 우리 은하 헤일로를 겉보기보다 더 육중하게 채우고 있던 암흑 물질이라는 유령의 정체는 바로 이 원시 블랙홀들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최근 이 위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이 답을 찾기 위해 무려 20년에 걸친 방대한 관측 결과를 활용했다. 20년이나 걸린 긴 기다림 끝에 확인한 답은 과연 어떨까? 슬프게도 우리 은하 주변 헤일로에는 원시 블랙홀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흑 물질의 정체가 원시 블랙홀이기를 바랐던 천문학자들의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원시 블랙홀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제안한 개념으로도 유명하다. 보통 거대한 별이 붕괴하면서 만들어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블랙홀과 달리 원시 블랙홀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탄생한다. 빅뱅 직후, 우주는 태초부터 완벽하게 균일하지 않았다. 어떤 지역은 주변보다 아주 살짝 밀도가 높거나 낮았다. 주변보다 아주 살짝 밀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의 물질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밀도가 높은 지역은 밀도가 더 높아지고, 밀도가 낮았던 지역은 사방으로 물질을 빼앗기면서 더 텅 비어갔다. 이 과정을 통해 지금의 그물처럼 은하들의 분포가 얽힌 거대한 우주 거대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태초에 존재한 미세한 밀도 차이는 은하를 빚는 은하의 씨앗이 되었다. 한편 더 밀도가 높았던 지역은 좁은 영역으로 빠르게 물질이 모여들면서 곧바로 작은 미니 블랙홀로 반죽될 수도 있다. 수억 년에 걸친 진화를 끝마치고 별이 죽으면서 남기는 일반적인 블랙홀이 아니라 아주 먼 옛날 빅뱅 직후, 우주에서 가장 최초로 튀어나왔을지 모르는 상상 속의 존재, 원시 블랙홀은 이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원시 블랙홀 중 일부는 일찍이 자기들끼리 반죽하면서 덩치를 키웠고, 은하 중심에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로 병합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원시 블랙홀이 우주 공간을 그대로 떠돌며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은하 주변 헤일로 공간에도 수많은 원시 블랙홀이 떠돌고 있다면 어떨까? 원시 블랙홀에 의한 중력 효과를 암흑 물질에 의한 효과라고 오인한 건 아닐까? 암흑 물질의 정체가 정말 헤일로를 떠도는 원시 블랙홀 조각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 은하 헤일로 안에 얼마나 많은 수의 떠돌이 블랙홀이 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문제는 블랙홀은 직접 빛을 내지 않는 어둠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홀의 존재를 어떻게 눈치챌 수 있을까? 

 

우주 공간을 떠도는 원시 블랙홀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그림. 이미지=NASA’s Goddard Space Flight Center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주변의 우주 시공간 자체를 휘어버린다. 그래서 블랙홀 너머 배경 우주의 빛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휘어서 지구를 향해 들어오는 중력 렌즈 현상이 벌어진다.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먼 배경 천체, 그리고 그 사이에 육중한 중력으로 주변 시공간을 왜곡하는 또다른 천체가 거의 일직선에 놓이게 되면 배경 천체의 빛이 가장 크게 왜곡되는 중력 렌즈 현상이 벌어진다. 

 

중력 렌즈는 간단하게 와인잔을 갖고 이해해볼 수 있다. 제임스 웹 망원경의 딥필드로 관측한 머나먼 배경 우주의 사진 위에 와인잔을 하나 올려본다고 생각해보자. 와인잔의 바닥은 마냥 평평하지 않다. 가운데로 갈수록 유리의 두께가 조금씩 두꺼워진다. 그래서 와인잔 바닥 밑에 있는 사진이 둥글게 왜곡되어 보인다. 사진 위에 올려둔 와인잔을 천천히 움직이면 그 아래에 있는 사진 속 천체들의 모습이 천천히 휘어져 보인다. 실제 우주에서 벌어지는 중력 렌즈도 이것과 비슷하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배경 우주의 시야 앞으로 주변 시공간을 왜곡하고 있는 렌즈 역할을 하는 천체가 지나가면 우리는 그 너머의 빛을 일그러진 허상의 모습으로 보게 된다. 

 

특히 렌즈 역할을 하는 천체가 더 작고 가벼우면 좀 더 특별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렌즈 천체를 중심으로 여러 방향으로 휘어져 날아갔던 배경 별의 빛이 다시 지구를 향해 모여든다. 그러면 지구에서 봤을 때, 배경 별은 실제보다 훨씬 더 밝게 증폭되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마이크로렌징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 은하 헤일로 너머 배경 별들을 쉬지 않고 모니터링하면서 배경 별들이 잠시 밝게 증폭되어 보이는 마이크로렌징 현상이 얼마나 자주 관측되는지 확인하면 얼마나 많은 수의 원시 블랙홀들이 헤일로를 떠돌고 있는지, 또 각각의 질량은 얼마나 무거운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 마이크로렌징은 순전히 우연히 벌어진다. 예측할 수 없다. 배경 별 앞으로 거의 일직선에서 우연하게 렌즈 역할을 하는 천체가 앞을 가리고 지나가야 한다. 게다가 다른 쪽 방향에서 한눈을 파느라 놓쳐버리면 그대로 관측할 기회는 날아간다! 또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모니터링을 해야 놓치지 않고 원시 블랙홀을 찾을 수 있다. 

 

질량이 태양 정도로 그리 무겁지 않은 천체가 렌즈 역할을 할 경우에는 배경 별이 밝게 증폭되어 보이는 현상은 약 일주일 사이에 진행된다. 태양 질량의 100배 정도 훨씬 무거운 렌즈 천체가 배경 별을 휘게 한다면 배경 별은 수년에 걸쳐 아주 천천히 밝아졌다가 다시 원래 밝기로 돌아간다. 따라서 이렇게 무거운 원시 블랙홀의 존재 여부까지 엄밀하게 검증하려면 수년 이상, 아주 긴 기간 꾸준히 쉬지 않고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배경 별들이 잠시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증폭 현상이 벌어지는지 포착해야 한다! 

 

우주 공간을 떠도는 블랙홀에 의해 배경 별빛이 잠깐 밝게 증폭되어 보이는 현상을 관측한 사진. 사진=NASA, ESA, Kailash Sahu(STScI)


이를 위해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안에서 벌어지는 마이크로렌징 현상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모니터링하는 대대적인 관측 프로젝트 OGLE(Optical Gravitational Lensing Experiment)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우리 은하 헤일로 공간을 떠돌고 있을지 모르는 원시 블랙홀에 의한 마이크로렌징을 포착하기 위해 이번 분석에서는 우리 은하 곁을 맴도는 위성 은하 중 하나인 대마젤란은하 쪽 하늘을 관측한 결과를 분석했다. 

 

대마젤란은하와 지구 사이, 우리 은하 헤일로 공간에서 원시 블랙홀이 우연히 지나갔다면 그 블랙홀로 인해 대마젤란은하 속 별빛이 잠시 밝게 관측되는 마이크로렌징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수년에 걸쳐 천천히 지속되는 비교적 무거운 천체에 의한 마이크로렌징 현상까지 놓치지 않고 최대한 잡아내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무려 2001년부터 2020년까지 20년간 쌓인 방대한 관측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동안 OGLE은 대마젤란은하 속에서 빛나는 8000만 개 가까운 별들의 밝기 변화를 꾸준히 모니터링했다. 

 

만약 우리 은하 헤일로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 물질의 정체가 전부 원시 블랙홀이라면 20년 사이 마이크로렌징 현상이 굉장히 빈번하게 목격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은하 헤일로 속 원시 블랙홀들이 전부 태양 질량 10배 수준의 질량을 갖고 있는 블랙홀이라면 전체 관측 기간 동안 대마젤란은하 쪽 하늘에서 258번의 마이크로렌징 현상이 관측됐어야 한다. 헤일로 공간 속 떠돌이 원시 블랙홀들이 태양 질량 100배 수준의 블랙홀이라고 가정하면 총 99번, 태양 질량 1000배 수준의 블랙홀이라고 가정하면 적어도 27번의 마이크로렌징을 봤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20년에 걸쳐 진행된 방대한 관측 결과는 어떨까? 

 

그 결과는 참담하다. 20년간 OGLE 서베이가 대마젤란은하 쪽 하늘에서 포착한 마이크로렌징 현상은 총 12번뿐이다. 게다가 배경 별이 얼마나 밝게 증폭되어 보였는지를 통해 렌즈 역할을 한 천체의 질량을 구해보면, 12번 전부 다 이미 존재를 알고 있는 우리 은하 속 별에 의해 벌어진 단순한 마이크로렌징이었다. 즉 헤일로 공간을 떠도는 원시 블랙홀에 의한 마이크로렌징 현상은 단 하나도 확인되지 않았다. 스티븐 호킹이 예측한 헤일로 속 원시 블랙홀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20년간 관측으로 확인된 마이크로렌징을 일으키는 고밀도 천체들을 다 끌어모아도 우리 은하 헤일로 전체 질량을 채우지 못한다. 태양 질량의 1.8 × 10−4배에서 6.3배 사이의 질량을 가진 천체들을 다 끌어모아도 우리 은하 헤일로 질량을 채우는 데 필요한 암흑 물질 질량의 1%에 불과하다. 더 넓은 범위까지 포함해, 태양 질량의 1.3 × 10−5배에서 860배 사이의 질량을 가진 천체들까지 끌어모아도 우리 은하 헤일로 속 암흑 물질 전체 질량의 10%를 겨우 채울 뿐이다. 사실상 원시 블랙홀로는 우리 은하의 암흑 물질 목표치를 전혀 채울 수 없다. 암흑 물질의 정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던 원시 블랙홀은 이제 그 후보에서 사라져버렸다.

 

이번 관측을 통해 암흑 물질의 질량 대부분이 원시 블랙홀로 채워져 있다고 밝혀졌다면, 암흑 물질의 미스터리는 더 쉽게 풀렸을지도 모른다. 블랙홀이라는 고질적인 미스터리는 남겠지만 그래도 암흑 물질이 신비로운 물질이 아니라 단지 질량이 가벼워서 찾기 어려웠을 뿐인 블랙홀 조각이었다는 좀 더 평화로운 결말이 가능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 관측은 그런 평화로운 결말조차 기대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물리학자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할 결말을 가리키고 있다. 암흑 물질은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신비로운 입자로 이루어진 전혀 새로운 물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704-6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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