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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어느날 아이돌이 사라졌다' 그들의 생존기

하나만 뜨면 '초대박' 사채까지 써가며 뛰어들어…본인 운명 좌우하는 계약서에 아이돌 요구는 반영 안 돼

2024.08.06(Tue) 11:14:41

[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K팝은 지금 ‘금광 캐기’에 혈안 돼 있습니다.” 중소기획사 대표의 말이다. “한 팀만 성공해도 대박도 아니고 초대박이니까 그런 거죠. 사채를 써서 아이돌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K팝 산업의 규모가 커지자 ‘아이돌 제작’에 뛰어드는 사업가가 급증했다. 실제로 매년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종사자가 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대중문화예술산업 전체 매출 규모는 11조 4362억 원이다. 이 중 기획업은 6조 8137억 원으로 2020년 대비 52.2% 증가했고, 제작업은 4조 6225억 원으로 2020년 대비 36.6% 증가했다. 기획업에 종사하는 전체 소속직원 역시 1만 9008명으로 2020년 대비 8%가량 증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돌이 매년 수십 팀 데뷔하고, 소리 없이 사라진다. ​이름 한 번 들어보기만 했어도 ‘성공한 아이돌’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사업가는 돈을 걸고, 아이돌은 인생을 건다. 인생을 건 도전에서 밀려난 아이돌은 어떻게 될까?

 

매년 수십 팀의 아이돌이 데뷔하고, 그 중 많은 팀이 소리 없이 사라진다. 대박을 좇는 행렬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클로리스 멤버 허미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계약기간 7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 아이돌, 클로리스 출신 허미진 씨를 만나 뒷이야기를 들었다.


#클로리스는 왜 사라졌을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룹.’ 걸그룹 클로리스 팬이었던 수영은 이렇게 회상했다. “외국 팬들이 많았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한 후 컴백을 준비하고 있어서 기대했죠. 그런데 갑자기 활동을 종료한다고 공지해서 정말 황당했습니다.”

 

2020년 해체된 걸그룹 클로리스. 국내보다 튀르키예와 중국을 중심으로 유명세를 얻어 팬들의 기대감이 높았던 그룹이다. 클로리스는 왜 해체됐을까? 멤버였던 미진은 당시를 이렇게 말한다. “재데뷔 수준으로 멤버를 정비하고, 앨범도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팬들도, 저희도 기대가 컸던 상황이었어요. 녹음도 전부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갑자기 일부 멤버가 탈퇴의사를 밝혔고, 모든 게 결정된 후 회사로부터 그룹 해체를 통보받았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을’이었다

 

연기를 전공한 미진은 아이돌 오디션을 제안받았다. 오디션을 위해 난생 처음 춤을 춰봤다. 2017년, 그렇게 미진은 아이돌 ‘연습생’이 됐다. 소속사 직원은 5명가량. 보컬 레슨을 제외하곤 모두 자체적으로 연습했다. 반년이 채 되지 않아 4인조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행운을 얻었다. “회사가 작다 보니 저희가 직접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특히 초창기에는 팬클럽 관리와 마케팅도 저희가 했습니다.”

 

스케줄의 대부분은 ‘행사’로 채워졌다. 2년 동안 발매한 앨범은 하나뿐. “일정의 90% 정도를 행사로 채웠습니다. 10%는 라디오나 방송, 인터뷰 등이었죠. 인력이 없다 보니 운전이 서툰 직원이 운전을 하거나, 식사를 아예 못 하고 하루 종일 행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이어트로 힘도 많이 없었고, 월경을 할 때는 어지럼증이 찾아왔어요. 그래도 행사할 때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팬들도 만날 수 있고요.”

 

미진은 2017년 걸그룹 클로리스로 데뷔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사진=허미진 제공

 

그러던 중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튀르키예에서 클로리스의 노래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된 거다. “튀르키예 유명 커뮤니티에서 저희 영상과 사진이 퍼지고, 이후 SNS를 통해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인스타그램 DM이 새벽에도 끊이지 않고 계속 올 정도였습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지만, 현지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튀르키예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회사에서 판단했기 때문이다. “초대도 많이 받았지만, 결국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죠. 처음에는 굉장히 속상했습니다.”

 

2년 동안 수많은 행사를 다녔지만, 정산을 받은 적은 없었다. 정산서도 요청한 후 한참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영수증이나 계약서는 없었고, A4 용지에 숫자로만 비용이 써 있었죠. 행사를 정말 많이 다녔는데, 행사 수입이 몇 십만 원 수준으로 적혀 있었어요. 당연히 모든 게 적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2020년 클로리스는 갑작스럽게 해체됐다. 일부 멤버를 영입해 컴백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진은 해체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작은 소속사라 멤버들이 실무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전적으로 ‘을’이었다. 남아 있는 계약기간도 ‘갑’에게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굉장히 막막했죠.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멤버 언니와 같이 소속사를 찾아봤습니다. 당시 여러 소속사에서 제의가 왔고, 그 중 한 곳에서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미진은 데뷔 조에 바로 합류했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소속사를 떠나야 했다. “트레이닝은 굉장히 체계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데뷔 프로젝트팀이었지만, 데뷔 일자가 정해진 건 아니었어요. 분위기가 이상했죠. 연습생도 많고,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는데 계약과 달리 데뷔를 안 시켜줄 거 같은 분위기였어요. 결국 멤버 언니와 같이 그룹을 나왔고, 걸그룹 데뷔도 무산됐습니다.”

 

#비자발적 은퇴, 그 후…


2021년. 아이돌을 그만둔 미진의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홈쇼핑부터 카페 운영까지, 미진은 처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아이돌을 그만둔 미진은 쇼핑몰과 카페를 운영했다. 자영업 외에는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사진=허미진 제공


아이돌 생활에서 배운 건 ‘계약서’를 잘 보는 법이다. 계약서 한 장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데뷔를 목전에 두고 계약서를 ‘검토’하기는 어렵죠. 수정 요청을 하더라도 회사에서 받아주지도 않고요. 일단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사인을 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인 하나가 모든 것을 좌우해요. 계약에 걸려 연습생만 오래 하다가 그만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미진은 이때의 경험을 되살려 보험설계사가 됐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학생 때의 뼈저린 경험을 통해 지금은 철두철미하게 계약 내용을 살펴봅니다. 아이돌 시절의 경험 덕분에 학습한 거 같아요.”

 

미진은 여기에 오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요소를 ‘경력단절’로 꼽았다. “아이돌 생활이 다른 일을 할 때 경력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현실적으로 아이돌로 성공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실력이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주변에 아이돌을 그만둔 친구들은 대부분 자영업을 해요. 저도 경력에 한계가 없었다면 전문직에 도전했을 것 같습니다. 경력단절 예술인들을 위한 대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다음 편에는 표준계약서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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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

사진·영상=박정훈 기자

onepar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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