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연구·개발(R&D) 분야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하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정부의 R&D 정책은 물론 재정건전성 중시 기조까지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과학계 카르텔을 바로잡겠다며 올해 R&D 예산을 전년 대비 3조 원 가까이 삭감했다.
이후 세계 각국의 첨단 기술 지원 흐름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내년에 R&D 예산을 다시 늘리기로 했다. 그러더니 아예 R&D에 대해서는 예타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예타를 강화한 뒤 예산이 절감되던 효과가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7일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성장의 토대인 연구·개발(R&D) 예타를 전면 폐지하고, 투자 규모를 대폭 확충하라”고 지시했다. 미국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이 확대되는 것과 맞물려 우리나라도 직접 지원을 늘리기 위해 R&D 예타 완화나 선별적 면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윤 대통령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R&D 분야의 예타를 전면 폐지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현재는 총 사업비 500억 원(국비 300억 원) 이상인 재정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예타를 거쳐야만 한다. 정부는 R&D 분야 예타 폐지를 위해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법률이 개정되기 전에는 R&D 분야에 대한 예타 면제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여당도 정부 방침에 맞춰 R&D를 예타에서 제외하는 국가재정법 일부개정안과 과학기술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부는 예타 폐지 진행과 함께 올해 삭감됐던 R&D 예산 역시 내년에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하지만 R&D 관련 예산 정책 방침이 과학기술계를 혼란에 빠뜨린 것은 물론 윤석열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내세웠던 재정건전성마저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예산을 편성하면서 R&D 분야에 전년(24조 7000억 원)보다 2조 8000억 원 줄인 21조 9000억 원을 배정했다. R&D 예산이 과학기술계의 나눠먹기식으로 분배된다며 대폭 삭감했던 것이다.
그러다 1년도 안 돼 R&D를 강화한다며 내년 R&D 예산을 역대 최고 수준인 2조 9000원 늘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냉·온탕 정책으로 2년 동안 실제로 늘어난 금액은 1000억 원에 불과해 사실상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R&D 부문에서 예타를 폐지할 경우 예타 덕에 개선되던 재정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예타 면제 사업은 2017년 12건이었으나 2018년에 30건으로 2배 넘게 뛰었으며, 2019년에 47건까지 증가했다. 2020년, 2021년에 다소 감소했지만 각 31건으로 여전히 30건대를 넘겼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예타 면제 사업은 2022년에 26건, 2023년에 24건으로 감소세를 탔다.
예타 면제가 줄면서 투입되는 사업비도 감소했다. 2018년 12조 8798억 원이었던 예타 면제 사업의 총 사업비는 2019년 35조 9750억 원까지 급증한 뒤 2020년 30조 215억 원으로 30조 원을 넘겼지만, 지난해에 11조 9999억 원까지 줄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예타 면제 사업의 총사업비가 절반 이하로 줄면서 재정건전성이 좋아지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이러한 예타에 따른 재정 개선 효과는 R&D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국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예타가 완료된 R&D 사업 138개 중 시행 판정을 받은 사업은 현재 71개다. 71개 사업에 대해 당초 부처가 요구했던 총 사업비는 58조 원이었지만 예타를 통해 조정된 사업비는 32조 2000억 원이었다. 사실상 R&D 분야에 대한 예타로 25조 8000억 원의 예산이 절감된 것이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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