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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로힝야 난민 여성들의 희망 연대기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

미얀마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위한 '샨티카나 치유센터' 이야기

2024.07.31(Wed) 18:08:02

[비즈한국] ‘세상에서 가장 핍박받는 민족’. 로힝야족에게는 이런 슬픈 별명이 붙어 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라카인주에 살던 무슬림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불교가 주류인 미얀마 내에서 오래전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그러다 2017년 8월 25일 미얀마 군부와 극우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끔찍한 집단학살을 당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폭력이 한 달이나 이어졌다. 로힝야족 1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0명에 가까운 여성들이 강간당했다. 그때 로힝야인들이 학살을 피해 도망친 곳이 현재 난민캠프가 자리한 이웃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다.

 

로힝야 난민들이 머무는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는 한국의 인권단체 아디(ADI, Asian Dignity Intitiative)가 만든 샨티카나 힐링센터가 있다. 샨티카나(Shanti-Khana)는 ‘평화의 집’이라는 뜻으로 로힝야 난민 여성들을 지원하는 치유센터다. 샨티카나에서 로힝야 여성들이 희망을 키워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다.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

: 로힝야 난민 여성들의 집 ‘샨티카나’에 가다

 

공선주 오로민경 이승지 이유경 전솔비 지음 파시클출판사

280쪽, 2만 2000원

 

현재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에는 약 100만 명이 거주하는데, 그 중 52%가 여성이다(UNHCR, 2023). 열악한 캠프에서도 여성은 거의 최하층에 있는 약자다. 무슬림 공동체의 규율로 인해 로힝야 여성들은 낮에는 남자 없이 외출할 수 없고, 글도 배울 수 없다. 캠프에서는 NGO의 배급품을 받고 자기 이름을 서명해야 하는데, 로힝야 여성들은 글을 모르고 나올 수도 없으니 다른 남성에게 부탁하고 부당한 요구를 받는 경우가 많다(남편은 대부분 학살에서 숨졌다). 생계의 어려움 속에서 외부의 위협과 성폭력에까지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샨티카나에서는 로힝야 여성들이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심리회복 프로그램, 문해교육, 생계교육을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르고, 커뮤니티의 리더로 성장하게 한다. 다른 NGO가 만든 여성 커뮤니티와 다르게 샨티카나는 로힝야 난민 여성들이 자조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 미얀마에서 탈출한 로힝야인 100만 명이 머물고 있다. 사진=아디 제공

 

난민들이 지내는 캠프 안의 셸터(임시 거주지)는 가족이 몸을 눕히고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너무 좁고 어둡고 덥다. 더욱이 여성에게는 보수적인 문화의 압력이 더해진다. 그래서 로힝야 난민 여성들은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다’고 말하며 샨티카나로 온다. 이곳에서는 함께 춤출 수 있고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기에.

 

샨티카나에 들어서면 로힝야여성심리지원단 두 명이 방문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옆으로 다가가 따뜻하게 말을 걸고,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방문자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든든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난민 여성들은 센터에 와서 몸과 마음을 살리는 요가와 명상을 하고, 영어를 배우고, 텃밭을 일궈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끔찍한 박해와 학살의 경험에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을 되살린다. 감옥과 다름없는 난민캠프 생활 속에서 다시금 일상을 희망을 키워낸다. 2023년 기준 6000여 명의 여성이 샨티카나를 방문했다.

 

샨티카나는 로힝야 난민캠프 여성들이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자 아지트이며, 스스로를 존중하고 지키는 법을 배우는 배움의 장이다.

 

“미얀마에서 나는 그냥 로힝야 여성이었지만, 이곳에 와서 로힝야 여성 공동체에서 존중받는 ‘아푸(존칭)’가 되었고, 전문적인 일이 있고, 길거리를 활보하고, 남성들 앞에서 나의 NGO 활동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영어로 서명을 하게 되었다.”

 

학살의 기억을 떨치고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게 된 로힝야 여성의 말이다. 샨티카나의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들의 ‘회복탄력성’이 빛을 발하면서 남성들과 공동체의 시선도 달라졌다. 여자가 배우고 외부에서 활동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여성의 활동을 지지하는 가족들이 생겨났다. 여성의 치유가 가족과 로힝야 공동체에 변화를 일으키고,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샨티카나에서 하는 심리지원 프로젝트. 로힝야 여성들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사진=아디 제공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에는 샨티카나에서 일상을 직조해나가는 로힝야 난민 여성들, 샨티카나가 생겨난 초기 활동가들, 샨티카나를 운영하는 현재 활동가들, 그리고 샨티카나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연대하는 창작자들의 글이 담겼다. 2018년 아무것도 없던 땅바닥에서 샨티카나 센터를 구상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일(별빛 공선주), 이미지와 텍스트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성들과 함께하며 웃고 울던 순간들(전솔비, 오로민경), 센터와 난민캠프를 꾸려가는 방글라데시 직원들의 이야기(비바 이승지), 로힝야족의 수난과 박해의 역사(이유경)까지 센터를 만들고 지키는 활동가들의 고민과 희노애락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린다. 열악한 현실에서 끝끝내 일상을 재건해가는 로힝야 여성들은 우아하고 강건한 연꽃을 닮았다. 박해와 학살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춤춘다. 꿈꾼다. 살아간다.​ 

김남희 기자

namhee@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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