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티몬·위메프 사태로 자금이 묶인 판매자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티몬·위메프 모회사인 큐텐그룹의 구영배 대표가 “사재를 활용해서라도 유동성 확보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알고 보니 법원에 티몬·위메프의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정산을 받지 못한 판매자들의 절망감은 더욱 커졌다.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소상공인을 위한 5600억 원대 지원책을 내놨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행상품 대금 미정산으로 시작된 티몬·위메프 사태가 양 사의 법정관리로 이어지면서,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월 29일 티몬과 위메프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는데, 이 경우 채권자가 받아야 할 대금이 동결되고 채무 일부가 탕감된다. 손해배상 등 민사 소송의 길도 막히기 때문에 판매자는 기약 없이 상황을 지켜보게 됐다. 여기에 큐텐의 또 다른 계열사인 인터파크커머스마저 7월 30일 “티몬, 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영향으로 정산금을 수령하지 못했고, PG사 결제 대금 지급 보류 영향으로 정산 지연이 발생했다”고 공지하면서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사태가 악화하자 정부와 국회도 나섰다. 30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긴급 현안 질의를 열고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 등을 불러 대책을 촉구했다. 앞서 29일에는 금융당국이 판매자를 위해 유동성 공급 차원에서 5600억 원대 자금 지원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2000억 원대의 긴급경영안정 자금을 공급하고, 신용보증기금과 기업은행이 3000억 원대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식이다.
하지만 판매자 사이에선 이번 사태가 ‘예견된 참사’였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습적인 정산 지연, 잦은 할인 행사와 이벤트, 현금 확보를 위한 포인트 판매 및 상품권 선판매 등이 몸집 키우기에 급급한 플랫폼에서 나타나는 ‘위험 신호’였다는 것이다.
판매자가 플랫폼의 자금난으로 피해를 입은 사건은 꾸준히 일어났다. 2023년 1월에는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보고(운영사 보고플레이)’의 미정산 사태가 발생했다. 보고는 상품에 따라 결제금액의 최대 100%까지 포인트를 주는 파격적인 할인 혜택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비스를 중단했다.
당시 보고플레이도 큐텐처럼 판매 대금을 영업비용에 쓰는 돌려막기를 한 탓에 입점업체의 피해가 컸다. 보고의 미정산 판매 대금은 336억 원에 달했다. 보고는 정산시스템 변경 등 자체 회생을 시도하다 결국 기업회생을 신청했고, 올해 5월 회생절차를 마치고 서비스를 재개했다. 보고 사태의 여파로 지난해 2월 리뷰 커머스 ‘하우스앱’도 판매 대금 정산 불가를 통보했다.
올해도 피해가 발생했다. 디자인 문구 플랫폼 ‘바보사랑(운영사 웹이즈)’은 7월 1일 홈페이지에 돌연 폐업을 공지했다. 회사의 전 직원은 미리 퇴사하고, 입점업체에는 판매 대금을 정산하지 않은 ‘먹튀’ 폐업이었다. 위탁상품마저 판매자가 직접 물류센터를 찾아 회수해야 했다. 피해 업체들은 웹이즈 대표를 상대로 고소와 민사 소송에 나섰지만, 웹이즈가 파산신청을 예고한 탓에 판매 대금을 되찾을지는 미지수다.
이렇다 보니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도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탓에 여파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플랫폼마다 제각각인 정산 주기가 꼽힌다. 가이드라인이나 규제가 없어 정산이 평균 50~60일, 길면 100일까지 걸리지만, 매출이 아쉬운 소상공인·중소기업은 입점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플랫폼이 판매 대금을 장기간 보유한 것이 대금 유용이나 미지급 사태로 이어졌다는 평이다.
방기홍 전국문구점살리기연합회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매출은 크게 줄고 온라인 시장이 커졌다. 온라인 매출 비중이 커지면 플랫폼의 부당한 정책을 알아도 따를 수밖에 없다. 애초에 판매자는 조건을 협의할 권한도 없다”며 “플랫폼이 정산대금을 돌려막기 하는 것도 자금을 보유하는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앞서 경고가 나왔을 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치했어야 했다”라고 역설했다.
정부가 사태를 예방할 기회를 놓쳤다는 의견도 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정산 주기 관련 규정, 판매자를 위한 보험 등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몰랐던 것이 아니라 손을 놓고 있었다고 본다”며 “플랫폼이 판매 대금에 손을 대지 못하게 일부는 기관에 맡기거나 신탁하도록 관련 법으로 규제해야 했다”라고 강조했다.
온라인플랫폼 공정거래에 관한 법안은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온라인플랫폼 중개 거래 관련 법안이 20개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5개가 발의됐으나 계류된 상태다. 7월 5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 및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에는 △판매 대금 지급 기한을 40일 이내로 정하고 △40일이 지난 뒤 지급하는 경우 플랫폼 사업자가 이자를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규제가 없으니 미정산 사태가 발생했을 때 판매자가 대처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소비자와 달리 민원·신고를 일원화한 기관도 없다. 대금을 떼인 판매자는 경찰에 고소·고발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전부다. 하지만 플랫폼에 자금이 남지 않았거나 사업자가 잠적하는 경우 현실적으로 대금을 받기 어렵다.
양창영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는 “민사에서 승소해도 자본금이 없으면 강제 집행해도 집행할 재산이 없어 판결이 유명무실하다”며 “판매 대금을 줄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계속된 거래를 유도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겠지만. 일부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이번 사태의 해결책이 요원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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