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를 일으킨 티몬과 위메프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가운데 모기업 큐텐의 구영배 대표가 30일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큐텐이 위메프·티몬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한 지 13일 만이다. 구 대표는 “모든 비판과 책임 추궁, 처벌을 당연히 받겠다. (사태 해결을 위해)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겠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그룹 대표가 나서 피해 복구 의지를 표명했지만 부족한 채무 변제 여력과 티메프 기업회생 신청 등으로 판매자 피해는 불가피해졌다. ‘G마켓 성공 신화’를 쓰며 1세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대부로 불리던 구 대표는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다.
#Character(인물)
구영배 큐텐 대표는 2022년부터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 쇼핑을 잇달아 품으며 국내 시장에 복귀했다. 1세대 이커머스부터 25년 간 업계에 몸담은 그는 인터파크의 창립멤버이자 G마켓 창업자다.
1966년생인 구 대표는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은 이커머스 사업과는 거리가 있는 미국계 석유 개발 기술 기업인 슐럼버거였다. 슐럼버거는 유전 측정과 자원을 관리하는 서비스 기업으로 기업체 특성상 사막과 바다를 오가며 석유를 탐사하는 작업이 직원들의 주된 업무였다. 구 대표도 슐럼버거에 입사한 1991년부터 8년간 중동과 인도, 오만 등의 유전 탐사를 담당했다. 인도 귀족 출신으로 알려진 아내도 현지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만났다.
#Career(경력)
이커머스 업계와의 접점은 1999년 이기형 당시 인터파크 회장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구 대표는 인터파크 사내벤처 ‘구스닥’으로 시작해 G마켓 신화를 쓴 장본인이다. 구 대표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서도 G마켓 성공 경험과 20년 이상의 업계 경력을 내세웠다.
인터파크에 입사한 구 대표는 2000년 옥션 경매 방식을 적용한 구스닥을 자본금 10억 원의 별도 법인으로 출범시켰다. 이때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2003년 G마켓으로 이름을 바꾸고 오픈마켓 사업모델을 도입하며 빠르게 성장을 일궜다.
G마켓은 출범 이후 2년 만에 거래액 1조원을 돌파한 뒤 2007년 이커머스 업계 최초 연간 거래액 3조 원을 달성하며 업계 1위 옥션을 뛰어넘었다. G마켓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것도 이 시기다. 2008년에는 4조 원에 육박하는 거래액을 기록했다. 옥션을 소유한 세계 최대 이커머스 이베이도 G마켓 앞에선 쩔쩔맸다. 결국 경쟁을 포기한 이베이는 G마켓 인수라는 길을 택했다. G마켓 지분 5.1%(255만 9850주)를 보유하던 구 대표는 당시 715억 원을 손에 쥐었다.
#Capability(역량)
구 대표는 G마켓 신화를 뒤로하고 아시아 시장으로 발을 내디뎠다. 2010년 이베이와 조인트벤처 형식으로 싱가포르에 설립한 큐텐은 현지에서 입지를 키우며 ‘싱가포르의 아마존’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큐텐의 성장에는 중국산보다 높은 품질 기준과 기술력을 갖춘 한국산 제품이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 전문 계열사 큐익스프레스의 역량도 큐텐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 힘을 보탰다.
큐텐은 싱가포르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일본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홍콩 시장에 진출했다. 구 대표는 이베이와 맺었던 국내 경업(영업상 경쟁) 금지 10년 ‘족쇄’가 풀리자 국내 시장에서 다시 시동을 걸었다. 2022년 티몬을 품에 안은 뒤 위메프, 인터파크 쇼핑, AK몰을 차례로 인수하면서다. 이 기업들은 네이버와 쿠팡, SSG닷컴·G마켓에 밀려 기세가 꺾인 상태였다. 경영권 인수 직후 티몬은 전년 동기 대비 거래액 60% 증가 등 실적이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세대 이커머스 연합군단을 꾸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그룹사 간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게 큐텐그룹의 목표였다.
#Critical(비판)
구 대표는 올해 초 미국 쇼핑 플랫폼 위시까지 사들이면서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의 큰손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거침없는 행보 속에서 위기가 시작됐다. 이번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구 대표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판매대금 ‘돌려막기’가 지목된다. 큐익스프레스 상장을 위해 무리하게 계열사를 늘리고 쇼핑 플랫폼의 긴 정산 주기를 이용하다가 판매대금을 정산하지 못하는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구 대표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 ‘사기’ 등의 고의가 없었다는 점을 피력했다. 구 대표는 “이번 사태는 사기나 의도를 가지고 한 게 아니라 십수년간 계속 누적된 문제 탓”이라며 “경제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마케팅을 진행했다는 비판은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의 사재를 출연해서라도 수습을 하겠다고 밝힌 당일에 티몬과 위메프 회생절차를 진행하는 등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에는 “지난 2주 동안 제 지분을 담보로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다. 대부분의 자금은 치열한 가격 경쟁 속에서 프로모션을 쓴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회생절차에 대해서는 “자율 구조조정(ARS)을 통해 채권을 모두 상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티메프에서 차입해 위시 인수에 투입한 2500만 달러(약 340억 원)와 관련해서는 “차입금은 한 달 안에 상환했고 이번 정산금 지연 사태와는 관계가 없다”며 판매자 정산금을 빼돌려 M&A 용도를 쓴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Challenges(도전)
현재 구 대표와 목주영 큐텐코리아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이사, 류화현 위메프 공동대표이사 등은 출국금지 상태다. 경찰은 29일 구 대표 등 관계자 5명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역시 금융당국의 수사 의뢰에 앞서 선제적으로 수사팀을 구성했다. 이번 사건이 대규모 민생침해 범죄인 데다 정산 지연으로 영세 입점업체들이 줄도산할 위험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 대표가 밝힌 동원 가능한 그룹 자금은 최대 800억 원. 1조 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미지급 대금에 턱없이 부족한 규모로 자력 수습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조금만 시간을 달라” “정부의 도움이 약간 필요하다”는 구 대표의 발언이 공허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마저도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은 아니다. 주요 임원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상황 속에서 류광진 티몬 대표와 류화현 위메프 대표는 현안 질의에 출석해 티몬과 위메프의 모든 자금 관리를 모기업 큐텐 산하 큐텐테크놀로지가 도맡아왔다고 밝혔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기업회생을 신청한 티몬·위메프에 대해 법원이 자산과 채권 동결을 결정하면서 판매대금 정산과 소비자 환불이 멈췄고, 인터파크와 AK몰 정산 지연 가능성도 함께 거론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티몬·위메프에 1조 원 이상의 건전성 혹은 유동성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원장은 “티몬과 위메프의 올해 7월까지 누적 손실을 고려할 때 1조 2000억 원에서 1조 3000억 원 이상의 피해액이 예상된다”며 “자금 추적 과정에서 이미 드러난 강한 불법 흔적이 있어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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