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시작된 우주는 꾸준히 팽창하고 있다. 다양하고 독립된 관측적 증거가 모두 우주 시공간이 팽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적어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라는 커다란 사실만큼은 현대 우주론에서 어느 천문학자도 부정하지 않는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더 파고들어가면 우주 팽창 모델에 대한 천문학자들의 의견이 조금씩 엇갈린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우리 우주가 정확히 얼마나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는가?’라는 우주의 팽창률에 관한 질문이다.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 난제는 아직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난제가 우리 우주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주의 팽창은 주변 은하들까지의 거리가 멀어지는 은하들의 후퇴 현상으로 관측된다. 우주 시공간이 통째로 균일하게 팽창하면서 더 먼 거리에 놓인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은하까지의 거리, 그리고 각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가 비례하는 이 관계를 허블-르메트르 법칙이라고 한다. 우주의 팽창을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관측적 증거다.
한편 빅뱅 직후 아주 높은 밀도와 온도를 지닌 우주가 서서히 낮은 온도로 균일하게 식어버리면서 남게 된 빅뱅 열기의 흔적으로 우주의 팽창을 입증하는 방법도 있다. 빅뱅의 잔열은 현재 우주 전역에서 쏟아지는 미미한 전파 노이즈의 형태로 관측된다. 이것을 우주 배경 복사라고 한다.
문제는 은하들의 후퇴 현상과 우주 배경 복사, 두 가지 대표적인 우주의 팽창률이 살짝 어긋나게 측정된다는 점이다. 우주 배경 복사로 추정되는 우주의 팽창률은 67km/s/Mpc. 더 익숙한 단위로 환산한다면 1메가파섹(약 300만 광년) 거리만큼 떨어진 우주가 시속 24만 4000km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은하들의 후퇴 현상으로 우주의 팽창률을 측정하면 살짝 다른 값이 나온다. 최근에는 아주 밝게 터지는 Ia형 초신성 관측을 통해 100억 광년 이상 먼 거리에 있는 우주까지 은하들의 거리와 후퇴 속도를 측정하는데, 이렇게 추정되는 우주의 팽창률은 73km/s/Mpc. 마찬가지로 환산하면 1메가파섹 거리만큼 떨어진 우주가 시속 26만 4000km의 속도로 멀어진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초신성 관측을 통한) 은하들의 후퇴 현상으로 추정한 우주의 팽창이 우주 배경 복사만으로 추정한 우주 팽창보다 약 10% 더 빠르게 측정된다. 분명 하나의 우주를 방법만 달리해서 보고 있을 뿐인데, 어떤 방법을 썼는지에 따라 우주가 살짝 다른 모습으로 관측되는 것이다. 이 난감한 현대 천문학의 미스터리를 허블 텐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주변의 먼 거리에 놓인 은하들의 움직임으로 추정되는 우주의 팽창이 우주 배경 복사로 추정되는 우주 팽창보다 조금 더 빨라 보일까?
우주를 가득 채운 은하들의 움직임은 사실 굉장히 복잡한 요소가 섞여 있다. 우주 시공간이 팽창하면서 각 은하 사이 거리가 멀어지는 효과뿐 아니라, 인접한 은하끼리 서로의 중력으로 끌어당기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 은하들의 움직임으로 우주의 팽창률을 구하기 위해서는 은하끼리 서로 잡아당기면서 끌려가는 효과를 걸러내야 한다. 이렇게 은하들이 서로의 중력으로 끌려가는 움직임을 은하들의 벌크 플로(Bulk flow)라고 한다. 이러한 개별 은하들의 중력을 통한 상호작용은 순수한 우주 시공간의 팽창 효과를 은하 관측만으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변 은하들이 어떤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는지 관측한 다음 그 전체 움직임에서 순수한 우주 시공간의 팽창만 적용했을 때 예상되는 은하들이 서로 멀어져야 하는 효과를 빼주면, 은하들이 서로의 중력으로 인해 어떤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는지 중력에 의한 효과만 따로 걸러낼 수 있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 아주 방대한 영역의 우주에서 순수하게 서로의 중력에 의해서 움직이는 은하들의 벌크 플로를 파악하는 관측을 진행했다.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약 1억 광년 이내에 들어오는 18만 개 은하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해, 우주의 팽창 효과를 뺀 순수한 은하들의 벌크 플로 효과만 분석하는 코스믹 플로 프로젝트다.
그런데 코스믹 플로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천문학자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발견했다. 약 8000만 광년 이내 거리에 들어오는 아주 많은 은하 대부분이 특정한 센타우루스자리 방향 부근으로 좀 더 빠르게 흘러가는 듯한 일관된 평균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마치 그쪽 방향 너머에서 무언가 거대한 질량 덩어리가 은하들을 일관되게 끌어당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은하들이 우리 주변보다 더 밀도가 높은 영역의 중력에 이끌려 바깥으로 살짝 더 빠르게 끌려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은하들의 이러한 벌크 플로를 근거로 일부 천문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은하가 주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은하 밀도가 더 적은 텅 빈 영역, 거대한 보이드 부근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은하들은 아무렇게나 분포하지 않는다. 밀도가 더 높은 영역은 중력이 더 강해 물질이 많이 모여들고, 밀도가 낮은 영역은 계속 사방으로 물질을 빼앗기면서 텅 빈 영역, 보이드를 남긴다. 그래서 은하들은 마치 복잡하게 얽힌 그물 모양의 우주 거대 구조를 이룬다. 만약 우리 은하가 정말 거대한 로컬 보이드(Local void) 부근에 있었다면, 왜 우리 주변 은하들의 움직임이 우주 배경 복사로 추정되는 우주의 팽창보다 더 빠르게 사방으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지 설명이 된다.
로컬 보이드 주변에는 은하들이 더 밀도 높게 모인 영역이 있다. 그래서 우리 은하 주변의 은하들은 계속 사방의 고밀도 지역으로 끌려간다. 로컬 보이드 중심 부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봤을 때는 마치 주변 은하들이 더 빠르게 사방으로 멀어지는 것처럼 관측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분석에서 코스믹 플로 프로젝트로 확인한 주변 은하들의 좀 더 빠른 움직임을 기존 초신성 관측으로 추정한 우주 팽창률에 다시 적용하면, 놀랍게도 허블 텐션이 꽤 깔끔하게 사라질 수 있음을 보였다. 우리 주변 은하들이 일관되게 한쪽 방향으로 끌려가는 벌크 플로의 움직임을 보정해주면 초신성 관측으로 추정되는 우주의 팽창률은 73km/s/Mpc에서 69km/s/Mpc까지 줄어든다. 이것은 우주 배경 복사만으로 추정되는 우주 팽창률과 거의 비슷한 값이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은하는 우주 평균 밀도에 비해 훨씬 밀도가 휑한 거대 보이드 부근에 자리하고 있을까? 허블 텐션의 미스터리를 설명하려면 우리 은하는 우주 평균에 비해 20% 정도 밀도가 휑한 보이드 부근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상정한 기존의 우주 진화 표준 모형, ΛCDM 모델에서는 이렇게 거대하게 텅 빈 보이드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ΛCDM 모델에서는 우주가 전반적으로 밀도 분포가 거의 균일해야 한다. 물론 초기에 밀도가 높았던 지역은 더 밀도가 높아지고, 밀도가 낮았던 지역은 더 밀도가 낮아지면서 그물 모양으로 우주 거대 구조의 골격이 형성되기는 하지만, 무려 지름 1억 광년 스케일의 아주 거대한 보이드까지는 재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적지 않은 천문학자들은 허블 텐션을 단순히 우리가 거대한 보이드 부근에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종의 착시 현상일 것이라 해석하려는 시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런데 이번 논문에서 천문학자들은 한 가지 더 과감한 제안을 하고있다. 기존의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상정한 ΛCDM 모델이 아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중력이 작용할 수 있는 대체 모델을 적용하면 허블 텐션의 미스터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은하계 외곽에서 지나치게 빠르게 움직이는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서, 은하 안에 빛을 내지는 않지만 중력에는 기여하고 있는 미지의 물질이 추가로 존재하고 있을 거라 추정한다. 이것을 암흑 물질이라고 부른다. 암흑 물질은 은하 속 별들의 움직임뿐 아니라 중력 렌즈 등 현재 다양한 관측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존재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존재다. 암흑 물질은 빛과 그 어떤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오직 중력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과시하는 미스터리한 개념이다. 하지만 암흑 물질이 정확히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건지 그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암흑 물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은하 속 별들의 지나치게 빠른 움직임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그리고 그나마 가장 성공적인) 시도가 수정 뉴턴역학으로 불리는 MOND 가설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MOND는 아주 거리가 먼, 중력이 약하게 작용하는 천문학적인 스케일에서 중력 효과가 사실 기존의 예상에 비해 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상대성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에 비해, 중력이 먼 거리에서 좀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면 은하계 외곽에서도 별은 더 강한 중력으로 붙잡힐 수 있다. 그렇다면 은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의 별들도 충분히 빠른 속도로 맴돌 수 있다는 것이 설명된다.
바로 이러한 MOND 가설을 우주 거대 구조에 적용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먼 거리에서 중력이 기존의 예상보다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으면, 사방의 먼 거리에 놓인 우주 거대 구조의 밀도가 높은 영역이 조금 더 강한 중력으로 우리 주변의 은하들을 끌어당길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우리 은하가 굳이 아주 거대한 초거대 보이드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가정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 은하들이 꽤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끌려가는 듯하게 관측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번 논문의 결과에 따르면 기존 방식이 아닌 MOND 방식으로 중력을 적용하면 깔끔하게 허블 텐션이 사라진다! 즉 우주 배경 복사로 추정한 우주 팽창률과 은하들의 움직임으로 추정한 우주 팽창률의 차이가 깔끔하게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 우주는 단 하나의 팽창률만 갖는 평화로운 우주가 된다.
물론 여전히 MOND는 기존 암흑 물질 모델로 설명되던 또 다른 다양하고 독립된 관측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한다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하나의 은하계 스케일이 아니라 우주 전체 규모에서 MOND를 적용하고, 또 이를 통해 아직 풀리지 않은 현대 우주론의 거대한 난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라 할 수 있다.
MOND 가설은 아직은 천문학계에서 비주류로 취급받고 있다. 하지만 그 명맥이 끊기지 않고 끈질기게 계속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과연 MOND는 우주론적인 차원에서 허블 텐션이라는 미스터리를 깔끔하게 해결할 천문학계의 새로운 주류로 떠오를 수 있을까? 그물 모양으로 복잡하게 얽힌 우주 거대 구조의 매듭처럼 우주의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는다.
우주 거대 구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순한 지도를 넘어서, 우주의 비밀을 잔뜩 품은 보물 지도라 할 수 있다. 매일 흐린 하늘이 이어지고 있는 우울한 날씨 속에서도 구름 너머 우주 거대 구조를 매일 느끼고픈 우주 덕후 독자를 위해 마련한 특별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우산이 활짝 펼쳐지는 순간이 마치 시공간이 순식간에 펼쳐지는 빅뱅의 순간 같지는 않은가. 반경 490억 광년의 관측 가능한 둥근 우주 한가운데에 우리가 매순간 서 있듯, 우주를 품고 있는 둥근 우산 속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매순간 나만의 우주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주 거대 구조의 모습을 새겨넣은 나만의 관측 가능한 우주 우산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38억 년에 걸친 우주 거대 구조의 형성 과정을 가장 잘 묘사한 시뮬레이션을 한땀 한땀 우산에 새겨 넣어, 우산을 펼치면 나만의 관측 가능한 우주가 열린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흐린 날씨 속에서도 우주의 주인공이 되어 보시길.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27/3/4388/7337338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24/2/1885/7218572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26/2/3051/7296158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0004-637X/775/1/62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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