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아이돌 연습생은 미성년자다. 데뷔도 마찬가지. 최근에는 데뷔 연령이 더 어려졌다. 아이돌이 되려면 학업은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이 문제가 아니다. 의무 교육도 제대로 받기 어렵다. 새벽까지 연습이 이어지는 탓에 집에서 ‘양육’할 시간도 부족하다. 아이돌과 소속사의 분쟁에 매번 ‘부모’가 언급되는 이유기도 하다. 아이돌도 부모에게는 그저 ‘아이들’이다.
아이돌 부모가 마주한 K팝 산업은 어떤 모습일까. 하이라이트(옛 비스트) 멤버 손동운 씨의 아버지 손일락 청주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5년 노예계약서 건넨 소속사들
‘동운’이는 유독 착하고 성실한 막내였다. 예절을 중시한 아버지 덕에 엇나간 적도 없다. 손일락 교수는 동운의 어린 날을 떠올렸다. “보는 사람마다 참, 예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노래도 퍽 잘했다.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는 외모를 본 후 눈을 반짝이며 명함을 건네는 사람도 많았다.
일찍부터 ‘연예인’ 자질이 넘쳤던 아들 탓에 바빠진 건 아버지였다. “느닷없이 계약서를 내미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잘 모르는 분야여도 법적인 부분은 중요하잖아요”.
손 교수는 ‘연예계 공부’를 시작했다.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연예 전문 변호사도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연습생 표준계약서가 없었다. 동운은 당시 최대 기획사로 꼽히던 회사 오디션에 ‘합격’했다.
“30장가량 되는 어마어마한 계약서를 받았습니다. 계약기간은 기본적으로 15년이었습니다. 물론 데뷔 후 기준입니다. 일단 계약하면 40대가 돼야 벗어날 수 있는 구조더군요. 표준약관 같은 건 없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던 ‘노예계약’이었습니다.”
연예계는 잘 몰랐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손 교수는 기획사에 ‘계약서를 검토하기 위해 변호사를 대동하겠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를 거절했다.
“수익 배분 문제도 모호했습니다. 아티스트나 가족의 입장을 고려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죠.” 내로라하는 기획사 ‘연습생’이 될 기회를 잡았지만, 손 교수는 그 손을 놓았다.
#착하던 동운이가 학교에선 잠만…
동운은 다른 기획사에 들어갔다. 지금은 누구나 알 만한 대형 기획사가 된 곳이다. “당시에는 기획사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이 때문인지 계약이 꼼꼼하지 않았죠. ‘연습’만 시켜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 모든 경비를 기획사에서 부담하게 돼 있었습니다. 데뷔 후 이를 정산하겠다는 내용도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쪽도) 굉장히 ‘순진’했던 거죠. 물론 나중에 계약서를 고치자고 연락이 오긴 했습니다(웃음).”
14살. 동운은 ‘연습생’이 됐다. 매주 40시간 연습 노동을 했다. 보컬 트레이닝, 댄스, 인성 교육, 외국어 교육까지…. 손 교수는 동운의 연습생 시절을 ‘중노동’이라고 표현했다. 학교를 들른 후 연습실에 가고, 집에 와 쓰러지듯 잠을 잤다.
“일주일에 40시간 연습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중노동이었습니다. 댄스만 3종류 이상 레슨을 받았습니다. 정신적인 압박도 컸습니다. 학교 생활은 당연히 어려웠죠”.
중학교는 의무 교육이지만 정상적인 학업이 불가능했다. 피곤에 절어 학교에 가면 엎드려 자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교우관계도 망가졌다. 신기함이 무시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친구들은 매일 지쳐 잠만 자는 동운에게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도 없었다.
손 교수는 연습이 끝난 동운을 매일 데리러 갔다. 새벽에 집에 와 겨우 잠에 든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동운은 확실히 끼가 많고 재능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지만, 아들에게 내색할 수 없었다. 평소처럼 쓰러져 자는 아이의 양말을 벗긴 어느 날, 비릿한 쇠 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발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연습생들은 ‘인성’ 교육을 받았지만, 소속사 직원들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교육하는 날도 많았다. “아빠, 백 번만 더 참을게요. 아니, 백 번은 금방 지나가니까 천 번만 더 참을게요.” 어린 동운이 말했다.
밥을 거른 채 연습실에 가고, 늦은 밤까지 연습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천 번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퇴근은 항상 새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 2년이 흘러갔다. 동운은 ‘데뷔’를 포기했다.
“업계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목격한 후 충격을 받았죠. ‘아빠, 더 이상 연예인 안 할래요’ 하더군요. 미성년자가 감당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연습생을 포기한 일은 저희 집안의 큰 충격이었죠.”
연습생을 그만둔 동운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이미 또래들과는 다른 길을 멀리 와버린 탓이다. “지금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정식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수에 미래를 걸었는데, 지금 포기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공부를 시작했죠.”
#‘비스트’를 빼앗기다
천상 연예인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을까. 동운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다시 기획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9년, 동운은 아이돌 ‘비스트’로 데뷔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비스트는 곧 정상에 섰다. 앨범마다 ‘히트’를 쳤다. 2011년 발매된 ‘비가 오는 날엔’ 등은 아직도 음원 차트에 오르내린다.
정상급 아이돌 자리를 유지하던 비스트는 소속사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데뷔한 지 약 7년 만의 일이다. “아티스트 대우와 정산 문제 등으로 불만이 좀 있었죠. 다른 기획사와 비교되는 일도 생겼고요.”
정산을 ‘합의’하는 관행도 없었다.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일은 아티스트의 권한이 아니었다. 영수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티스트에게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하면 ‘성공 보수’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성공을 하더라도 기존 계약이 그대로 가다 보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죠.”
7년이라는 전속 계약을 ‘꽉’ 채웠지만, 회사를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룹 활동을 계속하려면 더욱 그랬다. 멤버들은 힘을 합쳐 ‘독자 회사’를 설립했다. 팬들과 멤버는 그대로였지만, ‘비스트’란 이름은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이름은 곧 그룹의 정체성. 팬덤도 큰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여전히 비스트였지만 비스트가 아니었다.
“사실 당시에는 이런 분쟁 사례가 드물었습니다.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어떤 가수의 이름은 소유권이 그 가수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률 자문 결과도 긍정적이었지만, 소송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그 시간만큼 활동을 할 수 없으니까요. 결국 이름을 포기하게 됐죠.”
‘한류’의 물결이 막 뻗어나가던 시기, 이름을 잃은 건 ‘치명타’였다.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다시 데뷔하다시피 했죠. 국내 팬들은 사정을 알았지만, 해외 팬덤은 거의 붕괴됐습니다. 피해가 컸죠.”
손 교수는 대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틀즈가 소속사를 옮긴다고 ‘비틀즈’를 뺏기지는 않잖아요.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있을 때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류의 미래를 위해 기획사 측에서 배려를 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부모에겐 아이돌 아닌 ‘아이들’
손일락 교수는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잔소리를 책에 담았다.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아이를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스케줄이 많다 보니 숙소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와 교류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낮과 밤이 완전히 바뀐 생활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싸이월드에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습니다.”
손일락 교수가 싸이월드에 남긴 글들은 금세 명성을 얻었다. 손 교수는 이를 엮어 ‘꿈에 미친 청춘을 응원하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면에는 아들과 연락하기 어려웠던 아이돌 부모의 애한이 있다.
“아들아! 아빠는 네가 결국은 수많은 역경을 겪어 내고, 네 꿈인 가수가 되어서 기쁘고,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아무쪼록 앞으로 1등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라. 하지만 꼭 1등이 되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단다. 그저 매시간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가, 얼마나 성실하게 사는가, 얼마나 감사하고 사랑하며 사는가가 문제인 것이지.”
“연예인으로, 살기로 한 이상,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뼈를 깎는 각오로 언행이라든지 태도,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며, 사생활 관리도 잘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꿈에 미친 청춘을 응원하라 중에서)
아이돌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외로운 직업이다. 신문을 보다 아이돌들의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지금도 심장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손 교수는 아이돌을 이렇게 정의했다. “아이돌의 삶은 굉장히 공허하죠. 따듯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면을 보면 정말 복잡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들 동운의 고난과 성취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손 교수는 정책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습생부터 데뷔 이후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지만, 정책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연습생, 데뷔 후 활동으로 인해 빠지게 되는 학교 수업들은 모두 학교에서 ‘봐주는’ 거죠. 병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역 면제’를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군대에 가야 할 시기와 활동 시기가 맞물립니다. 그럼 편법으로 미룰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 가수 활동’으로는 병역을 유예할 수 없으니까요. 대부분 병역을 미루기 위해 대학교에 진학합니다.”
표준계약서에 대해서도 말을 얹었다. “중요한 건 배분율이 아닙니다. 수익과 비용이 투명하지 않으면 배분율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부분이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계약서를 검토하는 체계와 계약이 대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여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한류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애로사항에 대해 정부가 외면하고 있죠. 아이돌 아버지로서 정말 아쉽습니다”.
※다음 편에는 아이돌 연습생 보호 조례 관련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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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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