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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MZ 점술가들의 독특하고도 평범한 ‘신들린 연애’

무당, 역술인, 타로마스터 등 점술가들의 운명적 만남…연애 프로그램의 무한 확장 가능성 제시

2024.07.24(Wed) 13:51:26

[비즈한국] 연애 프로그램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까? 인연이 끝난 연인끼리 모여 새로운 인연을 찾기도 하고, 친남매끼리 모여 서로의 연애 탐색전을 지켜보기도 하고, 동성끼리 모여 마음껏 자신의 플러팅을 선보이기도 한다. 방송만 보고 있자면 온 나라가 연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7월 23일 방영이 끝난 ‘신들린 연애’도 이 끝을 모르겠는 연애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 있다. 제목 그대로, 이른바 신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인 무당, 역술인, 타로마스터 등 점술가들이 출연해 자신의 인연을 찾는 이 방송은 MZ세대들에게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초반 프로그램 화제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은 은행원 출신 무당 함수현. 첫인상 투표에서 전 남성 출연진의 몰표를 받을 만큼 준수한 외모와 털털한 성격이 돋보였다. 사진=SBS 제공


‘신들린 연애’는 남의 연애운만 점쳐주던 점술가들이 모여 자신의 연애운을 점치며 상대를 찾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남자 넷, 여자 넷이 ‘신들린 하우스’라 명명한 합숙 장소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운명의 상대를 찾는데, 재미난 건 서로 얼굴을 대면하기도 전에 출연진들의 사주가 적힌 운명패만 보고 먼저 운명의 상대를 고르는 것. 직업에 따라 방울을 꺼내 흔들거나 사주를 맞춰보거나 타로 카드를 뒤짚어 사주로만 운명의 상대를 점쳐보는 모습이 생경하게 다가온다. 

 

이렇듯 ‘신들린 연애’의 차별화 포인트는 출연진의 직업에서 비롯된다. 프로그램 자체의 포맷이나 룰은 여타 연애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지만, 출연진의 사연은 물론, 원하는 상대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나 고민하는 지점이 일반인과 크게 달라 신선한 관전 포인트를 선사한다.

 

동생을 대신해 무당의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이홍조. 처음 운명패를 선택한 최한나와 이끌리는 상대인 함수현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SBS 제공

 

이를테면 타로 마스터 최한나와 무당 이홍조는 애초에 서로의 운명패를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초기에 ‘썸’도 탔다. 그러나 이홍조의 직업이 무당이란 사실이 밝혀지고 이홍조의 오방기와 최한나의 타로에서 점쳐본 연애운의 결과가 부정적이자 최한나의 심리는 급격하게 불안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편지지 대신 부적에 편지를 써서 데이트를 청하거나 데이트 코스로 절을 찾고, “우리 신당 갈까?”처럼 서로만이 던질 수 있는 독특한 플러팅을 주고받는 모습도 이 프로그램의 특징. 

 

출연진이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에게 점쳐보는 점사에 일희일비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처음엔 ‘그렇게까지?’ 하는 의아함을 품었다. 최한나가 불길한 타로 패를 거듭 뜨는 것을 보며 절망하는 모습이나 역술가 이재원의 급작스러운 퇴소에도 어안이 벙벙한 시청자들이 많았으리라. 자신이 풀이한 점사로 인연이 있다고 확신했던 이재원은 3일차에 0표를 받곤 동요하더니 갑자기 퇴소를 전했다. 여기엔 편집된 부분도 많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래도 연애의 향방에 대한 감정의 동요뿐 아니라 결과가 자신의 점사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출연진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업과 현실의 괴리에서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는지 차츰차츰 느껴졌을 것이다. 

 

귀신을 잡는 퇴귀 무당인 박이율은 오로지 인간 박이율로 임한다는 자세로 상대에게 다가가며 눈길을 끌었다. 흔들리는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축원을 빌어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쏘 스윗. 사진=SBS 제공

 

굳이 방송에서 점술가들의 짝짓기를 봐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직업도 아니고···”라는 무당 이홍조의 말이나 신내림을 받고 나선 연애는 아예 꿈꿔보지도 못했다는 무당 함수현의 말에서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타까워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 점술가들 스스로도 연애나 결혼에 있어 자신을 제한하던 모습에서 어느 순간 운명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따르고 운명을 개척하리라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신들린 연애’가 세상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한 톨 정도는 부수는 계기가 됐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6화로 마무리된 ‘신들린 연애’에선 두 커플이 탄생했고, 두 커플 모두 처음 선택한 운명패의 상대가 아니란 점이 의미심장하다. 10년 가까이 은행원이었다 결국 신내림을 받은 함수현, 명문대 수학과를 나와 역술가가 된 이재원, 스님 출신 아버지를 두어 어릴 적부터 절과 친숙한 허구봉 등 각 인물의 드라마틱한 사연 또한 진정성을 높이며 대중의 화제를 모으는 데 한몫했다. 높은 화제성 때문에 시즌 2 제작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는 중이다.

 

‘신들린 연애’는 MC 신동엽과 유인나를 비롯해 배우 유선호와 안무가 가비 등이 녹화된 영상을 보고 코멘트하는 형식. 역술가 박성준이 함께해 육효, 산통점 등 일반인이 잘 모르는 점술의 영역을 설명해준다. 사진=SBS 제공

 

보통 사람들도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을 따지고, 연애나 결혼 시에 재미로라도 한 번쯤 궁합을 점쳐보는 게 일상인 대한민국. 대면과 비대면을 통틀어 점술 시장 규모가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그 시장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궁금하진 않았던 우리에게, ‘신들린 연애’는 점술가들 또한 평범한 사랑을 꿈꾸고, 감정의 파고에 괴로워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공감을 샀다. 신적인 영역에 종사한다는 것을 빼면,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운명에 순응할 것인지 혹은 개척할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은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니까. 

 

이질성과 묘한 공감을 동시에 획득하며 연애 프로그램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기록될 ‘신들린 연애’는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세련된 캔버스를 신고 굿을 하던 영화 ‘파묘’나 티빙 다큐멘터리 시리즈 ‘샤먼: 귀신전’ 등 여타 무속의 세계를 다룬 콘텐츠와 달리 가볍게 즐길 수 있으니 무서워하지 말 것. 앞으로 등장할 연애 프로그램이 어떤 영역까지 다룰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감(?)도 한층 커졌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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