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때 ‘국민차’라 불렸던 현대 쏘나타의 판매량이 부진의 터널을 지나 반등하고 있다. 쏘나타는 6월 국산 세단형 승용차 월간 판매 1위에 올랐다. 이번 1위의 표면적 이유는 쏘나타 택시 모델의 재출시로 인해 중형 택시 신차를 원하는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판매량 그래프를 우상향으로 돌려놓은 근본적 요인은 2023년 이뤄진 전면부 페이스리프트(facelift)로 보인다.
쏘나타는 중형 세그먼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이기도 했지만, 가장 앞선 디자인을 자랑하는 차종이기도 했다. 그런 기조는 쏘나타의 실질적인 시작으로 볼 수 있는 2세대(Y2카)가 1988년 출시된 이래 20여 년간 유지됐다. Y2 쏘나타가 데뷔할 당시, 국내 주요 경쟁 모델은 기아 콩코드와 대우 로얄 시리즈였는데, 일본 마쓰다와 독일 오펠의 한 세대 전 차량을 바탕으로 하여 낡은 느낌을 주는 이들은 공기역학적 스타일링으로 세계 시장의 최신 조류에 발맞춘 쏘나타에게 디자인으로 상대가 되지 못했다. 대우자동차의 경우 로얄 시리즈로 1980년대 내내 중형차 왕국의 명성을 쌓았지만, 당장의 점유율에 안주하며 로얄 살롱, 로얄 프린스, 로얄 듀크, 로얄 XQ 등으로 가지치기만 거듭하다가 신차 개발 타이밍을 놓쳐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다.
1993년 봄 전격 출시된 쏘나타 2는 앞선 스타일로 계속 시대를 선도했다. 면을 매끄럽게 다듬으면서도 적당한 권위를 살려 청년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어필했던 쏘나타 2의 익스테리어는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대우 프린스는 아직 로얄 프린스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기아가 유선형 스타일의 크레도스로 이를 따라온 것은 2년이나 지난 후였다. EF 쏘나타(1998)는 이전의 스포티함을 벗은 중후한 느낌으로 국내 중형차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꿨으며, NF 쏘나타(2004)는 중후한 형태를 깨고 시원한 직선으로 회귀하여 다시금 트렌드를 이끌었다.
비슷한 기간 기아의 중형차는 항상 2인자에 머물렀다. EF 쏘나타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옵티마, NF 쏘나타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로체를 각각 데뷔시켰지만 쏘나타의 그늘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Fluidic Sculpture)를 적용한 YF 쏘나타(2009)는 전 세대와는 또 다른 유려한 보디라인을 자랑했다. 디자인 호불호에 대한 이견은 있겠지만, 중형차 디자인의 기준이 항상 쏘나타였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쏘나타의 위상이 위협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기아 K5의 데뷔 이후다. 피터 슈라이어의 터치가 반영된 K5는 국내 중형차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과감한 선으로 돌풍을 몰고 왔다. 공교롭게도 쏘나타 디자인의 혁신은 그 시점에서 멈추었다. LF 쏘나타가 무난한 모습으로 나오더니 DN8은 역대 쏘나타 익스테리어의 최저점을 찍었다. 전면에서 후면부에 이르기까지 지금 보아도 어떤 감동도 찾을 수 없다. 측면 캐릭터 라인은 종이로 접은 듯 억지스럽고,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 위쪽에 들어간 요철 디테일은 조잡하기까지 하다. 결국 현대차는 부정적 여론을 의식하여 2023년 일자형의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를 적용한 모습으로 전면부를 바꾸었다.
부진한 판매량으로 단종설이 돌았던 몇 년 전과 디자인 부분 변경 후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한 최근의 모습은 소비자의 호감을 사는 아름다운 디자인이 최고의 마케팅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흔히 롱런의 비결이 과거의 성공 공식을 답습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쏘나타의 경우엔 품질뿐 아니라 디자인의 기준을 제시했던 예전 모습을 답습하는 것이 브랜드의 장수를 위한 가장 확실한 비결로 보인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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