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규모 공연장 만성 부족 상황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됐던 두 대형 복합문화시설의 운명이 엇갈렸다. 카카오가 추진하는 서울 도봉구 ‘서울아레나’는 이달 초 착공식이 열리면서 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반면 사실상 무기한 연기 상태였던 경기 고양시 ‘K컬처밸리’는 경기도가 시행사인 CJ에 협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전면 백지화 결론이 났다. 이후 책임 문제를 두고 경기도와 CJ 간에 진실 공방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던 두 사업의 결론이 다르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착공에 들어간 지 3년 된 K컬처밸리는 왜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까.
#하루 차이로 경기도 K컬처밸리 ‘마침표’ 서울아레나는 착공 ‘공식화’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가 함께 경기 고양시에 조성 중이었던 K컬처밸리 복합개발사업이 지난 1일 경기도의 협약 해지 통보로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후폭풍이 일고 있다. 1조 8000억 원 규모의 경기 북부 숙원 사업이 어그러지면서 주민 반발이 터져 나왔고 고양시, 정치권이 합세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서울 최초의 K팝 중심 복합문화시설로 추진되는 서울아레나 조성 사업은 진행 재개를 알렸다. 경기도 발표 이튿날인 지난 2일 서울아레나는 미뤄뒀던 착공식을 열고 공사에 들어갔다. 2022년 4월 서울시와 카카오가 사업 추진을 위해 실시협약을 맺고 민간투자사업 시행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 (주)서울아레나를 설립한 지 2년 만이다. 지난해 12월로 예정된 착공식은 한 차례 연기됐다. 카카오 이사회에는 당시 착공 연기를 의결하며 “사업 초기 예상했던 수준에 비해 금리와 공사비 등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나 책임 있는 사업 진행을 위해 정밀한 비용 재산정과 이사회 의결을 거친 후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건설 현장의 뇌관으로 떠오른 고금리와 건축비·원자재 가격 폭등은 CJ와 카카오 모두 피해가지 못했지만 결과는 갈렸다. 장기간 악재가 겹치며 부담이 불어난 CJ는 최종적으로 지자체와 갈등을 풀지 못하고 ‘문화산업 거점’을 만들겠다는 꿈을 접게 됐다.
#들어간 돈 7000억 원은 누가 부담? 법적 공방 예상
K컬처밸리는 일산동구 장항동 부지 32만 6400㎡에 1조 8000억 원을 투입해 4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K팝 전문 공연장과 호텔, 스튜디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2015년 말 CJ ENM이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CJ라이브시티가 사업 시행사로 선정된 이후 K컬처밸리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세 차례에 걸친 사업계획 변경에 인허가 관련 행정 절차만 4년 넘게 걸렸다. 이 과정에서 당초 2020년 완공을 목표했던 사업은 2021년 착공, 2024년 6월 완공으로 변동됐다. 2021년 10월 간신히 첫 삽을 떴지만 난항은 거듭했다. 한국전력이 대용량 전력 수급이 어렵다며 전력 공급 유예를 통보했고 부지 내 한류천 수질 개선 공공사업 여파까지 닥치며 지난해 4월 공사가 중단됐다.
기약 없는 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문제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사업 좌초는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가 1000억 원대로 추산되는 ‘지체상금’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핵심이다. 지체상금은 민간사업자가 기한에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지불해야 하는 배상금이다.
CJ라이브시티는 준공이 완료된 후 지체일수만큼 이 비용을 산정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최종 공사 진척률은 3%에 그쳤고 지체보상금은 정상적인 사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불어났다. 지난해 10월 CJ라이브시티가 공사 기한 연장을 위해 국토교통부 민관합동 PF 조정위원회에 사업조정을 신청한 결과 국토부는 올해 초 경기도에 완공 기한 재설정 및 지체상금 감면 등을 권고했다.
양측의 간극은 공식 입장에서도 두드러진다. 김현곤 경기도 경제부지사는 지난 1일 “2016년 5월 기본 협약을 체결한 이후 사업의 지속 추진을 위해 협조해왔지만 사업 시행자가 지체상금 감면 등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며 입장을 변경해 합의가 불가능하게 돼 협약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CJ도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경기도는 국토교통부가 경기도와 당사에 권고한 협의는 외면한 채 지체상금 부과와 아레나 공사 재개만을 요청했다”며 사업 중단 의사를 밝혔다.
CJ의 K컬쳐밸리 사업이 종료 수순에 들어갔지만 ‘누구의 탓’인지 책임 규명을 두고 입장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과 업계 안팎에서 대규모 민간사업인만큼 행정이 적극 뒷받침해야 했다는 의견과 특정 기업 특혜는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현재 CJ라이브시티는 갑작스럽게 사업 폐기 통보를 받고 내부 논의 중이다.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국토부 조정위가 양 측 입장을 모두 검토하고 조정안을 내놓은 만큼 지체상금 문제나 완공기한 재설정과 관련해 시행사 측 귀책사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업 지연 사유가 전력 공급, 수질 사업 등 공적 사안과 관계된 만큼 귀책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일자리 창출 등 10년간 33조 원의 직·간접적인 경제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가 꺾이면서 여론이 들끓자 경기도는 ‘원형 유지’ 계획을 강조하고 나섰다. 기존에는 CJ 측이 경기도 소유 부지를 빌려 개발과 운영을 맡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GH와 협력해 시설을 짓고 민간 운영사를 구하겠다는 방침이다. 강민석 경기도 대변인은 “운영은 하이브, AEG 등 유수의 국내외 엔터테인먼트사가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며 “CJ에게도 운영 참여의 문이 열려 있다”고 밝혔다.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경기도에서 협의를 위해 문의를 하거나 논의가 진행된 상황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투입한 7000억 원의 비용 회수 문제에 관해서도 법리적인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문화 산업 성장으로 여러 지자체에서 민간과 함께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지지부진하거나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문화 관련 대형 산업은 수임기간, 회수 시기도 늦고 비상업성이 강하기 때문에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운 성격이 있다”며 “지자체와 진행하는 사업은 복수의 대안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는 시사점도 있다”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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