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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단발머리' 유정이 '교육'에 뛰어든 이유

뼈 나이 '80세'에 충격, 기획사는 연습생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신경 안 써…공인된 육성 시스템 필요

2024.07.19(Fri) 16:44:30

[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돌과 연습생을 위한 시스템은 존재할까? 걸그룹 ‘단발머리’ 멤버였던 유정이 ​지난 4월 18일 비즈한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때 제 뼈 나이가 80세였어요. 아이돌이란 꿈을 향해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한 결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 방식이 잘못됐다고 알려줬더라면, 빛이 들지 않는 연습실 밖으로 나가 조금이라도 산책을 했을 거예요.”

 

걸그룹 ‘단발머리’ 멤버였던 유정은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연습생을 위한 교육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됐다. 이후 아이돌 신입개발팀에서 일할 때 회사에 연습생들의 심신 건강을 위해 점심 이후 30분 정도 ‘산책’​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럴 시간에 연습실에서 춤이나 더 시켜’라는 말이었다. ​

 

회사는 아이돌을 ‘상품’으로 여겼지만 정작 아이들의 건강관리에는 무지했다. ​미성년자인 연습생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마른 몸과 하얀 피부, 실력만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아직도 자라나는 연습생들이 주로 지내는 곳은 햇빛이 들지 않는 한 평 남짓 동굴 같은 보컬실, 그리고 춤 연습이 끝없이 이어지는 CCTV가 설치된 안무실이었다. 

 

유정은 “그때가 아이돌 신인개발팀에 있으면서 제일 허탈한 순간이었어요. 미성년자인 연습생을 건강하게 관리하려는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전혀 없었죠”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회사 규모 따라 연습생 시스템 천차만별​…대표 불호령에 전문지식도 필요없어

 

고등학교 재학 시절 클라리넷을 전공한 유정은 톡톡 튀는 K팝의 매력에 빠져 아이돌 준비를 시작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1년 정도 레슨을 받다가 오디션에 붙어 연습생이 됐다. 시작은 순탄치 못했다. 가수 데뷔를 약속한 회사는 연기만 가르쳤다. “체계가 없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흔했어요. 계약서를 작성했으니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아이돌이란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 회사를 전전한 끝에 운좋게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 규모에 따라 연습생 시스템도 천차만별이란 것을 그때 깨달았다. 대형 기획사는 연습생을 관리하는 직원도 제법 많았다. 그들은 회사에 상주하며 촘촘하게 일정을 체크했고, 전담 헬스트레이너가 식이요법과 체형교정을 관리했다. 다만 미성년자인 연습생에 맞는 전문 교육을 받거나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드물었다.

 

유정의 연습생 시절. 고3 때 서울로 올라와 숙소생활을 시작했다. 사진=허유정 소우주컴퍼니 대표 제공

 

유정은 짧은 아이돌 생활을 마친 뒤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청소년기에 햇빛을 받지 못하고 지하에서 춤과 노래만 연습하다 보니 비타민D가 매우 부족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로 치면 골다공증이라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죠.”

 

그는 아이돌로 데뷔할 때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연습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사 신인개발팀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연습생의 정서적·육체적 건강을 챙기기 위해 대학교를 다니며 중등정교사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동학도 복수전공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연습생마다 체질과 체격이 다르기 때문에 무작정 굶어서 빼는 것보단 각자 상황에 맞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말해도 회사는 모르쇠로 일관했어요. 훌라후프나 줄넘기라도 사달라고 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서 사비로 사서 준 적도 있어요.”​​​

 

유정은 연습생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중등정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진=허유정 소우주컴퍼니 대표 제공​

 

‘체중계’ 앞에선 모든 연습생이 평등했다. 소속사 대표는 몸무게 기준을 0.1kg만 초과해도 불같이 화를 내며 관리하는 직원들을 무섭게 나무랐다. “하루는 저에게 아이들 숙소에 가서 이것저것 뒤져보라고 시키더라고요. 회사에서 안 먹는데 살이 안 빠지니까 숙소에서 뭘 먹는 것 같다고요. 자기가 직접 가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봐 저한테 가서 영상을 찍어서 보내라고 하더군요.”​

 

체중을 빼지 못해​ 절망한 연습생에게 다른 직원은 쾌변에 좋다는 음료를 권유했다. 무게를 맞추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대표의 불호령이 떠오른 연습생은 음료를 마시며 굶기 시작했다. 몸무게는 일시적으로 수분이 빠지면서 줄어들었지만 금방 돌아왔고, 다시 다이어트 음료를 마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건강히 살을 빼게 하려던 유정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어느 날 굶으며 춤추던 연습생이 쓰러졌다. 병원에 가야 한다며 유정이 119를 부르려 했지만,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은 누워 있으면 나아진다며 방치했다. 다행히 연습생은 정신을 차렸다. 회사의 허술한 대응에 유정은 기겁했다. “기획사를 운영하는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흔한 일이더라고요. 꾀병 부리는 연습생도 있다며 웃어넘기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체계가 없으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게 무서웠어요.”

 

걸그룹 단발머리로 활동할 당시의 유정의 모습. 사진=허유정 소우주컴퍼니 대표 제공

 

#정서적·심리적 안정 필요하지만 심리상담자 ‘전무’

 

기획사들이 체계가 없는 이유는 자본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습생을 뽑아 아이돌로 데뷔할 때까지 수년 동안 기획사는 막대한 금액을 투입해 아이들을 육성해낸다. 춤, 외모, 노래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니, 연습생의 교육과 상담 등을 맡는 인력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부실하다. 그 분야에서 오래 일한 경력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연습생에게 돌아간다. “작은 기획사일수록 연습생에게 자유시간이 많이 주어져요. 그게 좋은 게 절대 아니에요. 계약서에 따라 회사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보컬 레슨도 춤 교육도 없이 혼자서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거든요.”

  

정서적·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청소년기 연습생에게는 ‘심리상담’도 사치였다. 고등학교부터 연습생활을 했던 지윤(가명) 씨는 매주 테스트를 치르느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경쟁의 압박으로 인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는 이걸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상담사가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낙오자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 아무에게도 호소할 수 없었다. “매번 경쟁하고 그걸 준비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장애가 온 친구들이 많아요.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지만 저를 이상하게 볼까봐 무서워서 숨기기 급급했죠.”

 

유정은 아이돌을 그만둔 뒤 문화기획자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사진=허유정 소우주컴퍼니 대표 제공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겪은 경험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문제는 공인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비합리적인 명령이나 지시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유정은 정책적으로 기획사에 연습생을 관리하는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습생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키워보겠다고 교육자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저 하나 바뀐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아이돌 이후’에도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정기적인 건강검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연습생은 항상 노동상태에 놓여 있지만 일반 회사원과 달리 4대 보험 같은 실질적인 보호망이 없어요. 그런 만큼 정기 건강검진도 필수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유정은 연습생 자신도 건강을 지킬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저는 이제는 문화기획자와 아이돌을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제 전시회에 온 연습생과 유명 아이돌이 다들 신기해하더라고요. 건강하지 못하면 제2의 삶은 없어요. 건강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정착하도록 연구원으로서 일조해, 연습생들에게​ 아이돌 이후에 다른 삶이 계속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

 

※다음 편에는 한국엔터테인먼트 법학회 현장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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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사진·영상=박정훈 기자

onepar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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