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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젊음과 늙음은 상벌이 아니다

세대 간 고충과 편견 보여주는 '바디 체인지물'…배우 이정은의 눈부신 20대 연기

2024.07.15(Mon) 15:02:51

[비즈한국] 자고 일어났더니 2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으로 급 늙어버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잠깐, 만약 반대로 하루아침에 50대에서 20대로 뒤바뀐다면? 그래도 엄청나게 끔찍한 일로 느껴질까? JTBC 토일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해가 뜨는 낮이면 50대가 되고,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원래의 20대로 돌아오게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과연 낮과 밤마다 달라지는 신체는 저주인가 혹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기회인가.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8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취준생 이미진(정은지)이 하루아침에 폭삭 나이 먹은 50대 아줌마로 변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갑자기 낮이면 50대로 변하는 ‘노년 타임 저주(?)’에 걸리지만, 그는 굴하지 않는다. 행방이 묘연한 이모의 신분을 빌려 낮이면 서한지청 공공근로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는 임순(이정은)으로 활약하게 되는 것. 20대 이미진과 50대 임순과 모두 얽히는 서한지청 검사 계지웅(최진혁)과의 로맨스도 있고, ‘동백꽃 필 무렵’ 이후 로코물에 필수적으로 범죄 스릴러 영역이 곁들여지는 트렌드도 놓치지 않았다. 대중의 반응도 좋다. 4%로 시작한 시청률은 꾸준히 오르며 10화 8.4%를 기록했다. 

 

8년째 공무원 시험에 매진했으나 족족 떨어진 이미진. 면접에서 또 떨어지고 취업 사기까지 당한 직후,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처음 보는 50대 아줌마로 변신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진=JTBC 제공

 

주인공의 몸이 바뀌는 바디 체인지물 장르는 많았다. 어릴 적 키스 한 번으로 개구리에서 왕자로 변하는 그림 형제의 동화를 읽고 자란 우리는 최근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에 이르기까지 숱한 종류의 바디 체인지물을 접하고 자랐으니까. 몸이 바뀐다는 설정 자체는 지극히 익숙하지만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연령대가 다른 두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시간 동안 한 인물을 그려내면서 각 세대가 겪는 고충과 그들을 바라보는 편견 등을 딛으며 세대 간의 소통을 꾀한다는 점이 특징. 

 

오랜 시간 취준생이었던 이미진은 언제나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으나 기준치 높은 이 사회에서 시원스레 합격의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인물이다. 인적성 검사 1등, 체력검사 1등이지만 공무원시험 면접에선 자신보다 어린 20대 초중반 동명이인 응시자에 비해 나이만 많이 먹은 루저 취급을 당한다. 온갖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쌓은 잡학지식과 자격증들과 열정이 있음에도 사회는 한 번도 그에게 시원스레 합격을 선언한 바 없다. 

 

이미진을 취업 사기의 현장에서 구하며 얽힌 계지웅 검사. 계 검사는 이후 50대가 되어 공공근로 시니어 인턴으로 서한지청에 들어온 임순과 얽히며 낮과 밤 모두 이미진과 가까이하게 된다. 사진=JTBC 제공

 

그러다 어느 순간 저주처럼 내려진 50대라는 신체 변화는 96년생 20대 이미진에겐 없던 기회를 준다. 가출해 행방불명 상태인 이모의 신분을 빌려 69년생 임순이 된 그가 공공근로 시니어 인턴 면접장에서 (다른 면접자들에 비해) 오직 젊다는 이유로 추켜세움을 받고 최연소 시니어 인턴으로 발탁되는 것. 물론 겉으로 보이는 신체만 늙었지, 그간 쌓은 지식은 여전하고 체력 또한 받쳐주니 뽑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20대였을 땐 주어지지 않던 기회가 50대의 신체가 되고 나서야 다른 기회로 돌아온다는 현실은 서글프다. 그렇다고 50대의 현실이 녹록하냐? 당연히 아니다. 나이로 차별하는 것으로 세계에서 대한민국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시니어 인턴으로 뽑힌 임순은 우연히 톱스타 고원(백서후)를 향한 황산 테러를 막는 활약을 펼쳐 계지웅 검사의 방에 사무관 보조로 발탁되지만, 싸가지 없을지언정 이성적 사고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던 계 검사 또한 나이 많은 임순의 존재를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이 많은 연장자가 불편하다는 것. 

 

위기의 순간 여주를 구해주는 남주 또는 여주를 벽으로 밀어붙이는 남주 등 로맨스물의 클리셰 장면들이 50대 임순의 모습이 얹혀지면서 묘한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사진=JTBC 제공

 

임순(사실 이미진)이 평균 1000타에 육박하는 타자 실력을 가졌건, 엑셀은 물론 코딩까지 자유롭게 다루건, MZ 뺨치는 속도로 어려운 배달 주문을 뚝딱뚝딱 마치건 상관없다. 계 검사와 수사관 주병덕(윤병희)은 임순이 사무관이라는 역할에 알맞은 연령과 모습이 아닌 것 자체를 불편해 한다. 피해자 고원에게 황산 테러범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로 임순을 힐난한 뒤 수사관에게 계 검사가 남기는 말을 보라. “내가 이래서 경력 없는데 나이는 많고 쓸데없이 말 많은 사람이랑 같이 일하기 싫은 거예요.” 계 검사의 말을 비롯해 극중 이미진이나 임순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은 하나같이 정해진 기준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일절 기회를 주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 씁쓸함을 안긴다. 서른 가까이 되도록 알바 빼곤 경력이 없어? 탈락! 나이가 많은데 경력이 없어? 탈락! 대체 어쩌란 말인지. 

 

계지웅 검사와 수사관 주병덕의 ‘티키타카 케미’가 재밌다. 50대 임순을 배척하며 아직 젊은 척 하는 40대 주병덕과 계 검사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젊은 세대의 감각이나 트렌드를 1도 이해 못하는 순간도 웃픈 요소. 사진=JTBC 제공

 

그런 점에서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 공무원 시험에 탈락하고 취업 사기를 당하며 오열하던 20대 이미진이 50대 임순이 되어서도 순간순간 서러움에 폭발하는 모습은 무척 서글프다. 5화 후반에 “차라리 확 늙게 만들든가 꼬부랑 할머니를 만들지. 그럼 희망고문이라도 안 할 거 아이가. 이 꼴로 할 수 있는 게 뭔데!”라며 오열하는 장면을 보라. 나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매섭다. 문제는 어느 연령대든 감당해야 할 고충이 있고, 견뎌내야 할 편견이 있다는 것.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 불리면서도 툭하면 조롱 섞인 유머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MZ세대나, 부양할 가족은 여전한데 일할 자리는 적어져 힘든 ‘낀 세대’나 힘들긴 매한가지다. 임순의 말처럼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나을까? 70대 이상 고령층이 되어도 30% 이상 일하는 사회에서 말이다.

 

임순과 함께 공공근로 시니어 인턴으로 뽑힌 이들. 여전히 눈초리가 매서운 정년퇴직 경찰 서말태(최무인), 여전히 잘 가꾼 외모로 칭송받는 나옥희(배해선), 꼰대 같지만 한때 직원 수십을 거느린 사업가 출신 금광석(김재록), 한쪽 다리를 저는 전직 군인 고나흔(최범호)도 자신만의 ‘화양연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화장실을 청소하고 화단을 정리하는 공공근로에 뽑힌 것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는 처지. 사진=JTBC 제공​

 

물론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스릴러를 얹었을지언정 엄연히 장르는 로코물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순간순간 세대마다 얹혀진 삶의 무게를 곱씹곤 한다. ‘와, 저 타자 실력에, 엑셀에 코딩까지 하는데 취업이 안 되다고? 난 90년대에 태어났으면 절대 취직 못했다’라든가, ‘지금도 팍팍하긴 한데 50대면 진짜 뭘 해야 하지? 시니어 쪽을 빨리 뚫어야 하나?’ 등등. 계 검사-이미진(임순)-고원의 삼각관계보다 앞으로 톡톡한 활약을 보일 것 같은 시니어 어벤저스의 전직 형사 서말태(최무인)나 계 검사의 손발인 주병덕 사무관에 더 눈길이 가는 건, 나이 때문이겠지?

 

세대 간의 서사를 풀어내는 이정은과 정은지의 열연은 ‘낮과 밤이 다른 그녀’를 보게 만드는 강력한 이유. 특히 온몸을 바쳐 20대의 정신을 지닌 50대를 연기하는 이정은의 연기는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정은지 또한 ‘응답하라 1997’ ‘술꾼도시여자들’에 이어 세 번째 인생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계 검사와 주병덕이 못 알아들은 Z세대의 외계어를 막힘없이 통역하는 임순. 이때 Z세대의 말을 빠짐없이 이해한 40대 이상 있으신가요? 설마, 없겠지. 그래도 ‘흑우’ ‘알잘딱깔센’ ‘억텐’ ‘스불재’는 알아들었는데···. 사진=JTBC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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