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팝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그늘도 깊다. K팝의 상징인 아이돌은 이른 나이에 발탁돼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데뷔조차 못 한 무수한 연습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즈한국은 ‘K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시리즈를 통해 K팝이 성장하는 동안 외면했던 문제점을 짚고, 다각도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을 만드는 이들이 건강해져야 K팝을 즐기는 사람들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K팝 아이돌 데뷔는 곧 글로벌 데뷔.” 이제는 당연해진 K팝의 공식이다. K팝 아이돌 노래가 빌보드,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음원 차트 순위권을 차지하는 건 일상이 됐다. 미국 최대 음악축제 ‘코첼라’와 ‘롤라팔루자 시카고’ 라인업에 K팝 아이돌이 매해 이름을 올린다. K팝의 시작은 코리아, 대한민국이지만 전 세계인이 즐기는 글로벌 문화 콘텐츠가 되었다.
#K팝, 문화가 되고 돈이 되다
뉴진스 하니의 ‘푸른 산호초’. 지난달부터 일본과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키워드다. 뉴진스는 지난 6월 26~27일 일본 도쿄돔에서 팬 미팅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멤버 하니가 일본 국민가요로 불리는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러 엄청난 화제가 됐다.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가 한국에서 키운 아이돌이 되어 일본에서 인기를 끈다. 이것은 K팝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다. K팝은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고 있다. 활동 지역도, 국적도, 인종도, 음악 장르도 더 이상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돈’도 된다. 침체된 실물 음반시장에서 K팝 아이돌 앨범만은 잘 팔린다. 인기 아이돌 그룹은 초동 앨범 ‘100만 장’ 판매를 쉽게 넘어선다. 한국음반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음반 판매량 1~400위를 합산한 2023년 1~11월 누적 판매량은 1억 1600만 장에 달한다.
수출액도 3000억 원을 돌파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3년 1~10월 음반 수출액은 2억 4381만 4000달러(약 3183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0.3% 증가했다. 특히 미국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7.3%가량 증가했다.
세계 음악 시장은 이제 한국을 주목한다. 스웨덴 음반사 관계자는 “작곡가들은 미국보다 한국과 협업하길 희망하는 추세다. 특히 최근 K팝 음악을 작곡하고 싶어하는 스웨덴 작곡가들이 크게 늘었다. 스웨덴이나 미국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K팝 앨범에 참여하는 게 수익도 더 좋다. 송캠프(앨범 제작을 위한 대규모 관계자 미팅)를 하러 한국에 가는 경우도 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매니지먼트 관계자 역시 “K팝은 돈이 된다. 미국 음반사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비즈니스 모델도 다양해지고 있다. 게임, 웹소설, 웹툰은 K팝 아이돌의 IP를 활용한다. 팬 플랫폼 ‘위버스’에는 전 세계 팝스타가 합류하고 있다. K팝을 중심으로 한 산업의 갈래는 점점 늘어난다. 가상(virtual) 아이돌 역시 엔터 업계에서 주목하는 사업이다.
K팝이 가진 잠재적인 브랜드 가치는 측정하기도 힘들다. 국내 엔터사 대표는 “한국에서는 유독 무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반도체 등 눈에 보이는 기술 산업보다 잠재적 가치가 높은 산업이 바로 문화 산업이다. 영국은 ‘해리포터’, 미국에는 ‘할리우드’가 있다. 강대국의 특징은 바로 이런 문화 산업이 국가 주요 경제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서 K팝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잠재적 가치는 엄청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를 증명하듯 ‘엔터 산업’에 뛰어드는 국내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MLB, 디스커버리 브랜드를 운영하는 패션 기업 F&F는 자회사 F&F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지난 3월 걸그룹 유니스를 데뷔시켰다. 게임사 더블유게임즈도 더블유씨앤씨(C&C)를 설립하고 엔터 산업에 진출했다.
국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엔터사들은 수출을 넘어 현지에서 아이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기획사들은 미국에 법인을 세우고 K팝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가동했다. 하이브는 2021년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로 잘 알려진 스쿠터 브라운의 회사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했다. 이후 미국 음반사 게펜 레코드와 합작해 현지 걸그룹 캣츠아이를 지난달 데뷔시켰다.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지난 1월 미국 음반사 리퍼블릭 레코드와 합작해 미국 현지 걸그룹 VCHA(비챠)를 데뷔시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는 LA에 통합법인을 설립해 미국에서 엔터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K팝 아이돌을 만든다? 한국식 시스템 먹힐까
그러나 K팝의 덩치가 커진 만큼 잡음도 커졌다. 최근 하이브에서 일어난 ‘내분’은 K팝 전체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2024년은 K팝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BTS와 블랙핑크 이후 ‘다음 세대’가 나올지 의문이다.
한국식의 K팝 육성 시스템이 해외에서 적용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특히 유럽과 미국은 K팝 아이돌의 ‘혹독한’ 육성 방식에 비판의 시각이 강한 만큼 한국식 시스템을 현지화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이돌의 생활은 많은 부분이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어떻게 트레이닝 받는지, 계약 조건은 어떠한지, 수익은 어떻게 정산하는지 같은 실질적이고 중요한 내용은 아이돌 자신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일명 동방신기 사태 이후 아이돌과 기획사의 관계는 정말 달라졌을까. 무엇보다,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활을 해온 아이돌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안녕할까.
비즈한국은 지난 4개월간 수많은 엔터 관계자, 연습생, 아이돌을 만나 K팝 산업 이면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아이돌 연습생을 뽑는 연령대는 원래도 어렸지만, 요즘은 더 어려졌다. 최근에는 ‘초등학생’을 뽑는 추세라고 한다. 마지노선이 중학생이다. 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어릴 때 선별해야 잘 트레이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발을 들여놓을 나이가 되기 전에 뽑자는 분위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댄스학원 대표는 “국내 기획사와 합작해 오디션을 열거나 수강생들을 추천하기도 한다. 기획사의 요구사항은 노래나 춤에 재능이 있는 아이를 뽑아달라는 게 아니다. 나머지는 자기들이 다 만들 수 있으니 얼굴이랑 피지컬만 봐달라고 한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연습생을 뽑아 트레이닝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고 괴로움을 호소한다.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연습생은 어떤 존재일까. 지금 같은 K팝 아이돌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해외에서는 K팝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대한민국의 K팝 육성 시스템은 이대로 지속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까.
※다음 편에는 브레이브걸스 전 멤버 JainRos(노혜란)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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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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