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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금기' 깨고 이제 '실패'를 이야기할 시간

유럽 스타트업 파산율 작년이 '최고치' 성공담만 가득하던 링크드인에 실패담이 공유되기 시작

2024.07.08(Mon) 11:29:24

[비즈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로켓, 유니콘 등 성공을 상징하는 아이콘들과 함께 항상 ‘잘나가는 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바빴다. 링크드인과 같은 비즈니스 SNS는 늘 이 업계의 성공 소식을 전하는 주요 창구였다. 스타트업이 거액의 투자를 받은 이야기, 글로벌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은 이야기들이 넘치는 공간이었고, 창업자와 투자자 개인의 브랜딩을 만들어주는 주요 마케팅 수단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거나 포스팅을 공유하면서 성공한 창업가들과의 네트워킹을 과시하고, 그들의 성공을 찬양했다. 

 

때로는 ‘일은 이렇게’, ‘비즈니스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이 펼쳐졌다. 비즈니스 코칭, 컨설팅, 멘토링 등을 통해 사업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듯한 청사진이 제시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SNS에 올라오는 사업 조언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성공담을 들으며, ‘우리 회사도 언젠간 저렇게 만들리라’라고 다짐하는 재충전의 장이기도 했다.

 

잘나가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유럽 스타트업의 링크드인에서 요즘 흥미로운 현상이 목격된다. 스타트업계에서 그동안 공개적으로 말하기 꺼려온 ‘실패’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금기’를 깨고 링크드인에 자신의 실패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유럽 스타트업에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패담을 링크드인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사진=pixabay

 

#영국·독일 2023년 스타트업 파산 사상 최고

 

유럽에서 스타트업이 파산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영국과 독일에서는 2023년에 스타트업 파산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연스럽게 창업자들이 회사가 문 닫았다는 이야기를 정직하고 투명하게 밝히는 링크드인 게시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국과 독일이 유럽 스타트업계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을 고려한다면 이는 전 유럽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영국 파산청(The Insolvence Service)에서 파악한 최근 10년간 스타트업 파산 수치. 사진=gov.uk


에스토니아의 스타트업 트린 카스크(Triin Kask)는 지난 7월 1일 자로 회사에서 개발한 소셜 앱 ‘솔리(Soulie)’의 서비스를 중단하고, 곧 회사의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카스크는 13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스타트업 창업가로, 에스토니아창업자협회(Estonian Founders Society) 이사로 활동하는 등 에스토니아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솔리는 “생각 없이 스크롤 내리는 것을 반대하는 클럽(The anti-mindless scrolling club)”이라는 모토로 시작한 SNS 플랫폼이다. 광고 기반 비즈니스 모델 때문에 사람들을 SNS에 붙잡아 두려고 지속적으로 자극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기존 SNS의 체계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그들의 아이디어였다. 솔리팀은 우선 개인의 선호도와 필요도에 기반을 둔 정보만을 제공하고, 불필요한 내용은 모두 제거하는 디지털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2022년 1월에 설립했다.

 

솔리는 개인 알고리즘 개념으로, 사용자가 자신의 선호도를 선택하고 특정 주제에 흥미를 잃었을 때 언제든지 변경하여 피드와 정보를 제어할 수 있다. 솔리 팀은 초기 30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통해 적극적인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원하는 것은 지식을 향상하고 시간을 잘 보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분별하게 사람을 붙잡는 SNS를 반대했던 솔리. 사진=카스크 링크드인

 

그런 솔리가 2년 6개월 만에 회사의 문을 닫는다는 것을 링크드인에 발표하고, 창업가는 왜 문을 닫게 되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오늘 저는 지난 2년간의 놀라운 여정 끝에 소중한 스타트업 솔리를 폐쇄하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댓글에 달린 우리의 미디엄 블로그 링크를 통해 무분별한 스크롤 대유행을 막으려다 실패한 시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공유해 주세요. 최근 다른 창업자들로부터 성공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진정한 지식의 보석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고 유용한 학습 포인트를 제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측면을 요약했습니다.

 

[우리의 비전] 저희는 모든 사람이 개인 알고리즘을 소유하고, 끝없는 스크롤에 갇히지 않고 온라인에서 의미 있는 콘텐츠를 찾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우리의 여정]

*검증 단계: 단 800유로(120만 원)의 인스타그램 광고비로 단 3주 만에 25개국 이상에서 2000명의 대기자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구축 단계: 엔젤 투자자로부터 50만 유로(7억 5000만 원)를 모금하고 112만 유로(16억 7000만 원)의 보조금을 확보했습니다. 2023년 6월에 첫 번째 베타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도전 과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고, 사용자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기술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막판 승부: 우리는 계속 제품을 개선하면서 지속적인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더 나아지려는) 신호가 약했고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주요 교훈]

*베타 버전에 너무 오래 머물러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기능의 함정에 빠져 핵심 목표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스크롤 습관을 바꾸는 소비자 앱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유행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타이밍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시장 기회와 모멘텀이 필수적입니다.

 

소울리는 7월 1일까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 제품이나 기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언제든지 triin@soulie.io로 문의해 주세요.

 

저는 놀라운 팀원들(Ann Margit Järvekülg, Andres Tiko, Robin Kytt, Margus Engso, Otto Suits), 지원적인 커뮤니티, 신뢰하는 투자자들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했고 여정을 정말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솔리의 팀원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대표 트린 카스크. 사진=솔리 미디엄 블로그

  

그녀는 미디엄 블로그를 통해 더 투명하고 자세하게 ‘실패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했다. 카스크는 현재 실패를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도 위안의 말을 남겼다. “우리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더 많이 원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이런 폐쇄적인 문화야말로 유해한 것이다.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고, 문을 닫는다. 슬프지만 우리는 극복할 것이다.” 

 

#여전히 어려운 ‘실패’에 대해 말하기

 

사람들은 미국에 비해 유럽은 아직 실패에 논의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고들 말한다. 부다페스트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에버싱크(Eversync) 창업자 졸탄 파타이(Zoltan Patai)도 회사 문을 닫는 과정이 “정말 어려웠다(super hard)”라고 토로한다. 특히 헝가리에서는 실패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남들은 다 잘 되고 있는데, 우리만 예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자신의 스타트업 ‘메이크 인플루언스(Make Influence)’의 문을 닫은 라스무스 브루스 라르센(Rasmus Bruus Larsen)은 링크드인에서 최근 파산선언을 하고 자신이 배운 내용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메이크 인플루언스는 2020년에 설립된 덴마크의 인플루언서 마켓플레이스로 커스티마이(Custimy)에 인수됐다.

 

주요 실패 원인

*공동 창업자와의 의견 불일치

*너무 빨리 너무 많은 지분을 포기한 것 

*제품 개발에 집중하지 못함

*커스티마이와 CEO에 대한 실사를 충분히 하지 않음 

*현금 소모와 이익보다는 직원 수에 집중하여 너무 빨리 확장함

 

우리가 성취해낸 자랑스러운 것

*덴마크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혁신하여 고객에게 3억 3000만 덴마크 크로네(660억 원)의 수익을 창출하고, 크리에이터에게 4000만 덴마크 크로네(80억 원)를 지급한 것

*팀과 안전하고 포용적인 문화를 구축한 것

*운영자, 통합자, 리더가 되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 것

*인수합병 실패로 우리가 파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래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공동 창립자를 찾은 것 

 

전반적으로 저는 모든 업적에 대해 피곤함, 행복, 슬픔, 자부심을 느낍니다!

 

덴마크 스타트업 메이크 인플루언스의 창업자 라스무스 브루스 라르센. 사진= 링크드인


공동창업자와 늘 의견이 합치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끊임없이 불화설이 나도는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들도 기업가치 하락을 고려해 쉬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시원하게 링크드인을 통해서 실패의 원인으로 ‘공동창업자와의 의견 불일치’를 꼽았다. 누구나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곳에 자신의 실수를 공유하는 것도 매우 용기 있는 일이다. 특히 실패를 잘 이야기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패를 통해 얻은 배움은 성공으로 가는 중요한 자산이다. 링크드인에서 창업자들이 실패를 공유하는 것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교훈을 제공한다. 이러한 투명성과 정직함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다른 창업자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지속적으로 성공담만 올라오는 링크드인이 더 이상 사실 같지 않고, 피로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 스타트업들 사이에서는 링크드인이 성공 사례를 나누는 공간에서 벗어나 실패의 경험을 나누는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성찰에 그치지 않고,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패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실패를 정상화하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유럽의 창업자들이 링크드인을 통해 실패를 공유하는 현상은 그들이 실패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유럽의 스타트업 문화가 더 성숙해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더 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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