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달 1일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에 따른 개인예산 급여 이용이 본격 시작됐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장애인 당사자가 주어진 예산 범위에서 자신의 욕구와 상황에 맞게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는 제도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도입해 2026년 본사업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활동지원 급여 일부를 활용하는 방안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당사자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장애 당사자를 살피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급여 20% 내에서 필요한 서비스 선택 “별도 예산 확보했어야”
장애인이 활동지원 급여 20% 범위 안에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선택해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이 이달 시행됐다. 올해 시범사업은 작년보다 규모가 확대돼 4개 지역에서 8개 지역으로, 인원도 120명에서 210명으로 늘었다. 장애인복지관 등 지역 내 장애인 복지전문기관은 당사자 면담을 통해 이용계획 수립을 지원하고, 지자체는 이용계획의 적정성 등을 검토해 최종 승인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업으로 장애인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실제 서비스 이용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장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오가고 있을까. 사업에 참여하는 한 장애인 전문기관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활동지원 급여 일부를 활용하는 방안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전문기관은 일대일 대면 면접으로 당사자의 장애 특성, 생활 환경 등을 고려해 이용계획 수립을 돕는다.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관 측은 “서비스 내용 등 지원체계는 나아졌다. 생애주기에 따라 내역이 상이하다. 아동, 청소년층은 발달재활 등 치료적인 목적을, 중장년층은 신체 건강이나 일상생활 지원 항목 등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활동지원 급여 내에서 지급한다는 점을 안내하자 중지 신청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기관 측은 “처음에 30명을 배정받았는데 10명이 중도에 이탈했다. 활동지원 급여 20%를 개인 예산으로 사용하면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드니 중지했다고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활동지원사에게 받는 서비스는 기존대로 받으면서 개인 예산이 필요한데, 파이를 나누는 일이다 보니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별도의 예산을 확보하고 시작했어야 한다”며 “당사자성 서비스는 맞지만, 당사자가 서비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인력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기관 측은 “개인 예산을 신청하는 대부분이 중증장애인이다 보니 1일 1회 몇 시간 정도로 당사자 면담을 끝낼 수 없었다. 승인 요청까지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만나야 했는데, 마지막 승인이 들어가기 직전까지 수정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다 보니 인력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부 주무부처나 지자체 등에서 당사자에게 사업 정보가 잘 제공되지 않아 혼선을 빚기도 했다. 사전에 민간에 협조를 구하고 교육을 진행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이동권도 보장 못 하면서…” vs “자기결정권 존중 차원에서 의미”
활동지원 급여 내에서 지급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는 개인예산제 논의 초기부터 나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장애인 정책 발표 직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입장문을 내고 “개인예산제는 서비스 칸막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마저 방기하는 것이다. 이동, 활동지원, 교육 등 그 어느 권리에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다. 이동권과 교육권 중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며 “장애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좋은 개인예산제가 아닌,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 권리예산을 제대로 보장하라”고 비판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개인예산제는 가두어진 예산 속에서 장애인들끼리 갈등을 일으키는 정책에 불과하다. 지금도 활동지원이 24시간 필요한 중증장애인들은 16시간밖에 지원받지 못한다. 그 지원도 바늘 구멍에 소 들어갈 정도로 적은 인원이 받는다”며 “예산도 문제지만 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정책을 가져온 영국은 한국과 출발부터 다르다. 아직 이동권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에서 무슨 개인예산제인가. 정부는 장애인들마다 논리가 다르고 갈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지 마시라”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장애인 개인예산제로 장애인의 결정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최대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끌어올리는 차원도 있다는 것이다. 장애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100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결정 능력을 올릴 수 있다. 유엔 장애인 권리 협약에서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최우선 개념으로 본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준다는 차원에서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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