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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공인중개사의 전세 사기 '책임 없음' 원심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공인중개사 자격의 권리만 이용하고 책임 회피하는 관행에 종지부…대법원, 최근 판결에서 민사 책임 강화

2024.06.24(Mon) 14:28:11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자격의 필요성, 권위, 존중 등을 인정 받으려면 자격을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업무능력과 윤리 등을 갖춰야 한다.


자격 또는 자격증이란 취득자가 자격 분야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능력을 갖췄음을 보증하는 ‘인증’이다. 자격기본법 제2조 제1호의 규정도 다르지 않은데, 위 조항은 ‘자격’을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기술·소양 등의 습득 정도가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평가 또는 인정된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자격 제도를 운영·관리하면서 해당 자격이 없으면 관련 사무를 취급하지 못하게 하거나, 자격 보유 인원 등을 제한하는 등 규제한다. 이런 규제가 오히려 특권적 지위를 만들어 정상 가격을 초과하는 이윤을 취득하는 행위, 즉 지대추구행위를 야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같은 주장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자격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격 제도가 해당 분야의 능력 개발과 업무의 효율성, 공신력 등에 기여한다는 점은 지극히 냉소적인 사람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인정할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한국은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에 대한 대우가 나쁘지 않다. 유교 문화 때문인지, 배운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변호사·세무사·회계사·변리사 등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산전수전 다 겪은 초로의 대기업 임원이 대형 법무법인의 신입 변호사에게 깍듯이 먼저 인사하는 모습은 신기하지만 자주 볼 수 있다.

 

자격의 필요성, 권위, 존중 등을 인정 받으려면 그러한 자격을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업무능력·​윤리 등을 갖춰야 한다. 이 같은 능력·윤리 등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존중을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자격의 권위는 하방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어떤 자격에 권위가 있으려면 그 자격 업계의 최하 또는 하방의 수준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어느 분야나 업계 탑은 훌륭한 능력과 높은 경제적 이익을 얻기 마련이므로 이와 비교해서는 의미가 없다. 어떤 자격 보유자의 최하 수준이 높다면 그 자격은 가치와 권위를 갖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격 보유자는 자신의 정화에 힘써야 한다. 일부 자격 보유자의 비행이나 무능력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특히 지금처럼 언론과 SNS가 발전한 시대엔 “일부는 문제가 있어도 대다수 구성원과 무관하다”라는 ‘드립’도 통하지 않는다.

 

최근 대법원은 공인중개사의 민사책임을 대폭 강화한 판결을 선고했다. 자격증으로 영업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를 더 이상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이처럼 장황하게 자격의 정의와 필요성을 설명한 이유는, 최근 전문가가 범행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권유·조장함으로써 언론의 질타를 받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음 내용은 대구지법 상주지원 2023고단390 등 판결에 기술된 범죄 사실이다.

 

“피고인 A와 피고인 E는 공인중개사사무소 실장으로 불리는 중개보조원, 피고인 B는 다가구주택의 명의상 소유주이자 임대인이다. 피고인 C는 중개보조원, 피고인 D는 위 사무소의 공인중개사다.

 

피고인 A~C와 E는 별다른 자력이 없는 피고인 B의 명의로 다가구주택의 소유권을 이전한 다음, 은행으로부터 위 다가구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건축비 등에 충당했다. 이후 불특정 다수의 임차인을 상대로 선순위 임차보증 금액을 축소해서 고지하고, 임대인인 피고인 B의 재력과 건물 가액을 부풀려 고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임차인들을 기망했다. 

 

피고인들은 이에 속은 임차인들로부터 건물 가액을 초과하는 거액의 임차보증금을 교부 받아 사용하고, 피고인 B 명의의 일정 금액을 예치해 은행 대출금 이자를 상환하다가 연체 상황을 초래해 건물을 경매에 부치는 방법으로 임차인들의 임대보증금을 편취하기로 공모했다.”

 

판결의 내용을 보면 ‘전세 사기’가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만들어졌고, 사무소 실장과 중개보조원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 사건에서 공인중개사 D는 전세 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된 것이 아니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대여한 행위로만 처벌 받아 다른 피고인들이 실형, 집행유예 등의 형사처벌을 받은 것에 비해, 벌금 800만 원이라는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

 

형사사건에서는 범죄의 구성요건, 특히 고의(범의)에 대한 엄격한 입증이 필요하므로 공인중개사 D에 대해서는 자격증 대여에 따른 공인중개사법 위반만으로 기소됐을 것이다. 이러한 자격증 대여가 전세 사기의 원인이 되고,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인적·물적 설비가 직접적으로 전세 사기에 이용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위 판결에서도 “공인중개사 D의 범행이 결과적으로 사기 범행에 악용돼 매우 큰 피해를 발생시켰다”라고 판단했다.

 

위 판결에서 공인중개사와 그 사무소는 전세 사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에도 비교적 가벼운 형사처벌만을 받았다. 이러한 수위의 형사처벌로는 책임을 묻는데 부족하다고 봤을까. 최근 대법원은 공인중개사의 민사책임을 대폭 강화한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2023. 11. 30. 선고 2023다259743 판결은 ‘중개업자는 임차 의뢰인에게 부동산등기부상에 표시된 중개대상물의 권리관계 등을 확인·설명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되고, 임대 의뢰인이 다가구주택 내 이미 거주하고 있는 다른 임차인에게 자료를 요구해 임대차계약 내역 등을 확인한 다음 이를 임차 의뢰인에게 설명해야 하며, 만약 다른 임차인이 요구에 불응한 경우에는 그 내용을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기재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를 전제로 공인중개사가 부동산등기부에 표시된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 실제 피담보채무액을 설명했을 뿐 다른 차인의 임대차보증금 액수, 임대차의 시기 및 종기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음으로 임차인이 경매절차에서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혔다고 보고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의 원심은 공인중개사에게 책임이 없다고 보고 임차인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공인중개사가 다른 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 액수를 확인할 의무가 있고, 다른 임차인이 확인 절차에 불응한다면 그 사정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등 아주 세세한 이유를 들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공인중개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밤이 되어야 날아간다’는 말처럼 법원의 판결은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매우 보수적이고 판결의 영향력을 고민하는 대법원이 위와 같은 취지의 판결을 했다는 점에서 자격증으로 영업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를 더 이상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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