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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공략하는 K-웹툰, AI 번역으로 날개 달았다

복잡한 작업에 따른 비용 부담·인력 한계를 AI로 극복…정확성 및 번역 수용 범위 합의는 '과제'

2024.06.21(Fri) 16:37:00

[비즈한국]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아!” 웹툰 인물의 이 대사를 해외 판에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우리 일상에서는 쉽게 쓰는 표현이지만, 그대로 번역하면 북미나 유럽에서는 의미가 매끄럽게 통하지 않는다. 답답하다 못해 짜증이 나는 기분을 전달하기 위해 적합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말풍선에 적당한 글씨체로 채워 넣고, 이 대사를 뱉는 인물 옆 배경에 고구마가 그려져 있다면 이미지를 지우는 작업도 필요하다. 업계가 이런 작업을 단순한 번역이 아닌 ‘현지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브레인벤쳐스의 인식 기술을 적용한 웹툰 텍스트 인식 작업 예시. 사진=브레인벤쳐스 제공

 

글로벌 시장 동시 론칭 혹은 순차 진출이 업계 필수로 자리잡으면서 전 세계 독자를 만족시킬 웹툰 현지화의 중요도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웹툰 현지화 번역 분야에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이 본격화되는 추세다. 아직은 AI 기술에 전 과정을 맡기는 단계는 아니다. AI가 1차 작업을 하고 담당자가 검토 후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관련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데 번역 누락 등 품질 관리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 번역 넘어선 ‘현지화’ 작업, AI 어떻게 접목될까

 

“생활밀착형 스토리가 많고 유행에 민감한 웹툰 특성상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요. 분량 기준으로 보면 다른 분야와 번역 비용 자체는 비슷하지만 여기에 추가되는 식자(텍스트를 만화에 넣는 것), 디자인이 다 수작업이에요. 이게 다 돈이죠.”

 

복잡한 작업인 만큼 웹툰 번역 작업에 드는 비용은 높은 편이다. 제작사 관계자는 “대량 작업을 하는 전문 업체들이 많지만 해외 수출로 수요는 늘었는데 인력은 정해져 있어 시장 단가가 높다”고 전했다. 

 

AI 번역이 빠른 속도와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기반 번역 서비스 스타트업 브레인벤처스의 김원회 대표는 “웹툰 텍스트는 단문 위주고 문맥을 형성하기 어렵다. 바닥면(배경)에 깔리는 의성어, 의태어는 탐지하고 분류하는 게 잘 안 된다. 웹툰 번역은 분량이 적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라며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한 기존의 수작업 방식은 작품을 소화하는 양이나 속도 면에서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업체마다 AI 기술 수준과 적용 범위에 차이가 있지만, 추출·번역·식자 3단계로 구분되는 현지화 작업 과정에 각기 다른 전용 AI 프로그램을 접목하고, 전문번역가의 수정을 거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디자이너도 작품 원본과의 통일성을 검토하는 작업으로 최종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 개입한다. 번역 담당자의 업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스타트업 트위그팜은 최근 자사의 콘텐츠 현지화 서비스 ‘레터웍스’에 웹툰 번역 기능을 추가했다. 웹툰 이미지를 업로드해 1차 작업 결과물을 받고 수정작업을 할 수 있는 서비스다.

 

트위그팜 레터웍스에서 제공하는 웹툰 번역 서비스 예시 화면. 사진=트위그팜 제공

 

#AI 번역, 어디까지 괜찮나 논의 필요 

 

업계는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최종 결과물을 얻는 수준까지 가는 건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정확성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AI 번역 업체 관계자는 “현재 기술로는 이미지에서 추출 불가능한 부분도 존재하고 번역, 식자 작업별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상당하다”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웹툰이 해외 시장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AI 기술을 통한 효율화가 필요하다. 연구개발이 더 적극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AI 번역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지난해에는 40대 일본인 주부가 한국문학번역상 웹툰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결과가 뒤늦게 알려지며 AI 번역 수용 범위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붙였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수상자가 네이버 번역기 ‘파파고’로 ‘초벌 번역’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인데, 이에 수상자는 “작품 통독 후 보다 정확한 번역을 위해 사전 대용으로 활용했다”는 취지로 해명에 나섰다. 번역원은 이 사례를 계기로 AI와의 협업 범위에 대한 정책적 논의를 본격화하고 다음 신인상 수상 공모 요강부터는 기계와의 공동 번역은 불가하다는 요건을 추가했다. 번역가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검증하는 시험대인 만큼 AI 번역은 배제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지난해 태국 방콕에서 열린 K박람회에 마련된 웹툰 부스. 사진=연합뉴스


웹툰산업은 국내 시장에서 고점에 도달했고 비즈니스모델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서의 성공을 결정짓는 ​현지화 수준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하는 대형 플랫폼들 역시 번역에 투자하려는 의지가 확고하지만, 아직 AI 번역에는 다소 보수적인 태도도 엿보인다.

 

네이버는 국내 업체 외에도 지역별로 현지 업체를 쓰거나 오래 협업한 프리랜서 등에 전문 외주를 맡기고 있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번역에 투입되는 비용은 자사가 부담한다”며 “언어권별로 달라지는 표지 디자인의 경우에도 내부 디자인 인력이 담당한다. 글로벌 론칭, 마케팅을 회사가 전담해 작가는 연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라고 전했다. 카카오는 자회사인 키위바인을 통해 전문 인력 중심의 번역 업무를 내재화하고 있다. 키위바인은 2021년 10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된 후 웹툰·웹소설 현지화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 카카오웹툰 관계자는 “AI 번역은 저작권, 윤리 문제 등 사회적 합의가 아직 명확히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앞으로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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