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효리가 자신의 엄마와 함께 새로 시작한 예능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여행 갈래’)를 보며 계속 드는 생각? ‘어휴, 나는 안돼, 나는 못 가’다. 물론 이 넓은 세상에, 엄마랑 단둘이 여행 가는 게 뭐 어렵냐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러나 26년째 톱스타이자 예능에 구력이 상당한 이효리도 생애 처음 엄마랑 단둘이 여행을 떠나서 저렇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엄마와 딸의 단둘만의 여행이 쉽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그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다 알기에 이 프로그램은 엿보는 재미가 있다. 저거 정말 힘든데, 저들은 어떻게 여행할까 싶은 찬사와 부러움과 위안 등등 모든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마음으로 보게 된다.
‘여행 갈래’는 딸, 아내 그리고 이효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전기순 여사, 그리고 전기순 여사의 딸이자 대한민국 슈퍼스타로 살아온 이효리가 단둘이 떠나는 생애 첫 여행이 콘셉트. ‘효리네 민박’ ‘캠핑클럽’ 등을 함께한 마건영 PD와 윤신혜, 이경희 작가 등이 함께해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이효리의 또 다른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사실 이효리가 여행하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이 한둘이 아니었다. ‘패밀리가 떴다’ ‘효리네 민박’ ‘캠핑클럽’ ‘서울체크인’ ‘캐나다 체크인’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그는 다양한 형태와 콘셉트의 여행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가장 사적인 관계인 부모와 함께한 예능은 ‘여행 갈래’가 처음. ‘이발소집 막내딸’이라는 이효리의 가정 서사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정면으로 방송에 나온 건 처음인 것 같다. 연예인이 예능에서 가족과 동반해 나오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특별한 제작진의 개입없이 오롯이 모녀 단둘의 관계에 집중한 것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고.
세상은 흔히 엄마와 딸을 세상 애틋한 관계로 바라볼 때가 많지만, 실상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그들의 마음은 조각배 타고 태평양 횡단하는 사람의 그것과 같을 때가 많다. 그만큼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거든. 경주로 떠난 이효리와 엄마의 모습에서도 그런 변화무쌍을 수시로 발견할 수 있다. 대릉원에 관심이 있다는 엄마의 말에 해설사까지 요청했지만 정작 해설사의 설명에 무관심한 듯한 엄마의 모습에 이효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효리는 과거의 이야기는 이제 서로 웃으며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좋은 얘기만 하자”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거부한다. 엄마를 위해 차를 준비해 왔건만, 엄마는 자꾸 자기가 준비해 온 오미자차만 강권한다. 텐션의 속도도 맞지 않는다. 딸의 텐션이 높아질 때 엄마는 이미 지쳐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딸의 텐션이 지쳐 있는데 엄마는 뒤늦게 시동 걸린 차처럼 이제 좀 활기가 돋는 식이다.
이런 이효리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녀 관계를 반추하는 엄마와 딸이 한둘이 아니리라. 나도 단둘은 아니지만 엄마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엄마와의 첫 여행은 무려 외할머니와 엄마와 딸들 셋이 함께하는 3대 모녀 여행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즐거운 순간이 많았으나 그 당시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순간순간이 많았다. 당시 80대 노모였던 외할머니는 우리가 보여주고픈 것이 많았음에도 당신이 관심이 있던 시장을 갈 때를 제외하곤 수시로 무릎이 아프다고 짜증을 내셨고, 엄마는 자신의 엄마와 자신의 딸들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모르며 동분서주하셨다. 그때는 그나마 외할머니가 있어서 참고 넘겼던 것도 많다.
그러다 작년 엄마와 딸 셋이 함께 태국 여행을 갔을 땐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순간이 어찌나 많던지! 나름 여행 좀 다닌다 자부하던 딸 셋은 엄마와의 여행을 통해 부모와 함께하는 여행에선 완전 초짜였음을 실감했다. 최근 읽은 사카이 준코의 에세이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에서 ‘엄마와 함께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짜증이 심하게 나서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박장대소하면서도 뜨끔하더라니까. ‘여행 갈래’에서 이효리 모녀가 마주친 다른 아주머니들도, 딸들보다 친구들과 여행하는 게 더 편하다며 웃는 걸 보면 엄마들의 입장 역시 쉽지만은 않은 것 같지만.
‘여행 갈래’는 엄마와 딸이라는 세상 가까워 보이는 관계가, 얼마나 오묘하고 복잡한지 깨닫게 해주는 점에서 세상 모든 부모자식들이 한 번쯤 봤으면 하는 프로그램이다. 엄마는 자식을, 자식은 엄마를 어느 정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까맣게 모를 때가 많다. 자식이 미성년일 때는 부모가 자식들을 건사하고 키우는 데 급급했고, 자식이 성인이 되고는 서로 함께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중 각자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이효리가 엄마에게 왜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관심이 없냐며 투정부리듯 물었을 때, ‘너 뭐 물었을 때 잘 대답 안 하니까 (상처받을까 봐) 잘 묻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고는 충격 받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서로 묻지 않아서, 서로 관심을 덜 기울여서, 내 식대로 오해한 엄마와 딸의 관계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우리 가족이 뭐가 잘못됐고, 그래서 발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섣부른 성장을 주장하지 않는 것도 이 예능의 빛나는 점. 가난했던 시절 대가족을 먹이기 위해 자주 끓였다는 이효리 엄마의 오징엇국을 먹으면서, 이효리는 자신의 국에는 오징어가 몇 개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 가족의 서사는 우리만 알지”라고 말한다. 다른 수많은 장면에서도 짙은 감정이 많이 깃들어 있었지만, 나는 유독 이 장면에서 찡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 우리 가족의 서사는 우리만 알지. 남들이 어떻게 보든 뭐라 이야기하든 간에. 실상 서로를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또 우리끼리의 서사가 응축돼 있는 가족의 면모를 오징엇국을 통해 엿본 느낌이었다.
여행은 아니더라도, 세상 서로 표현하지 않는 엄마와 딸들이 이 예능을 보면서, 서로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되어줬으면 싶다. 물론 나는 ‘여행 갈래’를 다 보고 나서도 엄마랑 단둘이 여행을 갈 결심을 하진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기회가 닿는다면 동생들과 함께 한 번 더 엄마와 여행을 계획해 봐야 하나?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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