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지구열대화(global boiling)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런 말을 했다. 올해도 작년 못지 않은 폭염이 예상되며, 피해 규모는 작년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당장 한국부터 연일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고 있다.
지구는 매년 급속도로 병들어가는데,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우리의 기술 발전은 너무 더디다. 기후테크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지만, 아직 ‘게임 체인저’라고 부를 만한 기술은 없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 감소와 탄소를 대량 제거하는 획기적인 해결방안이 나와도, 이미 병든 지구 생태계를 예전으로 돌리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가 펴낸 전 세계 기후테크 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32년에는 기후테크 산업 규모가 약 200조 원(1480억 달러)가량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기후테크의 성장세와는 다르게 왜 세상을 뒤바꿀 탄소 저감 기술은 아직 없는 것일까?
#기후테크는 왜 발전이 더딜까
기후테크(climate technology)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범위의 기술을 지칭한다. 사실 기후테크는 다른 산업에 비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먼저 다른 분야에 비해 투자의 장벽이 높은 편이다. 기술 난이도가 높아 장기간에 걸친 연구와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획기적인’ 솔루션은 나오기 힘들다. 그러니 장기간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기후테크에 투자하는 것이 당연히 쉽지 않다.
투자를 받은 이후에는 빠른 시일 내에 규모의 경제에 도달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 또한 어렵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기후테크 투자붐 일어 한때 50억 달러(7조 원)까지 자금이 몰렸다. 그러나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투자 받았던 스타트업 대부분이 실패하고 투자도 절반 이상 뚝 떨어졌다. 금융위기라는 국제정세와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 등 여러 요인이 꼽히지만, 초기 개발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반면 규모의 경제에 빠르게 도달하지 못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점을 주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재료 및 공정 혁신과 같은 하드웨어 혁신은 초기 투자 비용의 일부만 회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와 해외 기후테크 분야 공통점과 차이점
한국무역협회(KITA)의 기후테크 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까지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전체 스타트업의 4.9%에 불과하다. 또 스타트업 1사당 평균 투자 규모는 해외 10개국 (미국, 중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인도, 스웨덴,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평균 규모의 약 26% 수준이다.
해외도 국내도 기후테크 분야의 창업과 투자는 분명 쉬운 길이 아니다. 국내 스타트업들은 자본력과 기초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듯하다. 대기업과의 협업은 프로토타입 생산 및 실증 시에도 분명 스타트업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해외 스타트업들도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통한 대기업 연계는 특히 상용화 이전의 단계에서 많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수익 창출 이전(pre-revenue)의 기후 하드웨어 기업이 많은데, 이들은 초기 단계에 수익 창출 구조를 구축한다. 유럽의 대표적인 기후테크 기업 두 곳을 통해 해외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 살펴보자.
#기계·기술·탄소크레딧 ‘삼각편대’로 수익 내는 노이스타크
스위스 기후테크 스타트업 노이스타크(Neustark)는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폐콘크리트에 주입하는 기계를 생산한다. 지난 3년간 연평균 성장률(CAGR)이 271%에 달한다.
노이스타크 수익 중 약 절반은 철거 폐기물 재활용 공장에 기계를 판매하는 데에서 나온다. 공장들은 철거 폐기물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재활용 콘크리트를 생산하거나 아스팔트 아래 도로에 뿌린다. 기기 대금은 재활용 회사가 선불로 내고, 노이스타크는 콘크리트에 저장된 이산화탄소 1톤당 비용을 재활용 회사에 지불한다.
수익의 나머지 절반은 재활용 회사가 저장한 이산화탄소 양에 따라 탄소 배출권을 판매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나 UBS와 같은 기업과 탄소배출권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 규모와 기간에 따라 저장된 CO₂ 1톤당 350~500달러(50만~70만 원)를 벌어들인다.
노이스타크는 이처럼 수익 모델을 기계 판매나 탄소크레딧 거래 어느 한쪽에만 두지 않고 적절히 배분해 기술, 기계, 탄소크레딧 세 가지 요소가 함께 움직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전략은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리스크를 줄이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탄소배출권 수익에만 의존하면 탄소크레딧 가격이 유동적이기에 기업의 마진 예측이 쉽지 않다.
노이스타크 외에도 많은 유럽 스타트업이 자본 집약적인 초기 개발비용을 쓰지 않고도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영국 스타트업 미션제로(Mission Zero)는 크레딧 판매 대신 탄소 제거 기술을 기업에 판매한다. 독일 볼트에어(Woltair)는 집에 태양열 패널이나 히트 펌프를 설치하려는 소비자와 설치 업체를 연결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운영함으로써 히트펌프를 직접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없앴다.
#VC 투자 없이 사모펀드에 1조 투자받은 제노베
2023년 가장 놀라운 펀드레이징 주인공은 단연 영국 스타트업 제노베(Zenobe)였다. 에너지 저장 배터리를 만들어 버스 회사에 전기 버스를 공급하는 제노베는 벤처캐피털 투자 단계를 건너뛰고 미국의 사모펀드, 인프라 및 부동산 투자사인 KKR로부터 6억 파운드(1조 500억 원),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바달라가 지원하는 인프라 펀드로부터 2억 7000만 파운드(4700억 원)을 투자받았다.
제노베의 공동창업자 스티븐 미어스먼은 “우리는 사모펀드에겐 너무 작은 회사였고, 인프라 투자를 하기엔 너무 신생 기업이었으며, 벤처캐피털에겐 너무 자본 집약적인 회사였다”라고 회상한다. 2017년 탄생한 스타트업 제노베는 어떻게 단기간에 이런 성과를 얻었을까.
제노베는 친환경 전환에 내재된 기회를 잡아 발빠르게 사업화했다. 2017년 영국에선 태양광 발전소와 풍력 발전소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제노베는 재생 에너지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저장 용량이 더 커져야 한다는 기회를 포착했다.
그다음에는 버스 회사의 친환경 전환으로 눈을 돌렸다. 버스 회사로서는 전기 버스로 바꾸는 게 비용 부담이 크다. 제노베는 부채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버스 회사에 충전 인프라와 전기 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선불 자본을 제공했다. 결론적으로, 버스 회사가 은행에 직접 가는 것보다 더 오랜 기간 더 적은 금액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했다.
부채 금융을 활용한다는 다소 위험한 모험을 제노베는 성장 잠재력과 수익을 더 많이 가져올 기회로 생각했다. 검증된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혁신적인 자금 조달 방식을 채택한 제노베는 결국 인프라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술력이 뛰어난 스타트업들은 많다. 하지만 기술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에 기반을 둔 뚜렷한 사업전략이다. 이들의 기후 기술이 실생활에 폭넓게 적용되려면 더 많은 투자자들이 기후테크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기술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타트업이 똑똑하게 전략을 세우면 기후 기술을 더 낫게 만들고 지구열대화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김은빈은 해외에서 국제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국제기구, 정부기관, 스타트업 등 다양한 조직에서 경험을 쌓았다. 지속 가능성 및 개발협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베를린의 123팩토리에서 스타트업의 소셜임팩트를 창출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김은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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