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같이의 가치’라는 말이 있다. 10여 년 전 한 기업의 이미지 광고에 등장한 말이다. 함께하는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멋진 카피다. 같이 한다는 것은 공감 혹은 소통을 뜻하고, 이 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다. 예술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때 가치를 지닌다. 공감은 시대정신과 보편적 예술 언어에서 나온다.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쉬운 미술 언어로 보여주고자 한다. 시즌 10을 맞으면서 공자가 말한 ‘좋은 예술은 반드시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려는 작가를 응원한다.
요즘 매스컴을 보면 한국 문화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는 논조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K-드라마, K-팝, K-푸드, K-패션에 세계인이 열광한다고 말한다. 대중문화에서 이러한 성과를 보인 것은 무시할 수 없다. 대중문화가 이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의 선호도에 따라 자본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은 순수 문화다. 나라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의 본연이 새로운 문화 지형을 만들어온 지난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 문화가 그랬고, 19세기 일본 문화가 서양에 새로운 문화 모델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일본 정서를 담은 통속적 주제의 목판화인 우키요에가 인상주의 회화에 끼친 영향은 근대 회화의 토양을 바꾸었다. 현재도 그렇다. 미국에서 성장한 팝아트를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은 일본 후기 팝아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듯 문화의 지형을 바꾸는 일은 정체성 있는 나라의 문화가 감당해낼 수 있는 몫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의 현대화는 순수 문화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통을 철저하게 무시해왔다. 독보적이고 세련된 회화 양식을 열었던 고려불화는 맥이 끊긴 지 오래고, 겸재와 혜원이 이뤄낸 현대 감각의 회화 세계는 진부한 전통 미술로 취급된다. 특히 색채로 표현하는 인간 감정을 금기시했던 조선 시대의 성리학은 사대주의적 문화를 만드는 빌미가 되었다.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우리 민족의 표현 욕구는 현대의 대중문화 속에서 폭발하는 중이다. 이를 먼저 포착해 회화로 담아낸 것이 조선 말 평민 사이에 자리 잡았던 민화다. 민화는 색채가 중심이 된 표현주의적 회화와 가깝다. 색채의 전통은 채색화에서 맥을 이을 수 있었다.
동양의 평민적 정서나 화려한 표현력을 담아낸 것이 채색화다. 중국은 고급스런 감각으로 채색화의 전통을 이어왔고, 20세기 중국식 팝아트에서 꽃을 피웠다. 일본은 대중적 정서의 확장으로 채색화를 발전시켜 아니메 팝으로 불리는 후기 팝아트에서 만개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세기 100년 동안 채색화를 일본풍으로 몰아 철저하게 외면했다. 현재는 미술대학의 교과 과정에서도 전통 회화를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전통 채색의 맥을 찾아 현대화하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최원석도 그런 작가군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중국 유학을 통해 익힌 전통 채색을 오늘의 정서에 맞는 방식으로 선보인다. 작가는 고양이, 오리 등의 동물과 나팔꽃, 붓꽃 같은 식물을 전통 채색 기법으로 그린다. 탁월한 사실감과 깊이 있는 색감이 일품이다.
최원석 작가는 이런 소소한 소재로 큰 세계를 꿈꾸는 얘기를 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세상은 이렇듯 작은 사물의 힘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켜내는 채색화의 전통이 새로운 한국 미술의 지형이 되기를 소원한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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