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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수준 실거주 아닌 그냥 호텔" 세운지구 생숙 150명 집단 소송 내막

주택법 규제 피한 주거용 홍보 문구 쟁점…초기 가이드라인 불분명 원인, 전국 확산 조짐

2024.06.14(Fri) 17:38:57

[비즈한국] “분양 당시에는 실거주가 가능한 호텔 수준의 대체 주거상품이라고 안내받았습니다. 상담사들은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죠. 2년 전까지 그렇게 홍보하더니, 올해 설명회에서는 이 시설을 호텔 위탁 운영사와 함께 호텔로 만들겠다고 발표했어요. 지금도 푸르지오 공식 홈페이지에는 우리 시설이 아파트로 소개돼 있습니다.”

 

올해 말부터 생활형 숙박시설(생숙)에 대한 용도 변경 이행강제금 부과가 예정된 가운데, 생숙 수분양자들이 ‘사기분양’을 주장하며 시공사와 시행사, 분양대행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 서울시 사대문 안 마지막 대규모 재개발 지역으로 불리는 ‘세운지구(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도 분양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집단 소송이 제기되었다.​

 

올해 10월부터 생활형 숙박시설에 대한 이행강제금 부과가 예정된 가운데 서울 중구 세운지구에 조성되는 생숙에서 수분양자들의 집단 소송이 제기됐다. 세운 푸르지오 G-팰리스 건축 현장. 사진=강은경 기자


#‘생숙 사태​ 세운지구서도 소송 제기​

 

법조계와 업계에 따르면, 서울 중구 ‘세운 푸르지오 G-팰리스(구 세운 푸르지오 그래비티)’ 수분양자 150명은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에 코리아신탁과 한호건설 그룹의 디블록파트너스, 대우건설, 분양대행사 미래인을 상대로 사기분양계약의 취소를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호건설그룹이 시행하고 대우건설이 시공하는 이 시설은 세운지구 3-6, 3-7구역에 지하 6층~지상 20층 2개동 756실(전용면적 2150㎡) 규모로 들어선다. 오는 9월 준공 예정으로, 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 3차 분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에 나선 수분양자들은 거주가 가능하다는 홍보직원의 말을 믿고 계약했다며, 공급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허위 광고를 펼쳐왔다고 반발하고 있다. 수분양자 강 아무개 씨는 “2021년 1차, 2022년 2차 분양 당시 대부분의 수분양자들이 오피스텔처럼 쓸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그동안 숙박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한 고려나 안내는 없었고, 올해 초 열린 설명회에서 호텔 사업 운영 계획이 소개돼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2021년 12월 전용면적 46㎡ 타입을 11억 원대에 분양받은 A 씨도 “고급스러운 마감을 갖춘 하이엔드급 시설, 거주 여건을 갖춘 호텔 수준의 오피스텔이라고 안내받았다. 거주도 가능하고 장기 임대도 가능하다고 해 계약한 것이지 호텔로 위탁할 생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수분양자들은 해당 설명회를 계기로 결집했다. 분양 사무소의 홍보 멘트 외에도 공식 카탈로그에서 ‘하우스’로 홍보하고, 영상 홍보물을 통해 ‘차 없이도 생활이 가능’, ‘출퇴근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 저녁이 있는 삶’, ‘부동산 대책 수혜 상품’ 등으로 홍보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현재 푸르지오 홈페이지 상에는 세운 푸르지오 G-팰리스를 아파트로 소개하고 있다. 사진=푸르지오 공식 홈페이지


집단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정세는 사업자들에게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고 ‘생숙 사태’를 ‘리콜 사건’으로 보고 있다. 대규모 주거시설이 들어서면 안 되는 상업지구에서 주택법상 ‘준주택(주택이 아닌 주거 시설)’으로 한 번도 포함된 적 없는 생숙을 사실상 준주택으로 불법 분양한 게 문제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측은 생숙 사태를 정당하게 푸는 해결책은 사업자들의 자진 리콜이라며, 깨알 같은 크기로 기재돼 있는 약관조항으로 사업자들이 면책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진환 정세 변호사는 비즈한국에 “공급 계약서는 일반 매매계약과 달리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인쇄해놓은 문서다. 약관은 설명 의무가 있다. 계약물의 속성과 사용 용도 등 중요한 사실에 대해 설명 의무를 이행하기는커녕 반대로 설명해 판매했다면 약관법상 계약에 편입될 수 없다”며, “애초에 충분한 고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점입가경 ‘생숙 사태’, 전국적 확대 조짐

 

일명 ‘레지던스’로 불리는 생숙은 호텔식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취사가 가능한 숙박 시설이다. 건축법상으론 소유자가 직접 거주할 수 없는 시설이지만, 아파트와 구조가 비슷하고 전입신고가 가능해 주거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빈번했다. 초기 거주 규제 관련 법적 가이드라인이 불분명했던 영향이다.

이 같은 ‘변종주택’을 찾는 수요는 집값이 크게 오른 2020~2021년 무렵 극에 달했다.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과 공중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생숙은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고, 청약 통장이나 청약 홈 의무가 없다. 전매 제한이 없는 데다 담보대출 규제, 세금 환급 측면에서도 유리해 실거주 수요부터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까지 몰려 광풍이 불었다.​

 

해당 생숙은 오는 9월 준공 예정이다. 사진=강은경 기자

 

시행사도 아파트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를 피해 생숙이나 오피스텔로 눈을 돌렸다. 생숙이 고품질의 새로운 주거형태라는 홍보 방식도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이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2만 실 규모의 생숙이 분양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시행사들이 생숙을 주거형으로 판매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레지던스 등에 대해 분할 등기가 가능하도록 정책을 설계한 점,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사태였음에도 분양 붐이 일 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 등 정부 책임도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10월부터는 오피스텔로 전환하지 못한 생숙은 숙박 용도로만 활용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공시가격의 10%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이는 정부가 2021년 5월 건축법 시행령을 고쳐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한 데 따른 조치다. 소유주와 기존 거주자들의 반발에 따라 시행이 거듭 유예돼왔다.

 

시행사 측은 2021년 관련 법 개정에 따라 ‘생활숙박시설 관련 확인서’를 의무적으로 받고 있고 세운 수분양자들의 경우에도 해당 확인서류에 자필 서명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한호건설그룹 관계자는 “소장을 받아본 후 사실관계를 확인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올해와 내년 입주가 예정된 생숙 물량은 1만 2000여 실에 달해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평균 청약 경쟁률이 657대 1에 달했던 서울 강서구 마곡동 ‘롯데캐슬 르웨스트(876실)’도 소유자 절반이 집단 소송에 나섰다. 생숙 사태가 갈수록 심화하자 시행사가 전매나 명의 이전 시 분양권 승계 승인을 해주지 않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제경 소장은 “2021~2022년 사이 생숙 분양 물량이 상당히 많았다. 통상 23년 후 입주하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파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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