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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미룰 수 없는 인공지능 기본법, 유럽과 미국 사이 '제3의 길'로?

21대 국회 13개 법안 모두 폐기…글로벌 패권 경쟁 속 자율과 규제 사이 '균형' 잡아야

2024.06.12(Wed) 17:39:35

[비즈한국]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 등 각국이 인공지능(AI) 관련 법제화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규범을 주도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했다. 새 기술이 등장하면 표준과 규제를 선점한 나라가 산업을 주도하기 마련이다. 글로벌 단위로 공급과 소비가 이뤄지는 AI에서는 주도권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한국도 AI 기본법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21대 국회의 임기 만료와 함께 인공지능 관련 법안 13개는 자동 폐기됐다. 다만 새 국회 개원 이튿날 AI 법안이 발의되는 등 동력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AI 서울 정상회의’​ 장관 세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부 장관(앞줄 왼쪽 세번째)이 각국 정부 대표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대 국회 발의안 모두 폐기, 새 국회도 ‘시동

 

12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확인되는 AI 관련 법안은 16건이다. 법안 2건이 발의된 20대 국회에 이어 21대에서는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이 붙은 법안만 13건이 발의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국회 임기 종료에 따라 현재는 모두 폐기된 상태다.

개원 2주를 맞은 22대 국회에도 이미 AI 기본법 격의 법안 한 건이 발의됐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한 ‘인공지능(AI)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제정안은 고위험 영역 AI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사업자의 책무, 이용자 권리 등을 규정하고 안전한 AI 기술 이용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내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과 대통령 소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설치 등 기존 안과 큰 틀에서 유사하다.

‘안철수 안’을 시작으로 이번 국회에서는 AI 기본법을 자처하는 제정안이 다수 발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달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2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가 1년 3개월간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않고 폐기된 ‘AI 기본법’(인공지능산업 진흥 및 신뢰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도 새 국회에서 다시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과방위 안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AI 비밀법’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1년이 넘도록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장혜영 정의당 전 의원은 지난달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방위 측에 확인한 결과 현재로서는 AI 기본법에 문서화된 안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국회에 대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세계 주요국이 인공지능(AI) 관련 법제화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22대 국회에서 AI 기본법이 제정될지 주목된다. 사진=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진흥-규제​ 양립 핵심 과제…“유럽처럼 위험도 분류해야” 

 

새 기본법은 어떤 모습일까. 업계 안팎에서 과방위 안을 계승할 새 법안이 어떤 내용일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기존 안은 2년 가까이 국회에서 논의되다가 위원회 대안으로 처리됐다. AI 신뢰성, 투명성, 안전성에 대한 여야 공감대를 확보해 개별 의원들의 발의안도 여기에 토대를 둘 가능성이 크다. 여야의 7개 법안을 묶은 ‘종합본’이기 때문에 법안 통과에는 실패했지만 나름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AI 기본법은 그 이름에 걸맞게 AI와 관련한 모든 법에 앞서는 효력의 기본법이자 특별법의 성격을 갖게 된다. AI의 법적 정의와 3년 주기의 인공지능 기본계획 수립 및 인공지능위원회 설립, 고위험 영역에서의 신뢰성·안전성 확보 등 과방위 안에 포함됐던 기본 내용이 이번 국회에서도 공통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AI 기본법과 관련해 국회에 자문하고 있는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인공지능윤리정책포럼 위원장)는 “현재는 산업진흥(과기정통부·산업통상자원부)-규제(여성가족부·방송통신위원회)-저작권(문화체육관광부)을 부처별로 다루고 있어 각 사안이 부딪힐 때 이를 조정하는 체계나 관할하는 부서가 없다. AI 기본법​은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헤드쿼터를 만드는 작업”이라며 “한국 기업이 국내 기준에 부합하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사업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규제 호환성을 구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AI 기술과 산업에 규제가 어느 정도 적용될지는 초유의 관심사다. AI 기본법이 정쟁 사안이 아님에도 규제와 관련해서는 입장 차가 첨예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글로벌 AI 시장에서 ‘소비국’에 가깝지만 ‘공급국’을 목표로 하는 만큼 규제 중심의 EU와 자율에 무게를 두는 미국 사이의 규제 정책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IAAE) 이사장은 세계 최초로 마련된 유럽의회(EU) ‘AI법(AI Act)’의 위험 분류 체계를 거론했다. 이 법은 AI를 위험성 정도에 따라 △수용 불가능한 위험 △고위험 △제한된 위험 △최소 위험으로 구별하고 각기 다른 규제를 적용한다. 전 이사장은 “위험성 정도에 따라 규제 시급성에 차이가 있다. 상담용 챗봇처럼 민간 자율 영역에 맡겨도 되는 서비스가 있는 반면 인간 생명과 신체에 영향을 주는 살상 목적의 로봇은 규제돼야 하고,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AI 면접·AI 판사, 정신과 재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영역에는 체계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과기부가 주최한 ‘AI글로벌포럼’에 참여한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서울 AI 기업 서약’을 공개하는 모습. 사진=강은경 기자


지난달 서울 AI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AI 안전성 연구소 설립 관련 내용도 기본법에 새롭게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AI 안전성 연구소는 초기 논의 당시 런던에 한 곳 마련될 계획이었지만 영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국가별 운영이 결정됐다. 김명주 교수는 “연구소 운영을 위해서는 법적인 토대가 필요하다.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국내에서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며 “관련 내용과 함께 AI 인증·검증, 영향평가 등이 기본법의 주요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하반기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 등 주요 일정을 감안하면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빨라도 연말에야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비판을 넘어서는 법안이 나올지도 주목된다. 21대 국회 과방위 안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규제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 등을 문제 삼으며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고위험 AI의 범위가 모호하고, 생명·안전·인권 등 AI 기술을 적용해서는 안 되는 분야에 대한 규정이 없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과방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와 논의해 이 원칙을 삭제한 수정안 통과를 추진해왔다.

 

전 이사장은 “AI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술”이라며 “강제 규제, 자율 규제를 구분하고 산업 진흥과 규제가 양립하는 법안이 나오면 한국이 AI 글로벌 규범에 있어 리더십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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