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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사 약국 개업 멈춰!" 약사-한약사 강대강 대치 이어지는 까닭

약사법 '허점' 놓고 각자 유리하게 해석, 복지부 '방관'에 갈등 계속

2024.06.11(Tue) 17:55:03

[비즈한국] 현행 약사법은 한약사의 업무 범위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로 인해 한약사 단체와 약사 단체는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각자의 해석만을 바탕으로 강대강 대치를 반복한다. 최근 금천구에서 한약사가 약국 개업을 알리자 서울시약사회가 릴레이 시위를 벌여 약국이 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다. 담당 주체인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탓에 직역 간 불필요한 갈등이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오전 서울시약사회 관계자가 금천구 소재 한약사 개업 약국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김초영 기자

 

#릴레이 시위 탓 ‘개업 무기한 연기’

 

금천구 소재 한약사 개업 약국으로 약사와 한약사 간 직역 갈등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일 오전 서울시약사회는 이 약국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시작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이 약국은 약사가 아닌 한약사가 개업하려 한다. 한약사는 약사 면허가 없음에도 약사 행세를 하려 한다”며 “부작용을 예방하고 안전한 약물 복용을 위해 의약품을 구매할 때는 약사 명찰과 면허증을 꼭 확인하라”라고 당부했다. 이날 시위에는 서울시약사회 관계자들과 금천구약사회장, 중랑구약사회장 등이 참여했다.

이 약국은 지난 1일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약사회가 성명 발표에 이어 릴레이 시위를 예고하면서 미뤄진 상황이다. 약사회가 지적한 약국 외부 ‘병의원 처방조제’ 문구도 가려졌다. 약국 내부는 다양한 의약품과 포스기, 손님용 의자가 들어서 있는 등 영업을 위한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보였다. 부동산과 병원으로부터 받은 화환 등도 그대로였다. 약국 출입구 두 곳에는 “기득권 약사 단체의 방해로 오픈 준비에 차질을 겪고 있다. 조속히 오픈 준비를 완료해 금천구민의 건강지킴이가 되도록 하겠다. 죄송하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비즈한국은 약국 개설자로 알려진 대한한약사회 집행부 관계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

인근에서 카페를 10년 넘게 운영해 온 A 씨는 “약국 자리는 10년 넘게 깔세(임차 기간만큼 월세를 미리 내는 단기 임차)로 운영됐었다. 직전에는 휴대폰 가게가 있었다. 약국이 들어선다고 해서 이제 오래 가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며 “처음에는 약사들이 왜 반대하나 싶었다. 나중에 약사들 말을 들어보니 이해는 갔다. 그런데 한약사가 약사를 고용하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카페를 방문하는 단골 손님 대부분도 ‘그러면 약사를 고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이다”라고 말했다.​

 

10일 오전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권영희 서울시약사회장이 ​인근 카페에서 ​기자를 만나 ‘한약사는 약사가 아닙니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들어 보였다. 사진=김초영 기자

 

권영희 서울시약사회장은 “처음 약사법이 만들어졌을 때는 한약 시장이 좋았기에 한약사가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지금의 상황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결국 법령상 ‘정의’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약사법 제2조 2항은 ‘약사는 한약에 관한 사항 외의 약사에 관한 업무(한약제제에 관한 사항 포함)를 담당하고, 한약사는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자’라고 명시한다. 국가에서 면허도 다르게 발급하고 있다. 국민은 한약사라는 존재도 잘 알지 못하는데 약국을 개설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며, 국민 건강권을 해치는 행위다. 보건복지부가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약사법, 해석 따라 달라져…한약제제는 수년째 분류도 안 해

 

현행 약사법은 해석에 따라 한약사의 업무 범위가 달라지는 허점을 안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약사가 약국을 개설하는 사례가 발생할 때마다 한약사와 약사 측은 각자 논리를 펼치며 수년째 갈등을 반복하는 실정이다. 약사계는 직역의 ‘정의’를 다루는 약사법 제2조를 강조한다. 반면 한약사 측은 제20조 제1항, 제44조, 제50조 등을 들어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약국을 개설할 수 있으며, 약국 개설자는 의약품 판매가 가능하다고 맞선다.

한약사계는 “‘의약품 조제’ 부문에는 면허범위가 명시돼 있지만 ‘의약품 판매’에는 면허범위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약제제가 분류되지 않아 면허범위도 정해지지 않았다고도 주장한다. 실제로 약사법은 의약품 판매와 관련해 면허범위를 언급하지 않는다. 의약품도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으로만 구분하며, 한약제제의 경우 아직 분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약사계는 한약사의 약사 고용을 두고는 “복지부 해석에서 해당 행위를 별도로 제한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한약 상담 조제와 일반의약품 판매를 같이 하는 서울의 한 한약사 개설약국 내부. 사진=김초영 기자


반면 약사계는 “보건복지부는 한약사가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반약 판매는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고 반박한다. 앞서 2019년 보건복지부가 대한한약사회, 대한약사회, 한국의약품 유통협회장 등에 면허범위에 따른 업무를 준수하도록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것을 말한다. 당시 약사회는 “복지부가 한약사의 일반약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한약사회 측은 “약사회의 한약제제 임의제조를 막겠다는 의미”라는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 이후 복지부는 “한약제제 분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하며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한약사계 “약사 단체 조직적 영업 방해 의심”


논의를 위한 협의체 구성 같은 진전이 안 보이자 일부 약사 단체는 한약사 개설 약국 리스트를 공유하고, 한약사에 일반약 공급을 거부한 제약사를 응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에 약국을 개설한 한약사 B 씨는 “영업 시작 1주일 만에 지역약사회장이 수행원 1명과 함께 찾아왔다. 출신 학교와 사는 곳을 비롯해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이렇게 영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냐’며 따져 물었다”며 “중소 제약사뿐 아니라 규모가 큰 제약사에서도 약품 공급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H 제약사는 ‘약사회에서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협조를 바라는 언질을 계속 준다’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B 씨는 약사 단체가 규모가 40분의 1에 불과한 한약사 개설 약국을 제재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B 씨는 “한약사 개설 약국은 다른 약국에 비해 규모가 작다 보니 약사들이 이러한 점을 이용한다. 약국은 외상 거래로 이뤄지기에 영업사원들이 한약사 약국과 거래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반품을 안 하겠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일부 영업사원들은 어쩔 수 없이 약을 다시 사들인 뒤 한약사에 ‘무자료 제품들 있으니 구매를 희망하면 알려달라’고 하고, 한약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런 제품을 사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국회에서도 약사법 내 면허범위를 구체화하는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약사회와 한약사회는 성명서 발표, 릴레이 시위 등을 통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한약사회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그동안 약사회에 비해 한약사회는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약사 가운데 이런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이전 집행부와 달리 현 한약사회장은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등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번에는 한약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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