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30년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1000여 개의 은하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머리털자리 은하단에서 놀라운 모습을 발견했다. 은하단 속의 은하들이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츠비키가 보기에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은하들은 진작 은하단의 약한 중력을 탈출해 은하단 바깥으로 튕겨 날아갔어야 할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은하들은 은하단을 벗어나지 않은 채 계속 은하단에 잘 머무르고 있었다. 이것은 은하단이 겉보기보다 훨씬 강한 중력, 훨씬 무거운 질량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은하단 속 은하와 은하 사이 텅 빈 공간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사실 빛을 내지 않는 어떤 미지의 물질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렇게 츠비키는 오늘날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는 우주의 가장 거대한 미스터리 암흑 물질의 존재를 암시하는 첫 관측적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그 암흑의 역사가 처음 쓰여지기 시작한 현장이 바로 이곳, 머리털자리 은하단이다.
여전히 암흑 물질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다. 하지만 이제 천문학자들은 암흑 물질의 존재 자체뿐 아니라, 이 미지의 존재가 우주 전역 어디어디에 퍼져 있는지 그 지도까지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암흑 물질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역사적인 성지, 머리털자리 은하단에서 암흑 물질의 잔가지가 뻗어나가는 놀라운 지도를 새롭게 그려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이 올라가면서 천문학자들은 암흑 물질을 쫓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한 가지 더 터득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놓인 암흑 물질을 머금은 은하단은 자신의 육중한 질량으로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한다. 그로 인해 그 너머의 더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배경 우주의 빛들이 휘어져 들어온다. 마치 중력 자체가 빛의 경로를 휘게 만드는 렌즈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봤을 때 먼 배경 우주의 모습이 일그러지고 왜곡된 이상한 모습으로 관측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중력 렌즈라고 부른다.
보통 중력 렌즈라고 하면 거대한 은하단이 만들어낸 강력한 중력 렌즈를 떠올리기 쉽다. 이 경우 배경 은하의 이미지가 긴 곡선 모양으로 일그러지거나, 아인슈타인의 십자가처럼 위아래, 오른쪽왼쪽, 또는 고리 모양으로 여러 개의 허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강력한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에 딱 사진만 봐도 한눈에 쉽게 중력 렌즈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이런 특정한 하나의 육중한 천체로 인한 강력한 중력 렌즈만 벌어지지는 않는다. 보통은 질량이 더 작은 천체가 우주 공간에 훨씬 많이 퍼져 있다. 이런 가벼운 질량의 천체들은 그 주변의 시공간을 더 미미하게 왜곡한다. 그로 인해 겉으로 봤을 때는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수 % 이내로 미미하게 배경 우주의 빛이 왜곡되는 아주 작은 스케일의 중력 렌즈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이러한 현상을 약한 중력 렌즈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강한 중력 렌즈의 경우 전체 우주의 겨우 0.1%에 불과한 영역에서 벌어진다. 아주 무겁고 거대한 은하단 주변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약한 중력 렌즈는 우주 어디에서나 발생한다. 그래서 오히려 우주 전역에 퍼져 있는 암흑 물질의 분포를 파악하는 데는 약한 중력 렌즈가 훨씬 유용하다.
다만 약한 중력 렌즈는 하나의 거대하고 육중한 천체가 만드는 강력한 중력 렌즈를 보는 게 아니라, 우주 전역에 존재하는 모든 천체가 만들어낸 미미한 시공간의 왜곡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 전역에서 관측되는 많은 수의 시공간 왜곡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꽤 까다로운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구에서 바라보는 시선 방향을 따라 우주 속 질량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그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머리털자리 은하단 주변 우주 공간 곳곳에서 포착한 약한 중력 렌즈 현상을 통해 이 일대의 암흑 물질의 밀도 분포를 파악했다. 그 결과 암흑 물질이 무작위로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처럼 긴 필라멘트를 따라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건 기존에 알려진 우주 거대 구조에서 이야기하는 필라멘트와는 조금 다르다.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는 은하단 규모를 훨씬 넘는 거대한 스케일의 구조다. 이번에 발견된 구조는 은하단 내부까지 이어진 더 작은 암흑 물질 잔가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시뮬레이션은 우주 전역에 퍼져 있던 암흑 물질이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서서히 뭉치고 반죽되면서, 은하단이 반죽되고 우주 거대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잘 재현했다. 이 과정에서 암흑 물질의 필라멘트가 형성되고, 그 필라멘트가 서로 교차하는 매듭이 이어진 영역에서 은하단이 자라난다. 필라멘트는 주변 물질이 매듭 쪽으로 더 빠르게 흘러가면서 모이게 만드는 일종의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은하의 성장을 더 빠르게 촉진한다.
기존의 많은 시뮬레이션은 이렇게 필라멘트가 모여드는 매듭 내부까지, 필라멘트 구조가 꽤 복잡하게 더 이어졌을 거라 예측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관측을 통해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 가지가 은하단 내부까지 이어져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즉 이번에 발견된 은하단 내 필라멘트는 은하단과 은하단 바깥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를 이어주는 연결 통로로 볼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은하단 내 필라멘트 구조도 은하단 바깥까지 이어진 더 거대한 필라멘트 분포와 잘 연결되어 있다.
최근 우주로 올라간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도 바로 이 약한 중력 렌즈의 원리를 이용한다. 이를 통해 100억 광년 이내 우주 전역에 퍼져 있는 암흑 물질의 디테일한 분포 지도를 파악하는 임무를 맡았다. 우주 곳곳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암흑 물질 실타래의 지도를 파악하며, 이 미지의 존재가 대체 어떻게 우주 거대 구조의 진화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거대한 비밀에 한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서다.
이미 우리 우주는 미미한 약한 중력 렌즈로 인해 미세하게 왜곡된 시공간으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그 미세하게 왜곡된 시공간을 더듬어가면서 이 거대한 암흑의 지도를 조금씩 채워나갈 뿐이다. 아직 그 비밀을 밝혀내기까지 한참 남았지만, 이제 암흑 물질 우주의 굵은 가지를 넘어 더 얇은 잔가지의 지도까지 조금씩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3-02164-w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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