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공정거래법 제47조 제1항 각호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동일인 및 그 친족 등 특수관계인(이른바 ‘총수 일가’)이 기업집단 내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 즉 사익편취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으로(이하 ‘사익편취 금지조항’), 2014년 2월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사익편취 금지조항을 도입하기 전에도 계열사나 특수관계인을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는 부당 지원 행위로서 공정거래법에 의해 금지됐다. 이러한 부당 지원 행위 역시 기업집단 내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에서 주로 문제 되는 이슈다. 부당 지원 행위 금지조항은 1996년 12월 30일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도입됐는데, 날짜에서 가늠할 수 있듯 부당 지원 행위 규제는 IMF 사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주도하고 우량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는 호송선단 방식의 경제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무분별한 내부거래로 인해 부실 계열사를 양산하고 과잉투자를 조장한 것이 드러났다. 또한 부실은 소수 계열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기업집단 전체, 나아가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도 영향을 미쳐 동반 부실을 초래했다. 이러한 뼈저린 교훈으로 1996년 12월 30일 공정거래법 개정 시 부당 지원 행위 규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법 제45조 제1항 제9호 가목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상품·용역·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로써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유독 부당 지원 행위에 대해서 위와 같이 법문이 구체적이고, 여러 유형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있는 모습은 부당 지원 행위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에 위기가 닥쳤으니, 앞으로 이를 엄금하겠다는 IMF 사태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2003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 2001헌가25 결정은 부당 지원 행위 규제가 합헌이라고 판시했는데, 이 결정에서 열거하는 규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퇴출해야 할 효율성이 낮은 부실기업이나 한계기업을 계열회사의 형태로 존속케 함으로써 당해 시장에서 경쟁자인 독립기업을 부당하게 배제하거나 잠재적 경쟁자의 신규 시장진입을 억제해 시장의 기능을 저해한다.
둘째, 계열회사 간 지속적인 부당내부거래는 독과점적 이윤을 상호 간에 창출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들의 독점력을 강화함으로써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야기한다. 셋째, 부당내부거래는 우량 계열기업의 핵심역량이 부실 계열기업으로 분산·유출돼 우량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됨에 따라 기업집단 전체가 동반 부실화할 위험을 초래한다. 넷째, 기업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주주, 특히 소액주주와 채권자 등의 이익을 침해한다.
이처럼 공정거래법이 부당내부거래를 금지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내부거래의 비중이 높다. 오죽하면 한국이 조선·자동차·반도체 등 대기업 위주의 제조업은 경쟁력이 높지만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은 없는 이유를 두고 “서비스 분야의 영업 관행이 치열한 경쟁으로 거래처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 물량, 계열사 물량 등 캡티브 마켓, 즉 내부거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어쨌든 공정거래법은 1996년부터 부당내부거래를 금지했는데, 2014년 사익편취 금지조항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부당내부거래 금지조항만으로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제, 즉 총수 일가가 내부거래를 통해 사익을 취득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9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대기업 계열사인 S 사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시가에 비해 낮은 금액으로 발행하고, 이를 총수 일가가 인수하게 함으로써 특수관계인을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과징금 등을 부과했다. 그러나 대법원 2004년 9월 24일 선고 2001두6364 판결은 앞선 공정위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보고 취소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부당내부거래의 요건 중에서 ‘부당하게(부당성)’란 지원 객체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속한 시장에서 경쟁이 저해되거나 경제력이 집중되는 등으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공정거래 저해성)을 의미하고, 변칙적인 부의 세대 간 이전 등을 통한 소유 집중의 직접적인 규제는 부당내부거래 규제의 목적이 아니다.
또한 시장 집중과 관련해서 보면 기업집단 내에서 특수관계인 또는 계열회사 간 지원 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경제력 집중의 폐해는 그로 인해 직접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원을 받은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가 자신이 속한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해하는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폐해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할 때,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에 발행하고 이를 총수 일가가 인수해 부의 세대 간 이전이 가능하고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경제력이 집중될 기반이나 여건이 조성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정만으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부당내부거래의 요건 중 부당성이 충족된다고 볼 수 없다.
이처럼 부당내부거래는 원칙적으로 관련 시장에서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하는 개념이나,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는 공정거래 저해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기업집단이 총수 일가가 설립한 회사에 물량을 몰아줌으로써 총수 일가가 이익을 얻었더라도 그 물량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다면 공정거래 저해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부당내부거래로 규제할 명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부당내부거래로 규제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고, 이런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사익편취 금지조항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위 조항을 도입했더라도 적용의 범위나 대상에 대해선 논란이 적지 않다. 최근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중요한 대법원판결이 선고됐는데, 이는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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