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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산돌이 윤디자인과 경쟁서 승리한 결정적 장면

산돌, 윤디자인그룹 지분 100%를 155억 인수…본질에 집중하지 않으면 위기 찾아와

2024.06.10(Mon) 10:45:03

[비즈한국] 국내 폰트 업계는 타 업계에 비해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2024년은 유독 큰 사건이 많았던 해로 기억될 듯하다. 연초부터 전해진 산돌과 윤디자인그룹(이하 윤디자인)의 경영권 관련 MOU 체결, 5월 산돌 석금호 의장의 별세, 그리고 6월 산돌의 인수 확정 소식이 그것이다. 특히 산돌의 윤디자인 인수는 업계 전체 규모가 작다 보니 큰 이슈가 되지는 못했지만, 폰트 업계 종사자 사이에선 웬만한 대기업의 M&A보다 충격적인 뉴스로 꼽힌다.

 

산돌은 6월 3일 윤디자인 지분 100%를 155억 7000만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1984년 문을 연 산돌과 그로부터 5년 후 설립된 윤디자인은 여러 디자이너가 거쳐가는 양대 산맥이자 산실이었다. 두 회사에서 일했거나 두 회사에서 갈라져 나온 곳에서 일하는 국내 폰트 디자이너의 수를 헤아리면 총량의 과반은 가뿐히 넘는다.

 

산돌은 2014년 클라우드 서비스 ‘산돌구름’​​을 런칭하고 혁신적인 라이선스 정책을 도입하여 우위를 점했다. 반면, 윤디자인은 신서체 개발 부진과 전략적 오판으로 하향세를 탔고, 결국 산돌에 인수되었다. 사진=산돌 홈페이지

 

두 회사는 그간 일반 판매용 서체와 기업 전용 서체라는 두 분야에서 치열한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1990년대 중반, 윤고딕·윤명조와 산돌고딕·산돌명조가 있었다. 1992년 산돌이 제비를 통해 부리를 각지게 마무리한 현대적 명조체를 제시하자 윤디자인은 몇 년 후 청기와를 내놓았다. 2010년대 초반에는 야심차게 준비한 본문용 폰트 산돌네오시리즈와 윤 700시리즈가 맞붙는 그림이 펼쳐졌다. 제품 출시에서 서로가 상대방을 의식했다는 명시적 증거는 없으나, 큰 줄기를 보면 발전 양상이 비슷하게 이어져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둘의 35년 경쟁은 한쪽이 다른 한쪽 산하로 편입되는 그림으로 일단 끝을 맺었다. 필자는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짚는다. 새로운 패러다임 선점 실패와 신서체 개발 부진이 그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디자인은 사용자가 파일을 직접 구매하지 않고 월간 결제만으로 간편하게 폰트를 쓸 수 있도록 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윤폰트매니저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산돌 역시 얼마 후 산돌구름이라는 동일한 성격의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러나 산돌구름이 쉬운 이름과 산뜻한 블루 톤 인터페이스, 공격적인 홍보를 통해 인지도 우위를 가져가는 동안 윤디자인 서비스의 인지도는 높아지지 않았다. 이는 해가 지남에 따라 바뀌기는커녕 오히려 고착화됐다. 라이선스 문제도 있다. 기존에는 폰트를 구입하면 1차 라이선스, 2차 라이선스 등 사용 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명시된 사용처를 벗어나고 싶으면 별도 문의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산돌은 2020년 한 번 구독하면 사용 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라이선스 구분을 아예 없애버렸다. 구매한 상품을 심리적 제약 없이 다양한 곳에 쓰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은 당연히 환호했는데 윤디자인은 여기서도 이슈 선점에 실패했다.

 

두 번째는 신서체 개발 부진이다. 산돌이 기업 전용 서체 프로젝트를 소화하면서도 신서체를 공격적으로 추가하는 동안 윤디자인은 기업 전용 서체에만 몰두할 뿐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이는 최고경영진의 오판으로 인한 것이었다. 윤디자인 경영진은 우수한 실무진을 데리고 ‘신서체’ 하나만 연구해도 모자랄 시간에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창안하거나 다른 분야에 이것저것 손을 대는 외도에만 몰두했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서 회사를 장기적으로 책임질 새로운 먹거리를 캐낸 것도 아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 회사는 점진적인 하향세를 탔다.

 

두 회사의 기업 문화 상 윤디자인 브랜드의 완전 소멸 가능성은 낮다. 윤서체는 산돌 내 레이블로 존속하면서 Yoon 이니셜을 달고 계속 출시될 가능성이 크다. 1위 업체가 2위를 인수하는 구도, 그리고 인수 후에도 각자의 브랜드로 신제품이 나오는 상황은 1998년 현대자동차의 기아그룹 인수를 떠올리게 한다. 윤디자인은 수십 년간 쌓아온 우수한 폰트와 인적 자산을 지닌 조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초반 혼란을 딛고 막대한 시너지를 낸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이번 발표는 기업이든 사람이든 본질을 벗어나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는 영원한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폰트가 아니더라도 자사의 핵심 사업 분야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언제든지 타사에 흡수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설립 40년 만에 한국 폰트 시장 1위에 등극한 산돌의 다음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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