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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100일, '의정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의료계 평행선 뒤로 환자와 가족들 고통…재정난 빠진 공공의료 '심각한 타격'

2024.06.07(Fri) 17:56:18

[비즈한국] “기념일도 아니고 무슨 의미는 없다. 환자들은 고통이라는 기나긴 터널 안에서 신음하며 희생만을 강요당한, 그 가족들은 일상의 망가짐 속에 갇혀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100일이 되던 날 이 같은 입장문을 내며 의견 표명이 곤혹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들의 절절한 호소에도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며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100일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이 변했는지 되짚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휴진과 의대 정원 증원 반대 이유를 알리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의사 노조 결성’ 다시 수면 위로 

 

지난 4월 의료계 안팎에서는 노동조합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단체행동권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정부와 소통할 단일 창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전공의 사이에서는 ‘젊은 의사노조’를 만들어 한국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산하에 들어가자는 구체적인 의견도 제기됐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 정진행 전 서울대 의대 비대위원장 등은 모두 노조 설립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범의료계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의료계의 통일된 입장을 내려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노조 설립과 관련한 뚜렷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앞서 전국의사노조 설립이 무산된 것과 같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협 간 갈등이 지속되는 점도 걸림돌이다. 현재 범의료계 협의체에는 의협, 대한의학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참여하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은 빠졌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앞서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의사노조 설립을 임기 중 역점 사업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아직 그렇다 할 힘을 지닌 노조가 없다. 영국에서는 전공의 노조가 작년부터 12번이나 파업을 했다. 노동 조건을 내건 파업은 당연한 권리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노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왜 의사 노조 설립을 이야기하지 않는지도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국회로 간 의료계 출신 인사들, 간호법 제정은 불발

 

제22대 총선에서는 총 12명의 보건의료인이 당선됐다. 의사 출신은 △김선민(조국혁신당·비례) △김윤(더불어민주연합·비례) △서명옥(국민의힘·서울 강남갑) △안철수(국민의힘·경기 1성남분당갑) △이주영(개혁신당·비례) △인요한(국민의미래·비례) △차지호(더불어민주당·경기 오산) △한지아(국민의미래·비례) 등 8명이다. 간호사 출신으로는 이수진(더불어민주당·경기 성남중원), 전종덕(더불어민주연합·비례) 등 2명, 약사 출신으로는 서영석(더불어민주당·경기 부천갑) 1명, 치과의사 출신으로는 전현희(더불어민주당·서울 중구성동갑) 1명이 당선됐다.

 

이 가운데 안철수·인요한·차지호·전현희 의원을 제외한 8명의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비즈한국은 지난 4월 간호계 출신 인사인 이수진·전종덕 의원에 의료계 현안을 질의한 바 있다. 당시 두 의원은 △의대 정원 증원 △비대면 진료 확대 △간호법 제정 △PA 간호사 법제화 △비대면 약 배송 △성분명 처방 △간병 국가책임제와 관련해 동일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비대면 진료 확대와 비대면 약 배송을 제외한 항목에 찬성했다. 두 사안과 관련해서는 “비대면 진료는 반드시 필요한 환자 위주로 진행돼야 하며, 비대면 약 배송은 오남용 등 환자 안전 우려가 있다”고 답변했다.

 

21대 국회에서 간호법이 폐기되자 간호계는 정치권에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했다. 지난해 4월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던 간호법이 다시 발의됐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채 상병 특검법을 놓고 여야가 갈등해서다. ​전공의 집단이탈 직후부터 의료공백을 메우면서 과로에 시달리던 간호계는 최근에는 병원별 재정난에 강제로 무급휴가 중이다. 병원이 예정된 신규 간호사 모집 공고를 올리지 않아 발령을 못 받는 사례도 나타난다. 이 밖에 비인기과의 경우 이전부터 전공의가 없어 과로에 시달렸으며, 보상 체계가 의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간호계의 주장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계 출신 인사 2명만 노력한다고 간호법이 제정되는 것이 아니다. 21대에도 두 분이나 있었지만 당론으로 채택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는 정부도 의료공백이라는 상황을 겪으면서 상황이 달라졌고, 야당은 총선 공약으로, 여당은 당선인 연찬회에서 간호사법을 1호 법안으로 명시했다. 정부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이 언제 끝날지 몰라 또 불법에 내몰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여야는 22대 국회 개원 즉시 간호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보의 차출에 고령인구 지역 의료 ‘취약’

 

정부는 최근까지 공보의와 군의관 총 547명을 주요 상급종합병원과 권역응급의료센터, 공공의료기관 등에 파견했다. 군과 지역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온 가운데, 고령 인구가 많은 10개 지역 중 7곳에서 공보의가 파견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20개 지역으로 확대하면 8곳으로 늘었다. 특히 보건지소는 대개 공보의 1명으로 돌아가다 보니 아예 진료를 못 하거나, 연장 진료를 중단하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한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실제로 의료취약지에 배치된 공보의는 수도권과 대도시 대형병원 파견에 부정적이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가 최근 공보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파견 공보의 212명 중 168명(79.2%)은 이러한 파견을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복수 응답 결과에서 ‘지역 의료 공백 우려’(86.4%), ‘낮은 유효성에 대한 의구심’(70.4%), ‘공중보건의사의 업무 과중화’(69.8%)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 밖에 이들은 파견 기관에 도움이 안 되며, 수당 미지급 및 지연 문제 등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성환 대공협 회장은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검체를 이송하거나 혈압을 재는 등 의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부분을 맡겨 ‘전공의 대체’라는 공보의 파견 취지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혹은 척수액을 뽑아내는 등 교육 과정에서 배우지 못한 일을 맡기는 등 업무 범위를 넘어선 부분도 확인됐다. 정부는 민사 책임과 관련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병원별 재량에 맡기고 있다. 수당 문제도 지급 기간을 명시하지 않아 문제가 컸다. 지급이 미뤄졌고, 중수본에서도 예비비 편성이 지연됐다”고 말했다.​


#공공 의료기관 재정난 ‘심각’

 

의료공백이 지속되면서 민간병원과 공공병원 모두 재정난을 겪고 있다. 공공병원은 민간병원과 달리 코로나19 당시 전담병상을 운영한 후 회복이 안 돼 재정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지역 거점 공공병원 35곳의 손익계산서를 분석한 결과, 3년 사이 의료이익과 당기순이익, 의료외수익 등이 모두 감소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병원 재정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을 받아온 만큼 정부가 공공의료에 소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 거점 공공병원 알리미’에 공시된 공공병원 35곳의 손익계산서를 분석한 결과, 의료수익에서 의료비용을 차감한 비용인 ‘의료이익’이 3년 연속 감소했다. 의료이익 합계 평균은 2021년 -128억 1600만 원, 2022년 -156억 3400만 원, 2023년 -164억 3300만 원으로 줄었다. 2021년 대비 2023년 28.22% 감소한 것이다. 의료이익과 의료외수익을 포함한 당기순이익은 감소세를 보이다 2023년 적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원주의료원과 울진군의료원 2곳을 제외한 33곳은 모두 적자였다.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높은 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3년 사이 의료수익이 낮은 서울의료원, 성남시의료원, 부산의료원을 살펴보면 평균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2021년 86.65%, 2022년 121.54%, 2023년 115.62%다. 이를 두고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진료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한다. 기계는 필요하면 다른 병원 것을 빌려 쓸 수도 있지만 사람은 그게 안 되므로 인건비 비중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조승연 원장은 “의료 자체는 원래 돈을 남길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미국같이 의료비가 비싼 나라도 의료분야에서 돈이 남지는 않는다. 제약산업이나 산학협력 등을 통해서 돈을 남긴다. 우리나라는 불필요한 검사나 수술 등을 하면서 돈을 마련해 왔다”며 “공공병원도 공단과 같이 예산제로 운영해야 한다. 수입보다 중요한 것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이다. 공공의료도 동일하게 그렇게 가야지 아니면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민간병원처럼 쓸데없는 진료를 하면서 돈을 벌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짚었다.

지난 6일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17일부터 전체 휴진을 결의했다. 의대교수 단체도 의협의 투표 결과에 따라 전체 휴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오늘 자정까지 집단행동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의정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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