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건설사와 조합 분쟁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건설사업관리(CM)를 도입하는 정비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 정비사업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주민들 대신 전문가 집단에 사업 관리를 맡겨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낮추고, 공사 품질은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양3차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 3일 건설사업관리(CM) 용역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를 냈다. 시공사 선정과 설계 변경, 본계약 체결 등 착공 전까지 정비사업 업무 전반을 지원할 업체를 찾는 내용이다. 이 단지는 지난달 14일 기존 252세대인 아파트를 507세대로 재건축하는 내용으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현재 시공사 선정 절차를 앞둔 상태다.
양재호 한양3차아파트 재건축조합장은 “조합의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고자 CM 업체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 입찰 참여 건설사의 제안 내용 분석, 시공사 선정 이후 설계 변경이나 본계약 체결 업무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최근 시공사와 문제가 되는 공사비 분쟁을 최대한 방지하려면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최근 3년간 용역 계약 20건으로 증가
CM(Construction Management)은 발주자가 건설사업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건설엔지니어링(설계)업체에 사업 관리 업무 전부나 일부를 위탁하는 방법을 말한다. 전문가 집단에 사업 관리를 맡겨 공사 품질을 높이고 공사비와 공사 기간은 줄이려는 목적이다. 건설산업기본법이 규정하는 CM 업무 영역은 공사 기획, 타당성조사, 분석, 설계, 조달, 계약, 시공관리, 감리, 평가 및 사후관리 등 건설 공사 생애 전반에 걸친다.
일찍이 대규모 공공공사에서는 CM 도입을 의무화했다.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라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총공사비 200억 원 이상 건설공사는 건설엔지니어링업체가 CM을 맡도록 해야 한다. 200억 원 미만 공공공사에서도 설계·시공 난도가 높거나 발주청 기술인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CM을 도입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받아 공사 품질을 제대로 확보한다는 취지다.
반면 민간공사 CM 도입은 사업시행자 자율에 맡긴다. 현행법상 민간이 시행하는 공사에서 CM 도입을 의무화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정비사업 공공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 시공사 선정기준을 통해 조합이 시공사 선정 전에 건설공사와 관련한 설계 경제성 검토, 입찰관리, 계약관리, 시공관리 등 원활한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엔지니어링업체에 CM업무 등을 자문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CM을 도입하는 정비사업장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이 한미글로벌과 CM용역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 3월 송파구 잠실우성아파트(건원엔지니어링), 4월 성북구 장위4구역(건원엔지니어링), 5월 송파구 장미1·2·3차아파트(무영CM), 대림가락아파트(HNC건설연구소)가 차례로 CM 용역 계약을 맺었다. 현재 강서구 방화6구역(무영CM)과 용산구 한강맨션아파트도 CM 업체 선정 입찰을 마치고 계약을 앞두고 있다.
CM 수주 통계에서도 정비사업장 실적이 늘고 있다. 비즈한국이 한국CM협회 CM능력평가 업체별 수주 내역을 분석한 결과,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포함)조합이 CM 용역 계약을 맺은 사례는 2014년~2016년 5건에서 2017년~2019년 16건, 2020년~2022년 20건으로 증가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3년간 계약 중 계약 금액이 10억 원을 초과하는 CM 용역은 13건(65%)으로 2017년~2019년 8건(50%)보다 크게 늘었다.
#공사비·기간 절감 기대 vs 평균 용역비 15억 ‘부담’
최근 정비사업장 CM 도입은 공사비와 공사기간 절감, 품질 향상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장미1·2·3차아파트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2022년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아파트 공사 중단 사태처럼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 시공사가 갈등해 사업 일정이 밀리거나 중단이 장기화되면 사업비가 늘어 조합원 분담금이 치솟고 분양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입주 지연까지 이어질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설계 단계에 건설사업관리용역을 수행할 설계 CM 협력업체를 선정했다”고 전했다.
한남4구역 재개발조합 관계자도 “시공사와의 공사비 분쟁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고, 차별화된 품질을 도출하기 위해 설계 단계에서 CM 업체를 선정하게 됐다. CM 업체는 현재 설계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해 향후 설계 변경 및 분쟁 요소를 줄이고,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 요청을 할 경우 이를 전문적으로 검토하는 역할 등을 수행하게 된다. 당장 10월 말 예정된 시공사 선정에서도 조합이 건설사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도록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CM 도입으로 성과를 거둔 정비사업장도 있다. 2023년 준공을 마친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는 시공 단계에서 무영CM과 CM 용역 계약을 맺은 뒤 시공사와 공사비 증액 협상에서 증액 규모를 348억 원가량 낮췄다. 2021년 입주한 경기 과천시 과천주공6단지의 경우 시공사와 공사 단계에서 품질 기준을 두고 다투다 해안건축과 CM 계약을 맺고 공사비 증액 없이 조경 품질과 마감재 등을 개선했다.
다만 걸림돌은 비용이다. CM 용역 비용은 과업 범위에 따라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한다. 앞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개년간 정비사업장이 체결한 CM 용역 계약 20건의 평균 계약 금액은 15억 원 수준이었다. CM 도입으로 절감할 수 있는 공사비와 품질 향상 비용 등을 고려하면 이 같은 용역비가 비싸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공사비만 수조 원에 달하는 사업에서 CM 도입으로 절감하는 공사비는 용역비 수배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CM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정비사업 조합원들은 건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나 조직을 채워 건설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최근 정비사업 현장에서 효율적인 사업 관리를 위해 CM 도입을 검토하는 조합이 늘었다. CM 도입이 설계 검토나 공사비 절감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조합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어 앞으로 정비사업에서 건설사업관리 도입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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