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무산됐던 국민연금 개혁이 22대 국회로 처리가 넘어왔다. 여야는 지난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논의했지만, 소득대체율 2%포인트 차이(국민의힘 43%, 더불어민주당 45%)를 극복하지 못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미뤄지면서 연금 자체 고갈뿐 아니라 이를 메꿔야 할 정부의 부담도 커지게 됐다. 정부가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에 지원해야 하는 의무지출이 지난해 정부 총지출의 절반을 넘어선 데 이어 8년 뒤에는 60% 이상을 자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의무지출이 증가하면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결국 연구·개발(R&D) 등에 쓰는 재량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어 국가 경쟁력에 타격을 입게 된다.
정치권은 2022년 10월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첫 번째 회의를 가진 뒤 1년 7개월 간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진행했다. 여야는 고령화·저출생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연금개혁 시급성에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모수개혁·구조개혁 동시 추진 여부, 모수개혁 방식 등을 놓고 입씨름만 벌이다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연계 등 구조개혁에 힘을 실었고, 더불어민주당은 소득대체율 상향 등 모수개혁을 강조해왔다. 모수개혁에서 국민의힘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민주당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를 내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소득대체율을 놓고 이견을 좁히나 싶었지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모수개혁·구조개혁 동시 추진을 주장하면서 21대 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됐다. 여야가 22대 국회에서 다루자는데 의견을 모았지만 22대 국회 시작과 함께 정쟁이 벌어지면서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국민연금 개혁이 미뤄질수록 재정 부담이 늘면서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재정지출(656조 9000억 원) 중에서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에 지원하는 금액은 77조 6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이 43조 4000억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공적연금 지출은 2027년에는 96조 원으로 100조 원에 육박하게 된다. 국회예산정책처 추정으로는 공적연금 지출은 2028년에 112조 4000억 원을 기록한 뒤 계속 늘어나 2032년에는 149조 5000억 원으로 150조 원을 바라보게 된다. 8년 만에 올해보다 공적연금 지출이 2배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공적연금 지출이 늘면서 이를 포함한 의무지출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올해 법으로 정해져 정부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은 지난 2022년 303조 2000억 원으로 3000조 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348조 2000억 원까지 불어나며 8년 전인 2015년(172조 5000억 원)의 2배가 됐다. 이러한 의무지출은 2027년에는 413조 5000억 원까지 증가하며 400조 원마저 넘게 된다. 또 2030년에는 503조 4000억 원으로 500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23년에는 557조 3000억 원으로 550조 원 벽마저 뛰어넘을 전망이다.
의무지출 증가에 총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하게 커진다. 2022년에는 총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9.9%였지만, 2023년에 53.3%로 50%대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총지출 대비 의무지출 비중은 갈수록 늘다가 2032년이 되면 60.5%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됐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32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은 4.7%인데 반해 의무지출 증가율은 6.3%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러한 의무지출 증가율 상승에는 공적연금 증가(연평균 증가율 8.7%)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처럼 총지출에서 의무지출 비중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정부가 R&D나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에 쓸 수 있는 재량지출이 줄어들게 된다. 재량지출 비중은 2023년에 46.7%로 50% 아래로 내려온 데 이어, 2032년에는 39.5%를 기록하며 40%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주요 사업이나 정책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갈수록 빠듯해지는 것이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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