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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안상수 개인전 '홀려라'의 'ㅎ'에 숨겨진 의미

6월 초까지 부산 해운대 OKNP서 개최…디지털 서체를 순수 예술로 승화해 경계 무너뜨린 시도

2024.05.31(Fri) 16:32:21

[비즈한국]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안상수의 개인전 ‘홀려라’가 5월부터 6월 초까지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OKNP에서 열린다. 작가가 작품을 대중에 선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상업 화랑에서는 첫 시도라고 한다. 광고 대행사 디자이너, 잡지 아트 디렉터로 출발하여 디자인 스튜디오(안그라픽스)와 디자인 대안학교(PaTI) 설립에 이르기까지 시각 디자인이 가질 수 있는 여러 표정을 다양한 입장에서 탐구해 온 작가는 ‘문자’가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안상수의 개인전 ‘홀려라’가 부산 해운대 OKNP에서 5월부터 6월 초까지 열린다. 사진=한동훈 제공

 

그는 1985년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안상수체를 통해 네모틀 - 전통적인 한글 폰트는 모든 온자가 같은 크기의 네모틀 안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네모꼴’ 혹은 ‘네모틀’로 불린다 - 에서 벗어난 탈네모꼴 한글 폰트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실험했으며, 동시에 1세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와 꾸준히 교류하면서 오랜 시간 확립되어 온 명조체, 고딕체의 전통적 미감을 탐구하려는 정신도 놓지 않았다. 그의 영향을 받은 연구 기관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는 현재 과거의 가치 있는 폰트를 복원・보완하여 출시하는 동시에 한글을 자소 단위로 해체한 파격적인 폰트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글자 디자인에 관한 그의 행보는 한마디로 입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홀려라’ 연작은 그 입체성에 또 하나의 축을 더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전통 민화에서 볼 수 있는 문자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 작품들은 글자를 해체하고 재조합해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초대형 캔버스 위에 흐르듯 어우러진 흑연 글자들은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 단지 외곽선의 집합으로 존재한다. 이로써 이미지 그 자체로 승화되며 흑백이 지닌 고유의 미를 드러낸다. 온몸을 사용해야 하는 제작 과정은 작품 앞에 선 관람객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압도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작품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한글 자소 ‘ㅎ’이 중요 요소로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 ‘ㅎ’의 특성은 디지털 폰트에 가깝다. 캔버스에 최종적으로 구현되는 방법은 수작업에 의한 것일지라도 원래 디자인은 컴퓨터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이것은 순수예술이 디지털 서체 디자인이란 영역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명조체, 고딕체의 미감을 탐구하면서도 탈네모틀 한글 폰트를 실험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사진=한동훈 제공

 

업계에 오래 종사한 원로 그래픽 디자이너 중 회화 연작 시리즈를 발표하는 등 순수예술로 영역을 넓히는 작가는 드물지 않다. 그러나 본래 디지털로 설계된 글자를 전면에 내세운 시도는 거의 없었다. 그간 글자를 전면에 내세운 예술 전시는 주로 서예나 이를 응용한 캘리그래피에 국한된 것이었다. 컴퓨터를 써서 벡터 라인으로 드로잉한 글자를 소재로 한 작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작가는 디자인과 순수예술을 넘나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여러 방면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단순 도형에 가까운 한글은 세계 어느 문화권의 글자보다도 기하학적인 특성을 지녔다. 이는 어느 방향이든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번 전시가 무너뜨린 틈을 타고 디지털로 설계된 글자가 작품 전면에 등장하는 시도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현업에 종사하는 다른 한글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작품도 기다려진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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