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독특한 감성의 드라마다. ‘남다른 능력을 지녔지만 아무도 구하지 못했던 남자가 마침내 운명의 그녀를 구해내는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라고 되어 있는 드라마의 설명만으로는 이 드라마의 감성을 가늠할 수 없다. 판타지 로맨스지만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하이브리드 가족극 같은 느낌도 난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집안 대대로 초능력을 물려받는 복씨 집안과 복씨 집안의 부를 탐하여 사기 결혼으로 그들의 것을 훔치려 드는 사기꾼 가족을 보여준다. 두 가족 모두 면면이 화려(?)하다. 먼저 복씨 집안 가장인 복만흠(고두심)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몽을 꾼다. 복만흠의 딸 복동희(수현)는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능력을 지녔고, 아들 복귀주(장기용)는 행복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리프 능력이 있다. 복귀주의 딸 복이나(박소이)는 상대방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독심술을 지녔다. 가족을 정성스레 돌보는 복만흠의 남편이자 동희, 귀주의 아버지인 엄순구(오만석)는 따스한 마음씨에도 불구하고 초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존재감이 떨어진다.
반전은 이 능력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는 것. 잠을 자야 꿈을 꾸는 복만흠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하늘을 날아야 하는 복동희는 비만으로 몸이 무거워져 더 이상 날지 못하며, 아내를 사고로 잃은 복귀주는 우울증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있는 행복한 과거가 없다. 아직 가족에게 자신의 초능력을 밝히지 않은 복이나는 독심술로 인해 많은 상처를 안고 대인기피증으로 스마트폰에만 매달려 있다. 게다가 고도근시라 아주 가까이에서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불면증, 비만, 우울증, 대인기피증. 복이나의 표현대로 모두 현대인의 질병이라 할 만하다.
복만흠의 능력으로 로또나 주식, 코인 등에 투자하며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한 복씨 집안이지만 더 이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복씨 집안은 눈에 띄게 기운다. 그 와중 남아 있는 500억 가치의 건물을 노리고 뛰어든 게 도다해(천우희) 가족. 열일곱에 혼자가 된 도다해는 자신의 불행을 팔면서 생을 영위한 인물. 도다해 아버지의 빚을 빌미로 도다해의 양엄마가 되어 착실하게 빚을 받아내는 전과자 출신 백일홍(김금순), 사기극에서 주연배우 맡은 도다해를 지원사격하는 역할인 여동생 격의 그레이스(류아벨), 묵묵하게 백일홍을 보필하는 삼촌 격의 노형태(최광록)가 가족 없는 도다해의 유사 가족이다. 도다해는 복귀주를 세 번째 남편으로 맞아 500억 건물을 해먹은 뒤 이들 가족과의 관계를 청산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도다해가 복씨 집안에 일으키는 변화. 과거로 돌아가지 못했던 귀주는 어쩐 일인지 도다해가 있는 과거로만 돌아가게 된다. 심지어 돌아간 과거에서 누구에도 보이지도 닿지도 못해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도 못 미쳤던 귀주인데, 도다해와의 과거에선 서로를 보고 느끼고 닿는다.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자신의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는 경험도 얻는다. 전 며느리였던 세연(정민아)에 관해서는 어떤 꿈도 꾸지 못했던 복만흠은 도다해를 만나고부터는 도다해와 연관된 꿈만 꾸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지내던 복이나도 도다해에게는 마음을 연다.
누구에게나 ‘그때로 돌아간다면’ 하는 후회가 있는 만큼, 주인공 복귀주의 타임리프 능력은 이 드라마의 핵심으로 꼽힌다. 과거를 바꿀 수 없었던 그의 능력은 그저 허무한 것으로 치부되었으나 운명의 사람인 도다해를 만나면서 복귀주의 능력은 점점 빛을 발한다. “이번에도 내가 다 망쳐 버리면요?”라며 도다해와의 사랑을 망설이는 귀주에게 아버지 엄순구가 하는 말을 보라. “내가 장담하는데 넌 틀림없이 이번에도 망쳐 버릴 거야. 하지만 도다해하고의 과거는 돌이키는 게 가능하잖아. 돌아가서 되돌리면 되잖아. 뒤늦게라도 사과하고, 잘못은 바로잡고. 도다해랑은 마음껏 망치고 바보짓 해도 돼. 얼마든지 돌이키고 고치고 그렇게 사랑하면 돼.”
모든 로맨스가 그렇겠지만 복귀주와 도다해의 사랑이 서로를 구원하는 일명 ‘쌍방구원서사’라는 점도 이 드라마의 핵심.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선재 업고 튀어’의 류선재와 임솔처럼,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복귀주와 도다해도 화재 현장에서부터 십수 년의 시간을 오가며 서로에게 한순간 위로가 되어주고 서로를 위무하며 결국 서로를 구원하는 것에 이를 것이다. “내가 구할게요. 어떻게든 그 시간에서 도다해를 찾을게요. 찾아서 구할게요”라고 말하는 복귀주처럼, 타임리프 능력이 없는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그를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구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도 마찬가지. 가족이든 친구든 우리가 누군가를 아끼고 구하고 싶다는 마음을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지긋이 짚어낸다. 사기꾼 가족의 그레이스가 복동희에게 도움을 받고 그의 자존감에 감명을 받는 것처럼, 복만흠이 백일홍의 손길에 단잠을 자게 되는 것처럼. 초능력을 잃은 것 외에도 가족 내에 불통의 아이콘인 복만흠과 그에게 처절한 무시를 받는 엄순구의 모습 등 문제가 많은 복씨 가족이 도다해의 유사 가족인 사기꾼 가족과 얼마나 얽히게 될지, 그로 인해 어떤 변화를 얻게 될지, 복귀주와 도다해의 로맨스 외에도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 사기꾼에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는 사채업자이긴 하지만 거짓일지언정 도다해에게 기묘한 모정을 표현하는 백일홍이 도다해와의 관계를 어떻게 매듭지을지도 궁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눈에 띄는 요소요소들이 많다. 신선한 소재와 독특한 스토리도, 과거에 돌아간 복귀주와 도다해만 컬러로 표현하는 모습 등 세련된 영상미도, 배우들의 연기도 눈에 띄지만 이 드라마의 톤을 완성시키는 건 음악에 있지 않나 싶다. 뮤지션 정재형이 총괄 음악감독을 맡았는데, 일렉트로닉, 재즈, 클래식 등 다채로운 사운드를 펼쳐 놓으면서도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통일된 느낌이 돋보인다. 이승열이 부른 ‘라퓨타’, 이소라가 부른 ‘바라 봄’, 소수빈이 부른 ‘너와 걷는 계절’ 등 삽입곡도 먹먹하게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개인적으로 ‘얼렁뚱땅 흥신소’ 이후 가장 OST에 귀 기울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재형의 첫 드라마 음악감독 작품이라는데, 앞으로의 드라마 작업도 기대하게 된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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