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프랑스 파리의 밤을 한국 스타트업이 화려하게 장식했다. 지난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파리에서 유럽 최대 기술 축제인 ‘비바테크(VIVA Technology 2024)’가 열렸다. 작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한 데 이어 올해도 많은 한국 기관과 기업이 비바테크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은 K-스타트업 관을 운영하며 AI,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분야의 유망한 창업기업 17개사를 유럽 시장에 알렸다. 경기도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KIC 유럽은 경기도 DX 존에서 12개의 경기도 혁신 기술 기업을 소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인천테크노파크,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통합한국관을 운영하며 20개사의 부스를 마련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한불상공회의소, 카이스트 등과 협업해 5개 사의 패션 및 디자인 분야 혁신 기업을 소개했다.
개별적으로 참가하거나 비바테크가 직접 초청한 기업까지 감안한다면 약 60개의 한국 기업이 비바테크에 참여한 셈이다.
올해 비바테크를 향한 세계의 관심도 뜨거웠다.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등 글로벌 인사가 기조연설을 했고, 160여 개 국가의 16만 5000명이 방문했으며, 1만 3000개 이상의 기업이 비바테크에 참여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무엇보다 필자가 참여한 ‘K-스타트업 나이트 인 파리(K-Startup Night in Paris)’ 행사의 생생한 분위기를 담아보려 한다. 한국이 유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유럽이 한국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현장 전문가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오갔기 때문이다.
#유럽 진출하려는 K-스타트업 위한 행사
5월 24일 저녁에는 파리 마마스셸터호텔(Mama’s Shelter Hotel)에서 K-스타트업 나이트 인 파리(K-Startup Night in Paris) 행사가 열렸다. K-스타트업센터 파리, IBK창공, 코트라, 인천테크노파크,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프랑스 파리 액셀러레이터인 임펄스 파트너즈(Impulse Partners)가 협력해 한국과 유럽 혁신생태계의 교류를 꾀하는 자리였다.
행사는 스타트업 데모데이, 스타트업 진출전략 세미나, 패널토크, 네트워킹 리셉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한국 기업 25개 사를 포함해 프랑스 외교부 관계자, 에어버스(Airbus) 기술 담당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해 교류하는 열띤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패널토크에서는 ‘유럽 시장으로 확장하는 한국 스타트업을 위한 전략’이라는 주제로 루에랑(Lou et Lang)의 김직 대표, 화이트 앤 케이스 로펌(White & Case LLP Law Firm)의 김예람 변호사, 그리고 필자가 참석해 한국과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담을 나눴다.
루에랑은 2015년 프랑스에 진출한 K-푸드 스타트업으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슈퍼마켓 체인 까르푸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2023년 약 3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유럽 진출에 성공한 한국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화이트 앤 케이스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미국계 다국적 대형 로펌이다. 1901년 뉴욕에 처음 문을 열었고, 현재 전 세계에 44개 사무소를 두고 있다. 김예람 변호사는 화이트 앤 케이스 파리에 근무하면서 법률 전문가로서 한국 기업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필자는 유럽과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를 연결하고, 특히 독일 진출을 계획하는 한국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123팩토리의 대표로 그간 다양한 스타트업의 진출 사례와 독일 시장에 대한 전체적인 스케치를 전달했다.
#지금 유럽은 한국 스타트업이 ‘노 저어야’ 할 때
패널토크는 한국 스타트업이 유럽에 진출할 때 고려할 다양한 사항을 유럽에서 직접 창업해본 창업자와 법률 전문가, 이를 돕는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패널토크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재 한국 콘텐츠와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한국 기업에게는 물이 들어오고 노를 저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먼저 김직 루에랑 대표는 프랑스에서 직접 창업하고 10년 동안 고객을 만나면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무모함’이다. 익숙한 한국 기업과의 경쟁이 아니라 프랑스 기업과 경쟁하며 현지 고객을 직접 만나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10년 전 회사를 시작했을 때는 현지인들이 한국과 한국 제품조차 잘 몰랐기 때문에 시장 데이터가 없었다. 없는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K푸드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믿음으로 시장을 뚫고 다녔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하지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전문가 조력의 중요성도 이야기했다. “지금은 훨씬 회사가 성장하고 시장 환경도 나아졌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유럽 진출을 고민하는 한국 스타트업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현지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행정, 서류작업, 계약이다. 이 부분은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접 해볼까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법률 전문가에게 맡겼더라면 시행착오가 더 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국과 유럽의 근로 환경이나 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인사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을 창업하면 대표는 무조건 소송 당한다는 마음을 갖고서야 초반의 마음고생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러한 문제에 흔들리지 말고 어떻게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잘 해결할지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에너지와 비용이 더 적게 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버티기’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더 쉬운 길, 더 빠른 길을 선택하고자 했지만, 돌아보면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매번 자기 검증을 해나가며 우선은 버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 사람들은 기업의 지속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시장에 신뢰를 주고 얼마나 살아남는지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버티기’가 정말 중요한 요소다.” 무엇보다 이제는 한국 스타트업이 유럽에 진출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프랑스에서 영어로 말하면 소통이 안 되거나 오히려 무시를 당했는데, 이제는 영어를 쓰는 것이 교양 있는 것, 글로벌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프랑스에서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느낀다.”
김예람 화이트 앤 케이스 변호사도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에 긍정적인 의견을 보탰다. 김 변호사는 “3~4년 전부터 마크롱 정부에서 스타트업 육성을 집중 과제로 지정해 지원을 매우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을 위한 세법을 별도로 마련해 생태계가 만들어져 나가는 환경이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개인(엔젤투자)의 경우 최대 25%까지 세금 환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 오래 산 그는 지금이 한국 기업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 맞는 것 같다며 “좋은 사람을 만나서 파도를 잘 타는 것이 중요하고, 현지에 파트너와 상주할 수 있는 직원이 있어야 빠르게 고객과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기본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최소 3~5년에서는 버티는 것이 신뢰 구축의 첫 단계”임을 강조했다. 프랑스 시장의 장점은 “프랑스 규제가 유럽 법적 규제와 동일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프랑스에 진입하는 것은 유럽 전체에 진입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잘 생각하고 활용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가 프랑스 스타트업 환경과 다른 점을 소개하며, 같은 유럽이라도 진출 전략이 세부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프랑스는 스타트업의 약 50%가 파리에 집중된 반면 독일은 기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전통 산업과 연계해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달했다. 이를테면 뮌헨과 바이에른 지역은 자동차 산업, 함부르크는 무역과 미디어, 프랑크푸르트는 금융산업이 발달했다. 상대적으로 베를린은 기존 전통 산업이 없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중심의 핀테크, 디지털화 관련 솔루션의 SaaS 기업 등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또 하나 프랑스와 다른 독일의 특징은 70%의 스타트업이 B2B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것. 특히 베를린, 뮌헨 등에서 시작한 독일의 유니콘 스타트업들은 당연히 유럽 시장에 동시 진출을 고려하고, 이후 바로 미국 시장까지 확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모빌리티, 에너지, 헬스, 바이오, 의료기기 등 독일이 기존에 우위를 점한 산업 분야의 경우 스타트업을 창업해도 세계 시장에서 ‘메이드 인 독일(Made in Germany)’의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이다.
디지털화가 느린 독일은 한국 기업에는 미지의 땅이자 도전의 땅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이 잘하지만 유럽이 못하는 것에 주목해 비즈니스모델을 키운다면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패널토론에서는 글로벌 진출 시 미국, 중국이 아니라 유럽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나누었다. 여기에서는 ‘한국에는 없지만 유럽에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독일에는 디지털 헬스 치료기기를 의료보험 체계에서 인정하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치료기기 보상체계로 불리는 디가(DiGA) 제도가 있다. 2019년 12월 독일 공공보험에서 보상하는 디지털 치료기기의 요건, 처방, 보상 등을 정하고 이를 의료보험에서 포용했다. 디지털 치료기기를 의료보험 제도에서 인정한 최초의 사례로, 이후 프랑스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유럽은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만큼은 가장 혁신적이다. 따라서 이 부문의 한국 스타트업은 글로벌 진출 시 유럽이 제일 먼저 고려해볼 만한 시장이다.
비바테크에는 LVMH, 구글, 로레알,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이 후원 및 파트너로 참여했다. 이러한 세계적 기술 행사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약진이 매우 눈부셨다. 앞으로 이 같은 기세로 노를 열심히 젓는다면 분명 유럽은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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