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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돈을 내 돈처럼" 내부통제 어긋난 농협, 문제는 지배구조?

지역농축협, 최근 1년 제재 65건 달해…금감원 "중앙회 출신 인사가 내부통제 총괄하면서 취약해져"

2024.05.29(Wed) 10:10:24

[비즈한국] ‘농협’ 이름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 지역농협과 NH농협은행에서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다. 올해 농협은행에서만 배임 사고 3건이 적발된 가운데, 상호금융인 지역 농·축협에서도 임직원의 비위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농협은행의 금융사고 배경으로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와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하자, 농협중앙회는 사고 예방을 위한 범농협 차원의 대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지역농협 등을 포함한 범농협 계열사에서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최근 농협중앙회가 사고 예방을 위한 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지난 1년 동안 비위 행위로 제재 받은 ​지역 농·축협 임직원이 2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협·신협·수협 등 상호금융중앙회는 2014년부터 홈페이지에 기관과 임직원의 제재 내용을 공시하고 있다. 조합이 중앙회에서 검사 결과를 통보 받은 날을 기준으로 1개월 이내에 공시하며, 조치 중인 사건은 올리지 않는다.

 

농·축협 임직원의 비위 행위는 매년 80~90건씩 적발됐다. 최근 5년 사이 공시된 제재 건수는 2020년 83건, 2021년 92건, 2022년 85건, 2023년 76건을 기록했고 올해 들어서도 12건의 제재가 내려졌다.​

 

농협중앙회가 2023년 5월 27일부터 1년간 공시한 제재 내용을 살핀 결과, 제재 건수는 65건이지만 비위 행위를 저지른 농·축협 임직원 수는 196명에 달했다. 한 지역농협에서 직원 10명이 한꺼번에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제재 사유를 보면 횡령이 65건 중 18건에 이른다. 특히 ‘시재금(은행이 보유한 현금) 횡령’ 사건이 12건을 차지해 눈에 띈다. 시재금 횡령은 서울, 경기, 강원, 경남 등 전국 곳곳의 조합에서 일어났다. 구체적인 사유로는 ‘​책임자가 자동화기기 시재금 검사에 소홀한 점을 이용해 시재금을 횡령했다​’고 명시됐다. ATM 등 자동화기기 관리가 부실한 점을 노리고 직원들이 무단으로 현금을 가져간 셈이다.

 

여러 비위 행위가 얽히기도 했다. 서울의 한 지역농협에서는 직원이 시재금 횡령과 더불어 사금융을 알선했고, 전북의 지역농협에서는 ​실제로 입금하지 않았지만 거래가 발생한 것처럼 ​‘무자원 입금’ 후 시재금을 무단 반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밖에 △대출 상환 자금 횡령 △고객 예탁금 횡령 △손해보험 해지환급금 횡령 등도 발생했다.

 

농협중앙회의 제재 공시에 따르면 지역 농·축협에서 적발돼 감사 결과 조치가 내려진 사건은 매년 80~90건에 달한다.


고가 감정과 관련한 사건도 1년 사이 10건 이상 적발됐다. 직원이 토지·건물 등 담보물의 감정 평가를 소홀히 하거나 허위로 평가한 경우로, 고가 감정으로 초과 대출이 일어나면 금융사의 손해(배임)로 이어진다. 일례로 지난 3월 경북의 한 지역농협에서는 직원 4명이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받고, 고가 감정으로 초과 대출까지 일으켜 제재를 받았다. 직원 4명 중 1명은 해직, 1명은 감봉, 2명은 견책 조치를 받았다.

 

올해 농협은행에서 적발된 금융사고도 모두 영업점 직원의 초과 대출로 인한 배임이었다. 농협은행은 3월 109억 원대, 5월 22일에는 53억 원, 11억 원대 배임 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농협은행은 최근 사고에 대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위법행위는 형사고발과 함께 징계해직 등 무관용 인사조치할 예정”이라며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업무시스템 보완과 임직원 사고 예방 교육을 통해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농협에서 금융 사고가 끊이지 않자, 농협중앙회는 사고 예방을 위한 관리 책임 강화 조치를 내놨다. 5월 7일 중앙회는 “농협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다수 발생해 농협의 공신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라며 “범농협 차원의 내부통제와 관리책임을 강화해 임직원의 경각심을 높이고 사고 발생을 원천 차단하겠다”라고 밝혔다.

 

농협중앙회의 발표안에 따르면, 공신력을 실추시킨 농·축협에는 △중앙회의 자금지원 제한 △예산·보조·표창 등 업무 지원 제한 △점포 설치 지원 제한 등의 조치를 내린다. 또한 중대사고와 관련한 계열사의 대표이사는 연임을 제한하고, 사고 관련 책임자는 직권 정지한다. 사고 당사자에게는 즉각 감사를 시행하며 무관용 원칙으로 처벌한다.

 

농협중앙회는 5월 27일 범농협 준법감시 최고책임자 회의를 열고 계열사에서 발생하는 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사진=농협중앙회 제공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도 “요즘은 윤리경영이 조직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라며 “농협의 사고예방을 위한 관리 책임 강화 발표는 새로운 농협 구축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농협중앙회는 5월 27일 ‘제1차 범농협 준법 감시 최고책임자 회의’를 열고 계열사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막을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농협중앙회와 농협경제·금융지주 및 계열사의 준법 감시부서 최고책임자가 참석해 사고 근절을 위한 법인별 활동 내역과 하반기 중점 계획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2019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농·수협중앙회에 임직원의 횡령·배임 등 중대 범죄에 대한 고발 조치를 의무화하도록 권고했다. 농·축·수협 조합에서 위법 행위가 발생해도 대부분 자체 징계에 그쳤기 때문이다. 

 

권익위에 따르면 농·수협 중앙회는 1년이 지난 2021년 1월 권익위의 권고를 반영했다. 100만 원 이상의 공금을 횡령한 경우 고발을 의무화하도록 규정을 변경하면서다.  

 

 

그러나 농협의 ‘​제 식구 감싸주기’는 2023년 국정감사에서 다시 도마에 올랐다. ​홍문표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지역 농·축협에서 발생한 횡령 사건의 규모는 563억 원에 달했으나, 횡령 임직원에 대한 징계 중 51%가 ‘견책 및 개선 요구’에 그쳤다. 당시 홍 의원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지역 농·축협의 횡령에도 솜방망이 처벌로 눈 감아주는 농협중앙회가 근본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농협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한 데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고 봤다.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어, 농협은행·증권 등 금융사를 손자회사로 둔다. 중앙회가 금융지주의 경영과 인사권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금감원은 ​ 지난 4월 농협금융·은행의 정기 검사 배경을 설명하면서​, 농협중앙회 출신의 인사가 농협은행의 내부통제 체계를 총괄하는 상황이 체계를 취약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농협금융지주, 농협은행의 경영 전반과 지배구조 취약점을 종합 진단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며 “대주주 농협중앙회와 지배구조 관련 사항에 대해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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