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병상 300개가 넘는 병원을 운영하는 A 병원장은 이달 초부터 검찰 인사 가능성을 예의 주시했다.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돼 수사 결과가 빠르게 나오기를 바라서다. 그동안 검찰이 인사를 이유로 두 차례나 사건 처리를 해주지 않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A 병원장은 로펌을 통해 꾸준히 ‘수사 처리를 빨리 해달라’고 검찰에 요청했지만 이번에도 인사 때문에 처분을 받지 못했다. 한때 ‘전관 변호사’를 더 고용할지까지 고심했던 A 병원장은 로펌에게 “인사 이후라도 곧바로 수사 결과가 나오도록 요청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전부인 상황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오너 일가가 구속될 처지에 놓인 중견기업 B 사. B 사는 검사장 출신들이 모여 만든 부티크 로펌을 선임해 사건에 대응해왔다. 로펌은 “대검찰청 수사 지휘 간부부터 지검장과 차장검사 모두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강조해왔기에 이를 염두에 두고 변호인단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이번 검찰 인사로 B 사는 고심에 빠졌다. 사건을 새로 맡게 된 검찰 수뇌부가 지금 선임한 로펌과 얼마나 가까운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 출신 중심의 부티크 로펌 대표인 C 변호사. C 변호사는 친분이 있는 기자로부터 검찰 고위 인사 발표를 받자마자 ‘비상’에 걸렸다. 그동안 사건 처리 방향을 놓고 의견을 조율해온 지검장들에게 사건 처리 요청을 매듭짓기 위해서다. 상장사가 고발된 사건을 놓고 무혐의 처분을 거듭 요청했는데 새로운 지검장이 취임하기 전 신속하게 사건 종결 처리를 요청한 것. 후임으로 올 지검장에게도 인사하며 안부와 함께 사건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지검장을 역임한 바 있는 C 변호사는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수준의 기업 사건들은 지검장이나 차장검사의 판단이 중요하다”며 “인사가 나면 새로 다 설명을 해야 하지 않냐. 인사가 9개월 만에 나오다 보니 다들 인사 전후로 비상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법무부가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장 교체를 비롯해 대검 검사급(고검장·검사장)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곧바로 차·부장검사급 검찰 후속 인사 작업에 착수했다. 법조계는 김건희 여사 의혹 관련 수사 등 주요 사건의 향방에 관심을 쏟지만, 검찰에 고발인이나 피의자 신분으로 얽혀 있는 기업들은 비상에 걸렸다.
9개월 만에 대대적으로 인사이동이 발생한 탓에 한두 달가량 수사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어느 정도 처분 방향이 정해졌던 사건들도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는 기업 사건들의 경우 부장검사나 차장검사, 지검장의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 ‘전관’이라는 이유로 선임한 변호인단을 교체해야 할지를 두고 기업들이 고심에 빠진 이유다.
검찰 인사는 5월 말, 6월 초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오는 24일 검찰인사위원회를 개최하고 차·부장검사급 검찰 인사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보통 인사위원회 개최 당일이나 다음날 인사를 내는 것을 고려하면, 24~25일에 중간간부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뒤이어 평검사 인사도 예정된 터라 6월 초까지는 고발인이나 피의자 모두 ‘새로운 사건 담당 검사’를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C 변호사는 “맡은 사건 중에 진전이 없는 사건은 새로운 인사를 기점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를 요청해야 하고, 거꾸로 사건이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던 사건은 후임한테 인수인계를 할 때 가급적 원래 방향대로 처리되기를 요구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몇몇 의뢰인들, 특히 전관임을 알고 선임한 곳들은 새로운 전관 변호사를 찾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해 인사를 전후로 더 바빠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관 변호사들을 선임하는 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현직 검사는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고 해서 다 친한 것은 아니지 않냐”며 “실력 있는 변호사는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근거나 주장을 만들어서 오는 것이고, 그걸 잘 하는 게 의뢰인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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