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의사의 국내 진료 문턱을 낮추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페이스북에 소말리아 의대생의 졸업식을 다룬 기사를 올리며 정부의 도입 방침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의사가 우리 국민을 진료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안전장치를 갖추겠다”며 당장 투입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수년 전부터 의사 부족 문제를 겪었던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 외국의대 졸업생으로 ‘의료소외 지역’ 문제 접근
정부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금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38개국 159개 의대를 졸업한 사람 가운데 예비시험과 국가고시를 통과한 이에 한해 의사 면허가 주어지는데,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보건의료 재난경보 ‘심각’ 단계의 경우에는 국가고시를 통과하지 않은 의사도 복지부의 승인을 받으면 진료할 수 있게 된다. 국가와 학교 제한 없이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별도의 시험을 치르지 않고 복지부가 서류 심사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범위 내에서 의료 행위가 허용된다. 단독 개원은 불가하다. 외국의사 ‘수입’ 또는 ‘도입’이라는 말이 붙지만 사실상 외국 의사의 진료 문턱을 낮춘 것이다.
외국에서는 외국의사 도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미국은 코로나19 당시 외국의대 졸업생(IMG)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의료공백을 메꾼 바 있다. 투라야 아레이시(Thurayya Arayssi) 카타르 웨일코넬의과대학 임상의학 교수가 공동 작성한 논문 ‘신입 국제의학 졸업생과 코로나19 팬데믹(Incoming International Medical Graduates and the COVID-19 Pandemic)’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전염병 레지던트 및 펠로우의 40%가 외국의대 졸업생이었다. 당시 미국의사협회(AMA)는 성명을 내고 “IMG가 더욱 원활하게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미국 의료에 긍정적인 영향이 커질 것”이라며 IMG의 확대를 요구했다.
미국은 1994년부터 의료소외 지역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콘래드(Conrad) 30’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외국의대 졸업생이 의료소외 지역에서 최소 3년간 근무하는 조건으로 J-1(비이민 교환방문) 비자의 2년간 본국 체류 의무조항을 면제해 본국에 귀국하지 않고도 미국에서 H-1B(비이민 전문직 취업) 비자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한다. ‘30’이라는 숫자는 주 정부가 후원할 수 있는 의사의 수를 가리킨다. 기존에는 20명이었지만, 2003년 프로그램이 재승인되며 30명으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전공의 수련 과정을 일부 면제하는 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미국 의학전문지 ‘메드페이지 투데이(MedPage Today)’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미국 내 15개 주는 외국의대 졸업생이 임시 면허증을 발급받아 주 내 병원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면 정식 의사면허를 발급하는 법안이 입법을 마쳤거나 입법 과정을 밟고 있다. 일부 주 정부는 의무 근무 기간에 의료소외 지역에서 진료하게 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내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지 않아도 정식 의사면허 취득이 가능해진다. 가장 먼저 입법을 마친 테네시주는 오는 7월부터 법안이 시행된다.
#미국 의사 23%가 외국대학 졸업자, 국내는 통계도 없어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 ‘외국인 의사’를 도입하고자 적극적으로 움직인 전례가 없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 진료를 보는 외국인 의사에 대한 공식적인 집계도 없다. 반면 미국은 주 의료위원회 연맹(FSMB)이 2010년부터 자국 내 의사에 대한 인구 조사를 2년마다 실시하고 있다. 면허가 있는 의사 수, 의학 학위 유형, 학부 의학 교육 위치, 전문 자격증 정보 등이 조사 내용에 포함된다. FSMB는 보고서에서 “이용 가능한 의사 인력의 수와 인구통계학적 구성을 검토해 노령 인구의 의료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과로에 시달리는 의사의 건강을 지키는 균형을 맞추는 데 기여한다”며 조사의 이유를 밝혔다.
미국에서 외국의사 비율은 어느 정도를 차지할까? 가장 최근에 집계된 2022년도를 살펴보면 미국에는 의사가 104만 4734명 있다(의료면허 보유자는 154만 283명). 면허를 취득한 의사는 169개국 2200개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 가운데 77%(80만 3561명)가 미국 또는 캐나다 대학 졸업자다. 외국대학 졸업자는 23%(23만 9642명)로 전체 의사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국가별로는 인도(21%), 카리브해 지역(20%), 파키스탄(6%), 필리핀(5%), 멕시코(4%) 순으로 많다. 2010년과 비교해 국내와 외국대학 출신자는 각각 24%, 27% 증가했고, 카리브해 지역의 대학을 졸업한 의사는 115% 늘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대학 졸업자의 국내 의사 면허 취득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외국의대 의사국가고시 예비시험 및 의사국가고시 응시 및 합격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5년~2023년 외국의대 졸업자의 최종 합격률은 41.4%에 그쳤다. 예비시험 합격률은 55.42%였다. 가장 많이 응시한 국가는 헝가리로, 총 189명이 시험을 봤다. 우즈베키스탄(71명), 영국(27명), 미국(23명), 독일(21명)이 뒤를 이었다. 국가고시에 합격한 외국의대 졸업자의 출신국가는 응시자 비율과 엇비슷했다. 헝가리(98명), 우즈베키스탄(29명), 영국(17명), 독일(13명), 호주(11명) 순이었다.
한편 보건복지부가 공지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에는 17일 오후 기준 1395개의 반대 의견이 달렸다. 이는 전체 1560개 의견의 90%에 달하는 숫자다. 찬성 의견은 63개, 기타 의견은 102개다. 의견에는 “수가체계부터 점검해야 한다”, “외국의사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 “비교적 입시가 어렵지 않은 외국의대로 도피 유학을 갔던 국내 고위층 자녀들이 진료를 하게 되면 엄청난 자본력을 행사할 것” 등의 목소리가 있었다. 일부는 한의사, 치과의사 등 의료인의 자격을 갖춘 이들의 의료 행위를 확대해달라고 남겼다.
의료계는 외국의사를 도입한다는 복지부의 발상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인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인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정책연구소장은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외국의사는 그 국가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를 알 수 없기에 국가시험은 최소한의 절차다. 어느 국가도 봉사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 함부로 외국의사의 진료를 허용하지 않는다. 소통 문제와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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