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통신자료 조회 ‘사후통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 비즈한국 취재 결과, 통신자료 조회 권한이 있는 수사기관들의 사후통지 관리 체계가 부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후통지 대행기관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은 ‘시스템 구축 중’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반년간 개정 법률의 효력이 사라진 상황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논의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인다. 법은 개정됐지만, ‘통신조회 사후통지’ 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법 개정 4개월 됐는데 아직도 “시스템 구축 중”
그간 수사기관은 영장 없이 통신자료(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했다. 2022년 7월 21일 헌법재판소가 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단을 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관련기사 [단독] 올해부터 의무화 됐는데…“시스템 구축 중” 핑계로 통신조회 사후통보 않는 검찰). 헌재 판단에 따라 2023년 12월 29일 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올해 1월 1일부터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후 ‘사후통지’ 절차가 의무화됐다.
개정된 법률에 따르면, 통신이용자정보 제공을 받은 수사 기관은 30일 이내에 정보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3개월 단위로 통지유예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사후통지 업무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대행할 수 있다. 문제는 KAIT가 아직 통지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정안대로라면 대행기관은 사후통지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전자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개정된 법안이 시행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이러한 관리 절차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사후통지 절차와 통지유예 절차에 대한 시행령도 제정되지 않았다. 시행령 개정안은 올해 1월 25일 입법 예고됐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담당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현 상황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 과기부 관계자는 “5월 말쯤 법제처 심사를 완료해 6월에는 시행령이 개정되게 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대행기관이 시스템 구축 중이어서 통지는 안 되지만, 수사기관이 개별 통지를 하고 있다. 다만 전체 현황은 중앙에서 알 수 없다.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설명했다. 개정안 시행 후 6개월 동안 법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현황 살펴보니
비즈한국이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권한이 있는 10개 기관에 통신자료 조회 및 사후통지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법원, 검찰청, 경찰청, 국가정보원, 고위공직자수사처, 국세청, 관세청, 법무부, 고용노동부, 식품의약품안전처인데, 이 가운데 기간 내 자료를 공개한 기관은 경찰청, 국세청, 식약처 세 곳뿐이다. 수사기관들은 “시스템 구축 중”을 핑계로 사후통지 절차를 관리하지 않았다.
법원, 검찰청, 법무부, 고용노동부는 “별도로 작성해 보유·관리하지 않는 정보”라며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통지는 하나 관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초 대검찰청은 개별 검찰청에서 자체적으로 통지하기 때문에 현황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비즈한국이 개별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에 통지 현황을 요청했지만, 중앙지검 역시 정보가 없다며 ‘부존재’ 처리했다.
공수처는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건수는 매년 공개되는 정보지만, 공수처는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관세청은 통지 기간을 연장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과기부에서 법을 개정하면서 관계 기관과 여러 번 회의했다. 관세청에선 대행기관을 두는 데 동의했지만, 아직 서비스가 완료되지 않았다. 관세청 내부 시스템을 만들어 관리하려 하는데 만들지 못했다. 현재는 각자 관리하고 있다. 관련 팀도 여러 곳이고 교대근무도 많다 보니, 취합해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사후통지 현황을 공개한 국세청의 경우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두 달간 통신조회를 28건 했다고 밝혔다. 이 중 사후통지를 유예한 사례는 없었다.
식약처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총 40건의 통신 조회를 했다고 밝혔다. 이 중 사후통지를 유예한 건수는 15건으로 37.5%에 해당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수사하는 부서가 정해져 있어서 건수를 확인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청에서는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총 12만 4790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다만 경찰청은 ‘수기 통계’여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지를 완료하거나 유예 절차를 밟지 못한 건수는 2550건으로 2% 수준이다. 경찰청은 “사망·주소 불명 등으로 통지 불능이거나 통신 오류 등의 이유로 절차를 밟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선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기관들은 KAIT의 통지 시스템 구축 완료를 기다린다고 설명하지만, 앞으로 반년은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KAIT는 “통지업무 대행을 위한 협회 시스템은 2024년 하반기에 구축이 완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는 “사후통지는 대행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 해서 통지를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다. 지금은 법 위반 상태로 볼 수 있다. 자료도 없으면 안 된다. 국정감사 등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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