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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스타트업에 '병 주고 약 주는' EU 인공지능법

전 세계 관련 기업 모두에 강력하게 적용, 지원책 마련했지만 규제 덜한 영국이 '반사이익'

2024.05.14(Tue) 16:30:47

[비즈한국] 2018년 5월, 전 세계 혁신 기술 산업이 떠들썩했다.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 소위 GDPR이라고 부르는 규제 법안이 발효돼서다. 전 세계 기업이 이를 주목한 것은 이 규제가 유럽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EU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EU 역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 모두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징금 규모가 엄청나 기업들 사이에 괴담처럼 회자됐다. 과징금은 ‘심각한 위반’의 경우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의 4% 또는 2000만 유로(294억 원) 가운데 높은 쪽으로 부과한다. 수십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4%가 천문학적인 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Meta)에는 역대 최고 과징금인 12억 유로(1조 7000억 원)가 부과됐다. EU 사용자 정보를 미국으로 전송했기 때문이다. (물론 메타는 이에 항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 세계 기업이 ​유럽의 규제 법안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최근에는 ‘제2의 GDPR’이라 불리는 새로운 규제가 등장했다. ‘유럽연합 인공지능법(EU AI ACT)’이다. EU AI법은 GDPR과 마찬가지로 EU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2021년부터 3년 동안 논의를 거쳐 올 2월에 법안이 통과됐으며, 올해 말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인공지능(AI) 기업을 규제하는 ‘유럽연합 인공지능법(EU AI ACT)’은 올해 말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관련 기업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스타트업에 ‘병’ 주는 EU 인공지능법?

 

EU AI법은 논의가 시작된 2021년부터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다양한 설문조사 결과, 이 규제로 인해 유럽 기업의 기술력이 퇴보할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EU AI법은 상업적 목적으로 AI 시스템을 개발, 제공 또는 배포하는 모든 회사에 적용된다. AI 시스템을 구축해 다른 기업에 판매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AI를 이용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모두 해당된다. 적용되는 AI 기술이 자체 기술이든 이미 있는 도구에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든 무관하다. 

 

2022년 말, 챗GPT를 필두로 생성형 AI 시장이 급부상한 이후 과히 AI 혁명기라 부를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앞으로는 AI 분야가 이커머스, 금융, 광고·미디어,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데이터 기업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현재 AI 시장은 상당한 성장 궤도에 올라 있다. 시장 가치가 2025년 2420억 달러(331조 원)에서 2030년에는 무려 8279억 달러(113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30년까지 생성형 AI가 전체 AI 시장의 4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은 계속 성장하는데 유럽이 광범위한 규제를 예고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AI 시장은 2030년에 시장 가치가 무려 8279억 달러(1133조 원)​에 달할 전망이며, 생성형 AI가 전체 AI 시장의 4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Statista

 

최근 뜨는 AI 스타트업은 동시에 EU AI법의 규제로 성장에 방해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함께 따라붙는다. 투자자들에게는 ‘리스크’가 많은 투자처다. 일례로 파리에 본사를 둔 생성형 AI스타트업 미스트랄AI​(Mistral AI​)은 EU AI법 발효 후 인터뷰를 가장 많이 한 유럽 스타트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기술이 주목받는 동시에 위험에 처한 것이다. 

 

미스트랄AI는 미국 오픈AI의 대항마로 불릴 정도로 떠오르는 스타트업이다. 미스트랄의 대형언어모델(LLM)은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주요 클라우드 업체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구글 딥마인드 출신 연구원 아서 만쉬(Arthur Mensch)가 메타 출신의 대학 친구 2명과 2023년 4월에 설립했고, 10개월 만에 약 5억 유로(7380억 원)를 투자 받았다. 기업가치는 20억 유로(2조 9000억 원)로 유니콘의 기준을 훌쩍 넘겼다.  

 

미스트랄AI 파리 팀. 오른쪽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이 창업자 아서 만쉬. 사진=Mistral AI


미스트랄AI는 최근 또 한 차례 3억 8500만 유로(5690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EU의 새로운 AI 규제로 인해 미스트랄과 같은 유럽 AI 스타트업의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U AI 규제법은 ‘고위험’으로 분류되는 대규모 AI 모델에 모델 평가, 사이버보안, 데이터 투명성 등 엄격한 의무 사항을 부과한다. 이에 따라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이 규제 준수를 위한 법적, 재정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미스트랄AI는 실제로 기존 주자인 오픈AI와 비교하면 체급이 딸린다. 오픈AI는 직원만 700명이 넘고, MS에서 100억 달러(13조 원)의 투자금을 댔다. 오픈AI 출신들이 창업한 스타트업 앤트로픽은 아마존과 구글 등으로부터 70억 달러(9조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아직 직원이 80명 내외에 불과한 미스트랄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히 AI 학습데이터의 상세 정보 공개 의무는 지식재산권 문제를 초래하고, 경쟁사에 정보를 노출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모델 견고성 테스트를 하기 위해 시뮬레이션하는 별도의 ‘레드팀’을 운영해야 하는 것도 인력과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양한 지원책으로 ‘약’도 마련

 

EU는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AI 스타트업에 규제뿐만 아니라 지원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로 지난 1월 말 유럽위원회는 EU 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인공지능(AI) 개발을 지원하는 ‘AI 혁신 패키지(AI Innovation Package)’를 발표했다.

 

패키지에는 AI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슈퍼컴퓨터를 쉽게 활용하도록 하는 ‘AI 팩토리(AI Factory)’ 조성, AI 정책을 총괄하는 ‘AI 사무소(AI Office)’ 설립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AI 팩토리는 대규모 범용 AI(GPAI) 모델의 빠른 머신 러닝 및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AI 전용 슈퍼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스타트업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 알고리즘 개발을 위한 AI 스타트업 연구비 지원, 대규모 AI 모델 평가·검증·테스트를 위한 서비스 및 시설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AI 스타트업과 혁신을 위해 호라이즌 유럽, 디지털 유럽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약 40억 유로의 공공·민간 투자를 추가 지원하고 교육, 훈련, 기술 재교육 등을 통한 AI 인재 육성 지원, EIC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및 인베스트 EU(Invest EU) 등을 통한 투자 촉진, 공통 유럽 데이터 공간(Common European Data Spaces) 개발 등의 계획을 담고 있다. 추가로 유럽 디지털 인프라 컨소시엄(EDIC)을 설립해 언어기술 인프라 구축, 스마트시티 디지털 트윈 개발 등 AI 활용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일각에서는 혁신 패키지가 개방형 AI 모델 기업에 대한 단기적 규제 완화 효과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미스트랄AI의 투자자들은 EU AI법에 위험 요소가 분명히 있지만, GDPR처럼 컴플라이언스 프로세스를 만들면 통제 가능할 것으로 낙관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가장 주목받는 순간

 

EU의 규제 움직임과 함께 영국이 초기 AI 스타트업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7년 산업전략 녹서·백서(Industrial Strategy Green·White Paper), 디지털 전략(UK Digital Strategy)을 통해 자국을 인공지능 글로벌 혁신센터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며 수많은 자금을 인공지능 산업에 투자했다. 2021년에는 인공지능 국가전략(AI National Strategy)을 발표해 향후 10년간 인공지능 산업의 발전 방향을 구체화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인공지능 시장을 보유하게 되었다. 2023년 영국 정부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영국에는 3170개의 AI 기업이 있다. 이 기업들은 매출 106억 파운드(18조 원), 직원 5만 명 이상 고용, 경제 총부가가치(GVA) 37억 파운드(6조 원) 창출 등 영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Deepmind), 머신러닝 전문기업 그래프코어(Graphcore), 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기업 베너블런트AI(BenevolentAI) 등 인공지능 분야를 선도하는 여러 회사가 영국에서 탄생했다.

 

AI 분야가 주목받으면서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유럽의 대안이 될 AI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유럽과 타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 AI 규제의 국제표준을 이끌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미국 시사지 ‘타임(TIME)’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후 EU와 미국의 서로 다른 규제 접근 방식 사이에서 ‘정직한 중개자(Honest Broker)’ 역할을 수행하면서 중추적인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미국 AI 기업들은 유럽에 법인을 설립할 때, 다소 규제가 덜한 런던을 대안으로 택하고 있다. 

 

EU AI법은 2021년에 발의되어 2024년에 이르기까지 3년 동안 수많은 논의를 거쳐 마련됐다. 논의 과정에서 챗GPT의 탄생을 목도했고, 산업 분야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까지도 그 논의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아직 시행 전인 만큼 앞으로 이 법이 어떻게 적용되고 해석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세부 지침이 마련될 때까지는, 혁신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규제의 틀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혁신과 규제는 늘 긴장 관계에 있다. 스타트업 신에서는 “요즘 사람들의 사고는 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에 스며든 혁신의 기술이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기가 막히게 편리하다. ‘지속 가능한 기술’을 위해서는 결국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 사이의 건강한 긴장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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