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2조 원대 사기 혐의로 가상화폐 거래소 브이글로벌 대표에게 징역 25년 선고가 확정된 사건이 있다. 브이글로벌은 가상화폐 ‘브이캐시’를 만들어 투자자에게 300% 수익을 보장하거나, 다른 회원을 유치하면 소개비를 주겠다고 속여 2020년 7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약 2조 2000억 원을 편취했다.
브이글로벌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뿐만 아니라 유사수신행위법 위반도 포함됐다. 사기 혐의는 300% 수익이나 소개비를 주겠다고 속여 투자금을 받은 것을 말하고, 유사수신행위 혐의는 법령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투자 명목으로 돈을 유치한 것을 말한다.
위 사건에서 보듯이 유사수신행위와 사기는 짝을 이뤄 문제 되는 경우가 많다. 수사 과정에서 체포·구속, 압수수색 등의 강제수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실형이 선고되는 큰 사건의 경우 수십 년 징역형이 선고되기도 한다.
사기의 의미와 처벌의 필요성은 큰 고민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유사수신행위는 무엇이기에 엄하게 처벌하는 것일까? 유사수신행위란 다른 법령에 따른 인가·허가를 받지 않거나,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행위를 뜻한다.
장래에 원금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의 지급을 약정하고 예금·적금·부금·예탁금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받는 행위가 유사수신에 해당한다. 간단히 말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돈놀이를 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개정된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유사수신법)은 유사수신행위 대상에 인가 없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가상자산을 조달하는 행위도 포함했다.
유사수신법은 유사수신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제3조는 ‘누구든지 유사수신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6조 제1항은 ‘이를 위반해 유사수신행위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사수신행위를 금지하고 그 행위자에게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자료를 보면 “유사수신은 금융사기 범죄의 일종으로 금융거래 주체 상호 간의 신용·신뢰와 금융거래의 안전을 침해한다. 궁극적으로는 국민 경제 질서를 침해하고 서민에게 대규모 금융 피해를 야기하므로 특별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사수신행위의 의미를 규정하고 처벌을 규정한 유사수신법은 2000년 새로 제정됐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법을 제정했을까? 과거 문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1995년에만 해도 파이낸스사는 17개에 불과했지만, 금융기관 자율화 조치로 1999년 600개로 크게 늘었다.
그중 부산의 삼부파이낸스는 저금리로 투자금을 끌어모아 고금리로 빌려주는 기업금융, 부동산컨설팅, 영화산업(용가리) 등에 투자했는데, 1999년 9월 사건이 터졌다. 회장은 횡령 혐의로 구속됐고, 피해자 6532명에게서 2300억 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삼부파이낸스는 법적으로 금융사가 아니었으므로 당국의 규제나 예금자 보호조치 등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사수신행위, 즉 돈놀이 자체를 처벌하는 유사수신법이 2000년 제정됐다.
‘투자를 하면 원금은 물론 높은 수익을 더해 돌려주겠다’는 제안은 대체로 거짓말이다. 원금이 확실히 보장되고 높은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면 투자 기회를 아무에게나 제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사수신행위 자체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기죄로 정해 처벌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의 사건에서 피의자의 변명을 들어보면, 행위자 처벌의 필요성이 높은 대형 금융 범죄 사건에서 사기죄 성립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기에 앞서 행해지는 유사수신행위 자체를 처벌하지 않으면, 무책임하게 돈놀이한 사람을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금융거래에는 본질적으로 투기적 성격이 있다. 모든 투자는 위험이 수반된다. 시세 전망과 가치판단에 따른 투자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다. 외부 환경이 악화해 투자 원금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투자의 개념상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투자금에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반드시 기망의 고의, 기망행위 등과 같은 사기죄의 구성요건이 충족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형 금융 범죄 사건에서 행위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 그래서 사기죄의 전단계로 행해지는 유사수신행위를 따로 처벌하는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이처럼 유사수신행위 규제는 대형 금융사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면이 있고, 실무상으로는 유사수신행위를 수사하다가 금융사기 범죄까지 밝혀내는 사례가 많다. 이런 경우를 두고 유식한 말로 ‘유사수신행위 규제는 사기죄 구증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금전거래가 유사수신행위일까? 그렇지는 않다. 대법원은 “장래에 출자금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출자금을 수입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상품의 거래가 매개된 자금의 수입은 출자금 수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그것이 상품의 거래를 가장하거나 빙자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상품의 거래 없이 금원의 수입만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이를 법에서 금하는 유사수신 행위로 볼 수 있다”라고 판시했다.
판시에 따르면 금전 거래의 내용에 부합하는 사업의 실체가 존재한다면 법상 금지되는 유사수신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사업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거나, 사업의 외관만 형식적으로 만들면 당연히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유사수신행위 사건에서는 피의자가 주장하는 사업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외관상 꾸며낸 것에 지나지 않는지가 주된 쟁점이 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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