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배종’이 막을 내렸다. 디즈니플러스에서 선보인 10부작 오리지널 시리즈인 ‘지배종’은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가 인공 배양육을 소재로 들고 나와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에,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로 시선을 붙잡았으나 마지막 9, 10화는 그야말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뒤통수를 쳤다. ‘지배종’을 추천하느냐 묻는다면 한 번 볼 가치는 있다고 말하겠지만, 아직 뒤통수가 얼얼하긴 하다.
‘지배종’은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척 많은 드라마다. 홀로그램으로 들판에서 뛰놀던 소들이 잔인하게 도축당하는 강렬한 오프닝으로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지배종’은 인공 배양육이 인류에 가져온 변화를 보여주며 환경 문제를 건드리는 작품으로 예상됐다. 2025년의 근미래로 설정된 작품 속 세계는 인공 배양육이 자리잡으며 농업, 어업 등 1차 산업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여지를 주었다.
‘환경을 해치지 않는 고기가 나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무 의심없이, 죄의식없이 섭취할 수 있을까’로 시작한 질문은 이내 인공 장기 배양으로 나아간다. 이는 윤자유(한효주) 대표가 이끄는 BF그룹이 ‘생명공학기업’이란 슬로건을 내건 것에서 짐작할 수 있긴 했지만, 인공 배양육을 소재로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작품이라 여기며 집중했던 시청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 신선하게 놀랐더랬다.
인공 장기 배양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가면서 시청자들이 생각해볼 꺼리는 보다 많아졌다. 윤자유 대표는 돼지 살처분 현장에서 받았던 충격과 인간광우병으로 목숨을 잃었던 쌍둥이 여동생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공 배양육과 그를 넘어선 인공 장기 배양 기술을 성공시킨다. 사람의 몸은 필연적으로 노쇠한다. 늙고 병들어가는 몸을 인공으로 배양한 생생한 장기로 갈아 끼울 수 있다면, 그걸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신의 섭리를 벗어난다며 거부할 종교인들 정도? 막연히 인공 장기에 거부감이 든다 해도, 말기 암 등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누구라도 인공 장기를 이식해서라도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병들고 노쇠한 오장육부를 갈아 끼울 수 있다면 세상은 인공 배양육이 불러온 혼돈의 수십, 수백, 수천 배에 달할 혼돈을 겪게 될 것이다. BF가 인공 장기 배양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총리 선우재(이희준)의 말을 들어보라. “모든 인간들이 영원히 살면 어떻게 되겠어요? 저 밖의 사람들? 감당 못해요. 자원은 또 어떡하고? 안 죽는다고 애 안 낳나? 고기야 만들면 되지만 딛고 설 땅은, 천연자원은, 일자리는? 세대라는 건 교체가 돼야 된다고요.” 물론 인공 장기가 자리잡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안 죽는 건 아니겠으나 그렇지 않아도 100세 수명 시대에서 예상 수명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은 당연하다.
선우재의 말은 실상 인공 장기 배양 기술을 독점하면서 남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그의 궤변에 불과하지만, 그 궤변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기에 곱씹을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환경 위기로 지구가 죽어가고 있는 처지인데, 생명이 연장된 인간들로 드글드글거리게 되면 지구는 어떻게 되겠냐고. 그리고 인공 장기란 것이 아무리 상용화된다 한들 감기약처럼 누구나 가질 수 있게 되진 않을 터인데, 그러면서 벌어지는 양극화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문제는 곱씹을 거리는 많은데, 드라마가 이 많은 이야기와 메시지를 제대로 지배하지 못하고 갈피를 잃은 듯한 인상을 준다는 거다. 드라마는 BF가 몸집을 불리는 데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던 아조란 폭탄 테러 사건을 초반부터 이야기의 한 축으로 보여주는데, 이 사건의 배후에 윤자유 대표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며 경호원으로 접근했던 우태운(주지훈)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입지가 가장 애매하다. 아조란 때 동료를 잃었던 슬픔으로 사건을 파헤치고자 하는 동기는 알겠으나, 드라마가 인공 장기 배양 기술을 둘러싼 인간들의 욕망에 접근하면서부터는 동력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시종일관 건조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여러 의심을 사던 윤자유 대표가 어느 순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모습도 감정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한 느낌.
잃어버린 갈피는 드라마 결말인 9, 10화에 이르러서 ‘포텐’을 터뜨린다. 각종 인간들의 욕망이 얽히며 매력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다가 갑자기 거대한 그룹의 경영권 탈취(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죠?)극 정도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라니. 윤자유 대표를 노리던 각종 사건과 테러의 배후와 아조란 폭탄 테러의 배후는 알려주지만, 정작 주인공들의 생사가 불분명한 드라마의 결말이라니. 아무리 시즌2를 노렸다지만 마무리는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요. 황망해진 나머지 그간 곱씹던 드라마의 메시지도 휘발되는 느낌이다. 드라마 속 BF가 개발한 인공지능 ‘장영실’에게 “장영실, ‘지배종’ 결말 좀 다시 써줘. 아니, 지금 당장 시즌2를 내놓아줘”라고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종’은 뻔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드라마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는 데는 성공했다. 클리셰 범벅인 기존 드라마에 지쳐 있다면 한 번쯤 시청을 권한다. 시즌2가 나올 수 있을지, 나온다면 그때는 마무리가 잘 될지는 모르겠다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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