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아젠다

[사이언스] 너무 일찍 죽어버린 초기 은하의 비밀

3000만~9000만 년 안에 별 탄생 완료…블랙홀이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는 증거 될 수도

2024.05.07(Tue) 16:37:18

[비즈한국] 빅뱅 직후 초기 우주의 모습은 어땠을까? 우주 역사상 처음 탄생한 최초의 은하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동안 천문학자들은 1세대 은하들은 대부분 한창 별들이 폭발적으로 탄생하는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갓 반죽되기 시작한 은하들이라 비록 질량과 크기는 작더라도 그 안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어린 별들이 왕성하게 태어나면서 오늘날 관측되는 은하들 못지않은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허블과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하나둘 발견되는 우주 끝자락, 130억 년 전의 원시 은하들은 대부분 크기는 작지만 별이 폭발적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최근 예외적인 모습을 보이는 은하를 발견했다. 130억 년 전 아주 먼 과거에 존재한 은하가 분명하지만 놀랍게도 별 탄생이 전혀 폭발적이지 않다. 이미 별 탄생이 다 끝나고 ‘죽은’ 은하가 된 것처럼 보인다! 불과 3000만~9000만 년 사이에 은하 안에 새로운 별을 만들 재료, 신선한 가스 물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우주 나이가 8억 년도 채 되지 않은 우주 역사 극초반기에 이렇게 시들시들해진 은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은하도 즉음을 맞이한다. 더 이상 별을 만들지 못하는 상태가 된 은하들의 죽음의 과정을 알아본다.

 

은하도 죽을까? 물론 은하는 생명체는 아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은하에게 매기는 일종의 ‘생명력’의 지표가 있다. 해마다 은하 안에서 얼마나 많은 별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별 탄생율이다. 보통 일반적인 은하는 1년마다 태양 질량 1~2배 정도의 새로운 별들이 태어난다. 더 이상 새로운 별이 태어나지 않으면 그 은하는 생명력을 잃고 죽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은하가 생명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은하의 퀜칭(Quenching)이라고 한다. (퀜치는 급냉각, 담금질, 불을 끄는 소화라는 뜻이다. 은하에서 피어오르던 별 탄생의 불꽃이 꺼졌다는 뜻이다.) 

 

은하에서 새로운 별들이 계속 태어나려면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 물질이 안정적으로 궤도를 돌며 중력 수축을 통해 높은 밀도로 반죽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스 물질의 온도와 에너지가 지나치게 높으면 안 된다. 온도가 뜨거워지고 운동 에너지가 높아지면 가스 구름을 이루는 입자들의 운동이 더 빨라지면서 중력 수축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즉 은하의 퀜칭은 그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 물질의 온도가 뜨겁게 가열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많은 관측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은하들이 생명력을 잃는 퀜칭의 다양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다. 퀜칭의 메커니즘은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한다. 우선 한 가지 기준은 퀜칭의 원인이 은하 안에 있는지, 아니면 은하 외부에 있는지다. 또 다른 기준은 퀜칭이 진행되는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다. 

 

외부 요인에 의한 퀜칭 중 하나는 은하가 인접한 다른 은하와 중력을 주고받으며 직접 충돌과 병합을 하는 경우다. 사실 은하끼리의 충돌은 초반에는 별 탄생을 빠르게 촉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별 탄생율을 100~1000배 가까이 증가시킨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별이 탄생하는 은하를 스타버스트 은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 짧은 시간에 별을 만드는 신선한 가스 물질 재료를 빠르게 소진해버리고 만다. 결국 충돌하는 은하는 잠깐의 전성기, 스타버스트를 만끽한 뒤 곧바로 새로운 별을 만들지 못하는 긴 침체기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은하의 충돌과 병합 과정을 통해 각 은하가 품고 있던 가스 물질의 운동 에너지도 빠르게 증가한다. 중력적으로 불안정해진 가스 물질은 높은 밀도로 반죽되기 어려워지고, 별 탄생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실제로 새로운 별을 만들지 못하는 늙고 덩치 큰 타원 은하들은 은하의 충돌이 더 빈번하다고 볼 수 있는 은하 밀도가 높은 은하단 중심부에서 주로 발견된다. 이처럼 은하끼리 직접 충돌, 병합하면서 진행되는 퀜칭은 비교적 속도가 빠르다.

 

마찬가지로 외부 요인으로 인한 것이지만, 조금 더 길게 수십억 년 규모로 천천히 진행되는 퀜칭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환경적 요인에 의한 퀜칭이라고 따로 분류한다. 은하들이 모여 있는 은하단에는 은하만 있는 게 아니다. 은하와 은하 사이 공간에는 빠르게 우주 공간을 움직이는 은하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뜨겁게 달궈진 헤일로 가스 물질들도 있다. 이 물질 속을 은하가 부유하면서,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 물질들이 밖으로 불려 나갈 수 있다. 먼지가 묻은 손을 물속에 넣고 헤집으면 손에 묻어 있던 흙먼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다. 

 

유체 속에서 움직일 때 느끼게 되는 이러한 일종의 압력을 램압력이라고 한다. 은하도 마찬가지로 은하 간 공간을 움직일 때, 은하 간 물질에 밀리는 램압력을 받는다. 그로 인해 은하가 품고 있던 가스 물질이 은하 바깥으로 유출된다. 서서히 은하가 품고 있던 물질이 흘러나가면, 결국 은하는 새로운 별을 만드는 능력을 잃게 된다. 은하단 내 공간을 헤엄치는 은하가 뒤로 흘려보내는 가스 물질의 흐름은 마치 긴 꼬리, 촉수처럼 관측되기도 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해파리 은하’라고도 부른다.

 

은하단 공간 속에서 자신이 품고 있던 가스 물질을 바깥으로 흘리며 잃어버리는 해파리 은하. 사진=NASA Goddard Space Flight Center from Greenbelt, MD, US

 

또 다른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다른 은하와의 직접 충돌·병합에 비해 덜 난폭한 ‘스쳐 지나가는 은하와의 상호작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을 ‘플라이바이’라고 한다. 목성이나 토성 곁을 탐사선이 스쳐 지나가는 ‘플라이바이’와 같은 맥락이다. 은하 두 개가 서로 부딪히지는 않는다.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충분히 중력을 주고받기 때문에, 각 은하가 품고 있는 가스 물질의 운동 에너지를 증가시킬 수 있다. 주변에 작은 은하들이 여러 개 스쳐 지나가면 그 효과는 더 커진다. 이 역시 은하의 충돌·병합에 비해 훨씬 오랫동안 진행되지만, 결국 은하가 생명력을 잃고 퀜칭에 이르게 된다. 

 

주변에 이웃 은하가 없는 다소 휑한 공간에 있는 은하에서도 퀜칭이 벌어진다. 은하 내부에서 자체적으로도 퀜칭이 가능하다. 은하 외곽에 멀리 퍼져 있던 가스 물질이 자체 중력에 의해 은하 중심부에 밀집되면 가스 물질의 운동 에너지가 증가한다. 그리고 은하 중심부의 질량이 더 무겁게 성장한다. 수십억 년에 걸쳐 느리게 진행되지만, 가만히 있는 은하가 시간이 지나면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에는 넓게 퍼져 있던 은하 원반이 중심부로 밀집하고, 은하 중심부가 더 밝고 둥글게 반죽되는 일종의 형태학적인 변화가 동반된다. 이를 형태학적 퀜칭이라고도 부른다. 

 

은하의 질량이 더 무거울수록 퀜칭이 잘 벌어진다. 그 안에서 더 빠르게 진화하는 무거운 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별들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다. 그래서 주변의 가스 물질을 빠르게 은하 바깥으로 날려버린다. 은하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초신성 폭발의 영향으로도 은하가 생명력을 잃을 수 있다.

 

은하 중심부에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은 굉장히 난폭하고 빠른 퀜칭을 일으킬 수 있다. 블랙홀은 주변 물질을 빠르게 집어삼킨다. 그 주변에는 뜨겁게 달궈진 플라즈마 원반, 강착 원반이 형성된다. 그리고 아주 강한 자기장이 형성된다. 자기장을 따라 블랙홀이 지나치게 집어삼키다 미처 삼키지 못한 물질 일부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되면서 바깥으로 방출되는 에너지 제트가 형성될 수 있다. 

 

이렇게 분출되는 블랙홀의 제트는 은하 바깥, 수십~수백 광년 스케일까지도 관측된다. 은하가 품고 있던 많은 양의 가스 물질을 날려버리는 주요한 기작이다. 은하 중심에 난폭한 블랙홀이 있는 경우를 활동성 은하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난폭한 블랙홀에 의해 은하가 품고 있던 물질이 청소되는 기작을 활동성 은하핵에 의한 피드백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은하는 주변 이웃 은하에 의해서든, 또는 텅 빈 공간에서 혼자서든,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별 탄생이 줄어들어가는 운명을 따라간다. 외부에서 새로운 가스가 더 이상 추가되지 않으면 별 수천억, 수조 개가 모여 있는 거대한 은하도 언젠가는 그 삶이 끝난다. 

 

그렇다면 이번에 제임스 웹 관측으로 초기 우주에서 확인된 너무나 일찍 ‘죽은 채’ 발견된 원시 은하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이번에 포착된 은하 JADES-GS-z7-01-QU는 빅뱅 직후, 우주 곳곳에서 폭발적인 별 탄생과 초신성 폭발이 활발하게 벌어지며 사실상 우주 전체가 다시 이온화되었을 거라 추정되는 재이온화 시기 직후에 존재한 은하로 보인다. 당연히 이 시기의 은하라면 상당한 수준의 별 탄생율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은하는 별을 거의 만들지 않는 상태로 관측된다. 일찍이 대부분의 별 탄생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순식간이랄 수 있는 3000만~9000만 년 안에 모든 별 탄생 과정이 끝났다.

 

은하 JADES-GS-z7-01-QU는 우주의 재이온화 시기 직후에 존재한 은하로 보인다. 상당한 수준의 별 탄생율을 보여야 하는데도 별을 거의 만들지 않는 상태로 관측된다. 사진=JADES Collaboration

 

이 정도로 급격한 퀜칭을 설명하려면 내부적 요인이든, 외부적 요인이든,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를테면 주변 은하와의 직접적인 충돌, 또는 중심 블랙홀에 의한 피드백이다. 그런데 현재 관측 결과를 보면 이 은하는 직접 충돌과 병합을 겪고 있는 이웃 은하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물론 워낙 멀리 있는 원시 은하이기 때문에 주변에 다른 은하가 인접한지 확인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렇다고 중심에 정말 아주 난폭한 블랙홀이 있을 거라고도 단정하기 어렵다. 기존의 우주론적 모델에 따른 원시 블랙홀의 성장 속도를 생각해봤을 때, 빅뱅 직후 7억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은하 전체를 퀜칭 시킬 정도로 난폭하고 활발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만약 이번에 발견된 은하가 정말 활동성 은하핵 피드백으로 인해 급격한 퀜칭을 한 차례 끝낸 상태라면 초기 우주에서 블랙홀의 성장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미 제임스 웹의 여러 관측과 발견은 초기 우주에서 원시 블랙홀과 블랙홀 씨앗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거나, 상당한 질량 수준으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번 발견도 앞선 발견들과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어쩌면 제임스 웹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을지 모르는 초기 우주 어둠의 시대를 밝게 비추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참고
https://ur0.jp/r5f1a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사이언스] 두 은하가 '예쁘게' 정렬할수록 별이 많이 탄생한다
· [사이언스] 우주의 끝에서 '바나나 은하'를 발견하다!
· [이주의 책] '우주먼지' 지웅배가 안내하는 우주여행 '날마다 우주 한 조각'
· [사이언스] 지구보다 2배 큰 행성은 왜 발견되지 않을까
· [사이언스] 50억 년 후 태양 폭발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방법은?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