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의사들 사이에서는 ‘의료대란의 결말’이라는 8장 분량의 파일이 공유되고 있다. 이 파일에는 의대 정원이 대략 300~600명 정도 늘어날 것이며, 필수의료정책 패키지의 대다수는 도입되지 않을 수 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다. 바이탈과(vital,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 생사와 직결된 필수의료 과)와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 현장에서 예상되는 변화도 언급됐는데, 이 내용의 진위와 실현 가능성을 따져봤다.
#증원분 10% 넘어 인증 통과 못할 가능성 실제로 존재
이 문서에는 바이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의대생과 젊은 의사 상당수가 외국으로 떠날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1000명 이상의 증원이 이뤄지면 미국 외국 의대졸업생 교육위원회(ECFMG)를 비롯한 외국 의대 졸업자 인증 기관에서 한국의 의대를 더 이상 유효한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졸업한 인원에도 소급 적용될 수 있으며, 그 이전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자체 인증 통과 역시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과연 이 말은 일리가 있을까? ‘어느 정도’ 있다. ECFMG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을 받은 학교를 졸업한 이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학교가 의평원으로부터 평가를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의평원의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ASK2019)를 살펴보면 입학 정원이 10% 이상 증원될 경우 ‘주요 변화’로 보고 주요변화계획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는 변화 시작 1개월 전까지 변화의 유형, 배경, 구체적 내용, 교육과정의 변화 개요 및 교육에 미치는 영향, 향후 실행계획 등을 담은 주요변화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2일자로 수정된 입학 정원을 토대로 의학교육인증평가 기준을 적용한 결과, 증원 분이 10% 미만인 곳은 한 곳도 없다. 증원하지 않기로 한 서울 소재 의과대학을 제외하고 모집인원을 줄인 학교는 14곳이었는데, 이들 모두 변경 후에도 증원 비율이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175%로 나타났다. 변경이 없었던 곳까지 포함해 살펴보면 증원 비율이 가장 적은 학교는 20%인 조선대와 전북대다. 반면 증원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는 225%인 가천대다. 수정 전에는 308%로 충북대가 가장 많이 늘린 것으로 나타났지만 수정을 거치면서 충북대는 155%로 줄었다.
앞서 수정 전에도 이에 대한 우려는 나왔었다. 충북대 충북대·강원대·제주대 의대생은 지난달 각 대학 총장을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들은 각 대학의 교육 환경을 전의교협이 자체 조사한 결과를 가처분 신청서에 첨부해 제출했는데, 입학 정원이 10% 이상 증원될 경우 30개 의과대학이 모두 의평원 평가에서 ‘불인증’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각 대학은 “학생 수가 늘어남에 따라 부족해지는 기숙사, 강의실, 실습실, 교육지원시설, 임상실습 시설 등은 하루아침에 보완하기 매우 힘들다. 급하게 충원하면 개인 교수실이나 연구시설 기준을 충족할 수 없는 딜레마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의평원도 성명서를 통해 “국무총리 담화문과 교육부 장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배분안 발표 과정에서 의평원의 인증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2000명 증원이 이뤄지더라도 의학교육 수준과 향후 배출될 의사의 역량이 저하되지 않는다고 공언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개원가 폭증에 필수의료 붕괴? 해외 사례 보니 ‘글쎄’
해당 문서에는 “감기, 근육통과 같은 일상적인 사소한 진료나 미용성형 같은 사치재 성격을 띠는 의료는 공급의 폭증으로 현재보다 10%~15%가량 저렴하게 받을 수 있게 된다. 개원가의 포화 정도는 현재의 식당과 카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건보 재정을 차지하기 위해 기존 전문의 상당수가 개원에 뛰어들게 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증원 이후 전문의 상당수가 개원을 할 것이라는 예상인데, 의대 정원을 늘렸던 다른 국가의 사례를 찾아봤다.
먼저 정부가 발표한 ‘주요국 의대 정원 확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00년 1만 8000명에서 2021년 2만 8000명으로, 같은 기간 영국은 5700명에서 1만 1000명으로, 프랑스는 3850명에서 1만 명으로, 일본은 7630명에서 9330명으로 증가했다. 증원 비율은 각각 55.5%, 92.9%, 159.7%, 22.2%다. 이 기간에 이들 국가에서 개원의가 늘었는지 OECD 통계 자료를 살펴봤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은 이 기간에 개업의사가 각각 36.8%, 83.6%, 17.4%, 33.4% 증가했다. 증원 비율은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순으로 높았으며, 개원의 증가율은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순이었다. 다만 가장 높은 프랑스를 제외하면 동일한 추이를 보여, 의대 정원이 증원될 경우 개원의 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는 꽤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의대 정원이 동결된 기간에도 개업의사가 62.6%로 늘어났기에, 증원 후 다른 국가보다 상당히 높은 비율로 개업의사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바이탈과 의사와 전공의들이 30%가량 복귀하지 않을 것이며, 상당수가 외국으로 떠나거나 적어도 떠나려고 한다는 내용도 문서에 담겨 있다. 이는 의사들이 “의대 정원 증원 이후 필수의료 낙수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과연 다른 국가들은 어땠을까?
의대 정원 증원 이후 앞서 언급된 국가들의 소아과 의사, 산부인과 전문의 수를 살펴봤다. 소아과의 경우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순으로 증가율이 높았는데, 이는 앞서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가장 높은 프랑스를 제외하면 영국, 미국, 일본 순으로 의대 정원 증가율 추이와 동일했다. 주목할 지점은 증가율 숫자 자체가 정원 확대 비율과 엇비슷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의대 정원 확대 비율이 55.5%였고, 소아과 의사 증가율은 50.5%였다.
산부인과의 경우도 소아과와 동일하게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순으로 증가율이 높았다. 모든 바이탈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소아과와 산부인과의 경우 의대 정원 증원과 전문의 비율 증가가 상당히 관계가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즉 의대 정원이 늘어나도 필수의료 분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계의 주장이 적어도 다른 국가의 선례를 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
'버추얼 아이돌' 개척 블래스트의 '엔터' 도전은 성공할까
·
[비즈피플] 소통 시험대 오른 독불장군, 임현택 의협 신임 회장
·
우리종금·포스증권 합병 '우리투자증권' 출범…부족한 2% 채워지나
·
세계 10위 K-방산, 선진국 '견제' 이겨낼 묘수는?
·
[비즈피플] '의료개혁' 총대 멘 선봉장,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