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령자고용법(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0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은 1년 이상 재직한 50세 이상의 노동자가 정년이나 희망퇴직과 같이 비자발적 사유로 이직하는 경우 이직일 전 3년 이내에 진로상담 및 설계, 직업훈련, 취업알선, 재취업 또는 창업교육 등을 의무로 제공해야 한다.
재직 중인 회사 역시 마찬가지인데 교육 대상자들을 모아 1~2회 위탁교육을 실시하고 이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비를 실비 지원하고 있다.
정년을 앞둔 직원들이 제출하는 교육훈련계획은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과반수가 넘는 직원이 거의 필수코스인 듯 바리스타 교육을 신청한다. 커피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커피숍이 끝없이 생겨나고 폐업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천편일률적인 교육계획서 중에서도 눈에 띄는 내용을 살펴보면 오랜 기간 본인이 ‘좋아해 온’ 활동이나 취미를 보다 깊게 교육받으려는 경우가 많다. 58세에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던 여성임원 L은 은퇴 후 시니어 필라테스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색소폰 연주를 좋아하던 어느 직원은 회사 근처에 작은 연습실을 차렸다. 자신의 고향에 내려가 작업실 겸 작은 미술공방을 열은 P도 50대에 취미 삼아 시작한 유화 그리기에 심취한 덕에 즐거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P는 직장 로비에서 작은 전시회를 몇 번 열기도 했는데 완성도나 전문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다소 부족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서점에 가면 ‘할머니’ 제목을 앞세운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자기계발서, 에세이, 어린이 그림책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그만큼 6~70대가 넘어서도 왕성하게 대외활동하는 고령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나 역시 유튜브를 썩 즐겨 보진 않지만, 시니어 유튜버 몇 명의 계정은 구독하고 있다. 배움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도 하고, 오늘이 우리 생애 중 가장 젊은 날이라고들 수없이 말하지만 그걸 몸소 실천하는 이들을 보면서 위로도 받고 슬그머니 내 나름의 노년 희망도 꿈꿔본다.
이들의 공통점을 가만히 살펴보면 ‘잘하기’보다는 ‘꾸준히 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머뭇거린다. 그리고 조금 해보고 나서는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 않거나 손에 쥐는 성과가 별로 없다는 생각에 금방 포기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시작하는 우리는 - 그게 무엇이든, 나이가 몇 이든 관계없이 - 언제나 초보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혹은 조금만 해도 능숙하게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어린이들이 새로운 걸 배우는 모습을 보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지난달에는 못 하겠다고 울던 아이가 몇 번만 연습하면 금방 한계를 넘어선다. 어린이들이 모든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양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슬럼프 없이 마냥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 어른들은 ‘잘 못하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너무 많은 걸 빨리 포기하는 데에 비해 어린이들은 꿋꿋이 계속할 뿐이다. 그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른 속도로 흐른다.
일에 집중하고 급박하게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눈앞의 숫자와 지표로 성과를 내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 기억들이 우리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보니 느리게 성장하는 자신을 참고 기다리는 것이 그저 견디기 어려운 것뿐이다.
잘 못하는 모습을 참고 견디며 꾸준히 오랫동안 지속하려면 무엇보다도 ‘좋아하기’가 우선이다. 은퇴자 재취업 교육훈련 계획서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막막해하는 선배들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시길 권한다. 그저 다른 사람을 쫓아 몸에 안 맞는 옷을 입듯이 평소 관심도 없던 프랜차이즈 창업 교육을 들으러 가느니, 차라리 내가 평소 좋아하던 일이 무엇인지, 애정을 갖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부터 찾는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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