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제품을 어떤 전략으로, 언제 내놓을 것인지 정하는 ‘로드맵’(Roadmap)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예컨대 업계 1위 삼성전자가 로드맵에서 HBM 메모리를 제외하는 결정에 만년 2위 SK하이닉스의 고성능 HBM에 여전히 고전 중이다. 로드맵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적절한 로드맵 설정에 실패하면 아무리 크고 뛰어난 기업이라도 큰 곤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방위산업의 ‘마지막 도전’ 이라고 할 수 있는 국산 제트엔진 개발 계획의 목표 설정은 과도한 ‘출력 증대’에만 집중하고 있다. 필자는 로드맵과 장기 전략을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산 항공기용 제트엔진은 수 조 원 이상을 투자해 전투기급 제트 엔진을 목표로 열심히 개발 중이다. 유도탄용 970lbf 급 터보제트 엔진을 완성 후, 2025년까지 5500lbf급 터보제트엔진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향후 1만lbf급을 거쳐 KF-21보라매 전투기에 장착 가능한 1만5500lbf급 ‘전투기급 엔진’ 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문제는 우리 항공엔진 국산화 로드맵이 ‘더 큰 엔진’, ‘더 출력이 센 엔진’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2030년 이후 ‘3만lbf급 6세대 전투기용 엔진 개발’에 도전한다는 로드맵도 등장했다. 1만 5500lbf급 엔진이라는 전투기급 엔진 목표도 어느샌가 1만 8000lbf으로 목표가 높아져 있다.
정책을 결정하는 장관이나 정치인, 최고 경영자에게 목표와 비전을 제시할 때 ‘더 큰것, 더 센 엔진’을 더 만들겠다고 제시하면 이를 말리거나 비판할 결정권자는 없다. 크고 멋있고 대단한 것을 만들겠다는데 뭐라 반대할 것인가? 다만 우리는 우리 환경과 조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한민국 제트엔진 산업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인 전투기에 들어갈 1만 8000lbf 급 엔진, 그리고 3만lbf급 6세대 전투기용 엔진이 문제다. 우선 KF-21에 장착 가능할 1만 8000lbf 급 엔진의 경우 2037년 이후에 완성될 예정으로 수요가 불확실하다. KF-21을 추가 생산하거나 수출용 KF-21에 탑재할 수 있겠지만, 2037년에 KF-21을 추가 생산할 수요가 있을지 현재 알 수 없다. KF-21 전투기의 수출 고객이 안정적인 미국 GE사의 F414엔진을 탑재한 버전을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3만 lbf급 엔진은 미래가 더욱 불확실하다. ‘6세대 전투기’는 단순히 5세대 전투기보다 더 강한 출력을 가진 엔진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적응형 사이클(Adaptive Cycle)이라는 기술로 초 장거리 비행과 초 고속 비행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초 고출력 발전기로도 쓰일 수 있고 스텔스(Stealth)기능을 위해 열도 적게 발산하는 것이 필요해 개발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
우리보다 먼저 전투기급 엔진을 만들고, P-1 해상초계기에 국산 제트엔진을 장착한 일본이 독자 차세대 전투기를 포기하고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GCAP’라는 전투기를 만든 이유도 결국 이 문제와 연관이 있다. 일본은 소형 고출력 엔진을 만들 기술력이 있었지만, 영국 롤스로이스가 연구중인 ‘제트엔진을 활용한 발전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 독자 개발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다.
5조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갈 차세대 제트엔진 개발 시스템 로드맵은 도전적이지만 수요가 불확실하다. 더욱이 우리 경쟁자인 항공 선진국들을 이길 수 있는 ‘전략’ 역시 불확실하다.
대안을 찾아본다면 단순히 출력을 늘리는 개발 로드맵이 아닌 시장 수요의 ‘빈 구멍’을 찾는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제트엔진 개발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쉽게 말해 ‘더 큰 엔진’을 만드는데 연구 자원을 투자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만들지 못한 신기능을 가진 작은 엔진’을 만드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곧 완성할 5500lbf급 엔진은 ‘30년만의 서방측 신제품’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500lb급 이하 엔진에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 동안 경쟁자들이 제대로 신경쓰지 않은 이 시장은 우리에게는 엄청난 이득을 주는 노다지나 마찬가지이다.
가령 ‘X-45 무인전투기’에 장착된 미국의 ‘F124엔진’은 첫 구동후 45년이 지났고, 뉴론(nEUROn) 무인전투기에 장착된 영국의 아도어(Adour)엔진은 첫 구동후 56년이 지났다. XQ-58A 발키리(Valkyeie)에 장착된 미국의 FJ33엔진은 그나마 신형이지만, 첫 구동후 26년이 지난 엔진이다.
반면 5500lbf급 엔진 크기의 제품 수요는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무인편대기(loyal wingman)라는 이름으로 유인 전투기와 같이 비행 가능한 전투 드론을 앞다퉈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라는 이름으로 1000여 대 이상의 무인편대기를 구매할 예정이다. 후발주자인 한국은 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필자는 대략 세 가지 신기술을 소형 제트엔진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제안할 것은 5500lbf 급 이하 장수명 소형 제트엔진 포트폴리오를 늘리는 것이다. 5500lbf 급 신형 엔진의 기술을 활용해 더 큰 엔진들을 만드는 것이 아닌 현재 한화의 제트엔진 포트폴리오 사업에서 비어 있는 1200lbf~ 5500lbf 사이의 소형 제트엔진을 여러 종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화가 가진 5500lbf 급 이하 제트엔진 2종은 모두 유도무기에 쓰는 것이라, 반복 사용이나 장시간 운용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외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반면 무인 편대기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고, 세계 각국이 연구중인 소형 무인편대기들의 구성이나 크기가 제각각이다. 이런 시장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비해 다양한 크기의 소형 제트엔진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면 시장에서 인기를 끌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쟁자들은 전투용이 아닌 비즈니스 제트기, 혹은 1회용 미사일 엔진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명이 길고 효율적인 군용 소형 제트엔진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 제안할 기술은 엔진 발전기 기술이다. 현재 세계 각국은 6세대 전투기에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제트엔진에 발전기를 직접 연결하거나, 발전 용량을 크게 만들면 6세대 전투기는 전자전을 위한 방해전파, 레이더 전파, 그리고 레이저 무기를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무인편대기에 장착되는 소형 제트엔진에 이런 기술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없다. 우리가 만드는 5500lbf 엔진에 최신 전력 생성 기술을 적용한다면, 이 엔진을 가진 무인편대기는 적의 무인편대기보다 더 큰 레이더, 더 강력한 레이저 무기를 장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안할 기술은 엔진 MRO에 AI와 로봇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제트엔진은 모두 수 제작이고, 엄청 복잡하고 섬세한 것이라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너무 작거나 싼 제트엔진은 아예 수리를 생각하지 않고 1회용으로 만드는 것도 많다.
반면 소형 제트엔진의 경우 수리를 위한 크레인이나 중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만큼, 더 간단한 수리 및 정비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가령 엔진 내부에 AI 기반의 센서로 고장을 탐지하고, 필요할 경우 야전에서 수리가 가능한 엔진 수리/오버홀 로봇을 만들면 경쟁 엔진보다 가동율과 운용유지비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제트엔진 기술은 사실 미국, 영국에 비해 30년 이상 뒤쳐져 있고, 일본과 비교해도 15년 이상 뒤쳐져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선 일본조차 자체 IP를 가진 제트엔진 수출이 아니라, 한국 공군 항공기에도 장착되는 V2500처럼 여러 업체들과 IP를 나눠 가진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10년 안에 유인 전투기급 엔진을 만들다는 목표도 좋지만, 수요와 시장 전망, 그리고 경쟁 우위를 확보할 방안을 같이 고민하는 제트기 엔진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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