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에선 수도 없이 많은 ‘정보글’와 ‘찌라시’가 돌아다닌다. 정보글의 상당수는 남녀 문제나 직장 내 비리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 한 번 눈에 띄면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필자의 경우 정보글 속의 대상이 지인이거나, 같은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었던 탓에 재미보단 숙연함을 느낀 경험이 있다. 게다가 정보글을 본 후 지인으로부터 “그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정보글을 함부로 옮기면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원초적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정보글을 주고받다가 이런저런 문제를 겪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필자는 정보글로 피해를 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첫째로 정보글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신뢰할 수 있고, 의뢰인의 비밀을 유출할 염려가 없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건을 진행하다가 대리인을 통해 비밀이 새어나가거나, 대리인과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런 사건의 경우 믿을 수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둘째, 상황의 전후 맥락을 정리하면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를 해야 한다. 형사고소를 해둬야 인터넷 공간에서 퍼져가는 정보글에 대해 조치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 등에 권리침해 신고를 하면서 게시 중단 요구를 할 때 입증 서류로 고소장을 첨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형사고소를 하면 고소장을 첨부하면 되지만, 형사고소하지 않은 상태라면 피해를 소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셋째, 형사고소는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은 회원이나 이용자의 기록을 일정 기간 저장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정보글 유포 시점에서 시간이 많이 지나면 로그 기록이 유실되거나 플랫폼에 로그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협조를 거부할 수도 있다.
넷째, 대응할 때 정보글의 사실 여부는 상관없다. 사실이든 아니든 수사기관에 형사고소 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에 권리보호 침해를 신고하는 대응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보글이 사실이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위축될 필요는 없다.
한국 사회에선 “진실한 사실 적시는 공익에 부합하거나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니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으로는 정보글이 100% 사실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의도적으로 거짓을 서술하거나 전후 맥락상 중요한 부분을 누락해 기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글의 상당수가 출처를 감춘 채 일방적인 비난을 위해 작성된다는 점에서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허위 사실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로써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범죄가 될까? 먼저 우리나라 법제에선 양형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인 경우에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사견으로는 이 같은 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의 비밀을 들춰 공격하는 것은 일종의 사적 복수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법적 조치로 제재하는 것이 원칙이고, 특수한 상황에만 자력구제를 허용한다. 정보글을 유통하는 것은 자력구제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이번엔 관점을 바꿔보자. 정보글을 무심코 옮겼다가 비난을 받거나, 수사 대상이 된다면 무엇부터 생각해야 할까? 명예훼손이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다. 명예훼손은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나, 진실한 사실이면서 목적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러한 법률 조항을 생각해 보면 ①전파 가능성(공연성)이 없는 특정 사람과의 대화이거나 ②사실적시가 아닌 단순한 의견표명에 불과하거나 ③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게 사실 적시를 했더라도,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적시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전파 가능성이 없다면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는 공연성이 없다. 예를 들어 부부 중 한쪽에게 나머지 배우자의 험담을 하는 것은 공연성 또는 전파 가능성이 없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아내에 관한 험담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사실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과거나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또는 진술을 의미하며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혼한 사람이 왜 마을 제사에 왔는지 모르겠다”라는 식의 표현은 사실 적시가 아닌 의견표명에 불과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사실 적시의 내용이 사회 일반의 일부 이익에만 관련된 사항이라도 다른 일반인과 공동생활에 관계된 사항이라면 공익성을 지닌다”라며 “나아가 개인에 관한 사항이더라도 공공의 이익과 관련돼 있고 사회적인 관심을 획득한 경우라면 직접적으로 국가·사회 일반의 이익이나 특정한 사회집단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의 이익을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복잡한 판결처럼 공공의 이익을 판단하는 기준은 대단히 모호하고, 이를 인정받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명예훼손을 방어하는 입장이라면 공연성이나 사실 적시를 부정하는 것이 유리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명예훼손은 흥미로운 주제다. 주변에서 자주 발생하는 법률문제이면서 개별 쟁점에서 생각할 점이 많다. 지극히 사소하고 생활법률에 국한되는 문제 같으면서도, 간혹 회사의 평판을 좌우하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 설명한 내용을 통해 명예훼손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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