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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비극' 다시 안 나오게…웹툰 새 표준계약서 담길 내용은?

매출 투명화, 2차 저작권 활용 등 조항 신설…문체부 "관계 부처 의견 조정 후 5월 중 고시"

2024.04.26(Fri) 15:34:59

[비즈한국] ‘저작권 갑질’ 논란이 반복되는 웹툰 업계에 올 3분기면 표준계약서가 새로 마련된다. 이는 문체부와 웹툰 생태계 구성원이 업계 첫 상생협약을 만들기 위해 모인 지 약 2년 반 만에 나온 결과물이다. 제·개정안 고시를 준비 중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까지도 최대한 많은 작가 단체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각 주체가 함께 고민한 표준계약서가 ‘깜깜이’ 수수료, ‘마감지옥’과 같은 업계 고질병을 끊어내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새 표준계약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저작권 갑질’, ‘깜깜이’ 수익 배분 문제가 반복돼 온 웹툰 업계에 새 표준계약서가 마련된다. ‘검정고무신’ 4기 포스터(왼쪽)와 카카오에서 연재된 ‘록사나’ 표지 이미지. 사진=KBS2, 카카오페이지


#영화화 웹툰 ‘저작권 갑질’ 막는 계약서도 신설 

 

업계와 문체부에 따르면 문체부 주도로 작가단체와 네이버-카카오 양대 플랫폼, 전문가 등이 함께 준비하는 표준계약서가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3월 발표된 만화·웹툰 표준계약서 8종 제·개정안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표준계약서는 지난 2022년 말 웹툰상생협의체에서 합의한 협약 안건이 대부분 반영된 형태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개정되는 △출판권 설정계약서 △전자책 발행계약서 △웹툰 연재 계약서 △만화 저작물 대리 중개 계약서 △공동저작 계약서 △기획만화 계약서 등 6종은 수익분배 비율 투명화 작업환경 개선에 무게를 뒀다. 정산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권리가 명문화되고, 작가가 계약서 체결 전 변호사에게 검토 받을 수 있도록 비밀 유지 조건도 완화된다.

 

작가들은 오랜 시간 필요성을 강조해온 ‘매출 투명화’ 측면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표준계약서 제작을 위한 논의에 참여한 작가 A 씨는 “수익 정산 내역과 그 정보를 공개하고 최소한 열람이라도 가능하게 하라는 것이 작가 측 주장이었다. 반면 기업들은 회사 기밀, 다른 작가의 정보 등이 노출된다는 의견을 냈다. 아주 만족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작가 측 입장이 80%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문체부는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작가 협·단체와도 ​최근까지 접촉해 서면으로 의견을 수렴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새 표준계약서에는 작품 특성에 따라 최소·최대 컷 수를 설정하는 내용도 담긴다. 웹툰 분야는 플랫폼이 주도하는 프로모션과 과도하게 늘어난 기본 컷 수, 업계 경쟁 등이 맞물려 작가들이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22년 연재작 ‘록사나: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의 그림 작가가 임신 중 과로, 유산에 따른 휴가 요청 거부 등의 문제를 제기한 후 이 같은 논란이 확대됐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의 크리에이터스 토크에 참석한 웹툰 원작자 강풀 작가. 사진=박정훈 기자


특히 ‘검정고무신’의 작가 고 이우영 씨의 별세 이후 주목받았던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관련 계약 시 제3자와의 계약에 대한 사전 고지 의무’에 관한 조항이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계약 제정안에 담긴다. 웹툰 플랫폼에 연재한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에 활용될 때 웹툰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이용허락 계약서와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양도계약서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장 적용이 관건” 불공정 계약 관행 바꿀 수 있을까 

   

제·개정안 확정은 계획보다 한 달 정도 지체될 전망이다. 앞서 4월 중 제·개정안 고시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던 문체부는 5월 중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 의견을 받아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웹툰 분야 표준계약서는 지난 2015년 처음 만들어졌지만 구체적인 수익 배분 조항 등이 빠져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표준계약서를 이용하지 않은 작가 비중은 지난해 51.3%로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은 “기존의 표준계약서는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와 맞지 않아 적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너무 포괄적이거나 세부항목이 분명하지 않거나, 혹은 세부 사항이 부족했다”며 “(개정 계약서는) 작가와 플랫폼, 제작사 모두의 입장을 고려했기 때문에 작가와 기업 모두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려는 의지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단 네이버와 카카오 양대 플랫폼은 상생협의체 활동 이후 작가 복지 및 처우와 관련해 계약서의 문구를 수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표준계약서에 포함될 주요 조항을 자사 계약서에 ‘선반영’하는 모습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2월부터 웹툰·웹소설 작가와 계약할 때 ‘휴재권(연재를 쉴 수 있는 권리)’을 서류에 명시하고 ‘40화 기준 휴재권 2회를 보장한다’는 조항 외에 ‘작가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과도한 연재 분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문구도 추가했다. 네이버웹툰도 기존에 적용해온 휴재권을 지난 2월 25회 당 1회로 명문화했고 분량은 ‘성실히 협의를 한다’는 내용을 보충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 서점의 웹툰·만화 코너. 사진=박정훈 기자


작가들은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기준이 마련됐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업계를 구성하는 주체들이 최초로 논의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표준계약서가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대표적인 것이 ‘후차감’ 방식의 수익 분배 관행이다. 

 

작가의 주 수입원은 선인세 개념인 ‘MG(최저수익보장금)’와 작품이 흥행할수록 더 받는 배분 수익이다. ​그런데 후차감 MG 계약 시 작품의 매출에서 앱 마켓, 플랫폼에 수수료를 떼 주고 남은 돈을 사전 계약 비율에 따라 제작사와 나눈다. 제작비를 온전히 작가가 부담하는 셈이다. 작가가 원고를 넘긴 뒤에도 돈을 버는 건 매출이 선지급금의 두 배 정도가 넘어야 가능한 구조다. ‘플랫폼사(유통)-제작사(콘텐츠제휴)-작가(창작)’로 얽혀 있는 복잡한 계약 구조에서 이 같은 후차감 제도는 작가들에게 과도한 수수료 부담을 지우는 주범으로 꼽힌다.

 

박광철 한국만화웹툰정책포럼 사무국장은 “(총수익, 배분 수익 중 어디에서 MG를 충당할지) 사소한 요소 하나가 바뀌는데 결과 차이가 엄청나다. 이제 현장에서는 선차감 계약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제작사와 플랫폼이 어떻게 계약하는지는 표준계약서에 드러나지 않는다. 구조를 개선할 것으로 기대됐던 문화산업 공정유통법은 기업들이 직접 관여한 끝에 얼마 전 좌초됐다. 표준계약서를 준수한다고 해도 핵심적인 문제가 개선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작가 B 씨도 “매출과 관련해서도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가 많을 것 같다. (플랫폼 측에서는) 무료보기, 미리 보기와 같이 마케팅 명목으로 무상 제공하는 작품의 가치나 매출 정보는 산출이 불가능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표준계약서 적용은 권고에 그치지만 꾸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가 측 관계자는 “제작사들이 정부 지원 사업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표준계약서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긴 회의 끝에 탄생했고 공정위가 계속 주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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